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윌리엄 텔 서곡
Rossini, Gioacchino Antonio(1792~1868)
William Tell Overture

William Adolphe Bouguereau A little coaxing(1890)

*** 장구(長久)한 세월(歲月)이 흐르며
발전(發展)을 거듭해 온 음악(音樂)은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우리의 영혼을 고상(高尙)하며 품위(品位)있게 다스려 왔다.
공자도 플라톤도 음악에 조예(造詣)가 깊었고
품위(品位)있는 음악적 지성(知性)들이었다.
음악의 순수한 감성(感性)은 차원을 달리하는 세계로
자연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예술(藝術)이다.
음악은 때로는 우리의 영혼(靈魂)을
감동(感動)으로 이끌며 슬픔과 즐거움으로,
또한 격렬(激烈)함과 정숙(靜肅)함으로 다가온다.***
***
*** Rossini의 음악은 고뇌(苦惱)하는 Beethoven의
난해(難解)한 음악에 비해 경쾌(輕快)하며,
익살스런 풍자(諷刺)와 해학(諧謔)으로
인위적(人爲的)인 요소(要素)보다 더욱 자연스러우며
대중들에게 음악(音樂)을 듣는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또한 Rossini의 음악은 경쾌(輕快)한 리듬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生動感)이 있고
자연미가 넘치며 순수(純粹)하며 투명(透明)하다.
이렇게 Rossini는 생명력이 가득한
활기(活氣)있는 작품들을 작곡하여
천재적(天才的)인 Rossini만의 감각(感覺)으로
지친 영혼(靈魂)에 생명력(生命力)을 불어 넣으며
마술사(魔術師)처럼 음악을 이끌어 간다.***
(內容 中에서)
*
스위스는 13세기 경 이탈리아 합스부르크 왕조(王朝)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민병을 규합(糾合)하여 오스트리아에
150여년동안 항쟁(抗爭)을 계속하고 있었다.
스위스의 전설적인 영웅(英雄)
William Tell이 이 시대의 인물(人物)이다.
쉴러(Friderichvon Schiller.1759∼1805)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환희의 송가의 작가로
William Tell 의 전설을 희곡(戱曲)으로 썼고
이를 Rossini가 오페라로 작곡했다.
서곡(序曲)은 17세기 초부터 오페라에 사용되었으며
팡파르에 지나지 않았던 서곡이 주제를 가지고
오페라 전곡의 분위기와 줄거리를 표현하는 곡으로 발전하였다.
Rossini의《윌리엄 텔 서곡 William Tell Overture》은
스위스 독립을 기리며 만들어진 곡으로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가 Rossini의 훌륭한
교향곡이라고 말한 것처럼 서곡(序曲) 중 제일 유명한 명곡이다.

롯시니(Gioacchino Rossini)는 1792년 2월 29일
이탈리아 중부 페사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른 주자였고 어머니는 소프라노 가수로
어린 시절 음악을 접하며 자랐다.
Rossini가 6세 되던 해 민주투사(民主鬪士)인 아버지가
정변으로 투옥되었고 이로 인하여 가세가 어려웠다.
Rossini의 가족은 볼로냐로 이주하게 되고
Angelo Tasei 에게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1802년 아버지의 고향인 루고에서
말레르비(Giuseppe Malerbi)에게서 쳄발로와 성악을 공부했고
1806년에 볼로나 음악학교의 첼로 과에 입학하여
피아노와 대위법을 익혔고 정식 음악교육을 받으며
Haydn, Mozart 을 흠모(欽慕)하며 그의 꿈을 키워나갔다.
Rossini는 어려서 음악적인 재질이 뛰어나
12세에 현악 4중주를 위한 소나타를,
14세에 오페라를 작곡했다고 하며 천재적인 조숙(早熟)함을 보였다.
Mozart와 Haydn 등 초기 고전파 작곡가들의 악보로 대위법을,
볼로냐 음악학교에서 많은 음악 지식을 공부했다.
재학 중 칸타타《오르페오의 죽음에 대한 아르모니아의 통곡》
으로 수상(受賞)했고《결혼 어음》을 공연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Rossini는 청년기에는 가수로,
가정교사, 극장의 반주자로 생활을 했고
쳄발로, 바이올린, 비올라, 호른, 첼로를 연주하며
신포니아, 미사곡, 칸타타, 오페라 등
다양한 기악곡을 작곡하여
이탈리아 음악에 새로운 화성(和聲)이나 기악 편성을 접목했다.
또한《탄크레디》《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자》와
1810년 《비단 사다리》와 《심한 오해》를 공연하며
작곡가로서의 Rossini의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고
1816년 24세 때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작곡가로서의
확고한 입지(立地)를 다지게 되었고,
작곡가로 인정을 받아 《오셀로》(1816, 나폴리)
《도둑까치》 (1817, 밀라노) 등도 초연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822년 빈을 방문하며 Rossini 선풍을 일으켰고
1823년 런던을 방문, 영국 황실에서도 환대를 받을 정도로
Rossini는 뛰어난 작곡가로 인정받게 된다.
그는 1824년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의 감독을 역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815, 나폴리)
《신데렐라》 (1817, 나폴리)《이집트의 모세》(1818, 나폴리)
《오리백작》 (1828) 《빌헬름 텔》 (1829) 등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명성을 쌓아 갔다.
이후《오델로》《신데랄라》등 로마극장을 위한
작품을 작곡했고, 이 시기에 병마(病魔)와 싸우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우는 Beethoven을 빈에서 만나게 된다.
***
Rossini의 음악은 달콤한 멜로디에 절묘(絶妙)한 리듬과
관능적(官能的)인 매력(魅力)과 화려(華麗)함으로 대중을 압도했다.
Rossini는 고전적(古典的)인 면과
낭만주의적(浪漫主義的)인 면을 겸비(兼備)했고,
다른 이탈리아 작곡가들에 비해 관현악곡에 정통했다.
그는 오페라를 통하여 웃음과 조롱과 익살과 해학으로
즐겁고 생생하고 신선(新鮮)한 맛을 풍기며
bel canto 창법에 심취하여 이를 연구했다.
Rossini는 고전파 음악의 형식, 엄격한 소나타 형식을
오페라에 적용(適用)하며 새로운 시대에 적응(適應)하며
콜로라투라(coloratura) 부분이 없는 아리아를 시도(試圖)했고
갈등(葛藤)을 상승, 해결(解決)하는 방식이
능숙(能熟)했음을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Rossini의 오페라는 점점 변화를 거듭했고
화려한 창법(唱法)의 벨칸토(bel canto)를 연구하며,
인간미 있는 가곡과 장식보다는 표현을 위주로 한
콜로라투라(coloratura) 등이 나타난다.
그는 세리아(opera seria), 부파(opera buffa)와 같은
오페라 장르를 종합하여 그 구조(構造) 속에
비극적(悲劇的)인 것들을 도입한 모차르트와 달리
부드러움을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에 불어 넣었다.
1822년《영국여왕 엘리자베스》의 주역을 한
성악가 이사벨라 콜브란(Isabella Colbran)과 결혼한다.
*

Isabella Colbran

Rossini는 엄격한 구조를 갖춘 오페라 서곡을 작곡하며
소나타 형식의 완전한 소우주(小宇宙)를 언급했고
오케스트라에 풍부한 표현력을 부여했다.
호른이나 클라리넷 등 낭만파의 악기를 많이 사용했으며
낭만적인 주제인 《호수위의 미녀》,
요정극적인 주제 《아르미다》,
자유주의적인 주제인 《윌리엄 텔》에 적용되었다.
*
Royal Promenade Orchestra
Alfred Gehardt : conductor


Rossini는 14세부터 20여년(37세)동안에
장편 오페라를 38편이나 작곡했다.
특출한 오케스트라의 수법과 경쾌(輕快)하고
아름다운 리듬으로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37세 때
최후의 걸작(傑作)인 《윌리엄 텔》을 작곡하고 은퇴했다.
해학적이며 즐거운 작품을 많이 작곡한 Rossini는
인위적(人爲的)인 예술보다 자연인으로 돌아가
젊은 나이에 작곡을 멈추었다.
윌리엄 텔은 Rossini의 걸작(傑作)으로 서곡도
교향곡풍으로 대곡이며 불후(不朽)의 명곡이다.
<새벽> <폭풍우> <정숙> <스위스 군의 행진> 등
4부로 나누어진 서곡은 교향곡(交響曲)을 작곡하지 않은 Rossini의
교향곡이라고도 불리어 지며 많이 연주되는 명곡이다.
오스트리아가 스위스를 지배(支配)하던 때
외세에 저항(抵抗)하는 스위스의 역사적 민족 극이며
명궁(名弓)인 윌리엄 텔의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로
아들 머리 위의 사과를 활로 쏘아 맞힌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4시간 30분의 장대한 작품으로 Rossini를 대표하지만
경쾌하고 고상한 희열로 젖어드는 선율의 서곡이 더 유명하다.
이 오페라는 1929년 Rossini가 작곡한 최후의 작품으로
Schiller의 시극(詩劇)을 드 즈이(E.De Jouy)가 각색(脚色)하였고
1829년 8월 3일 파리 오페라 좌에서 초연되었다.
*
Rossini는 생명력이 가득한 활기(活氣)있는 작품들을 작곡했다.
그의 음악은 난해함이 없고 자연(自然)의 소리처럼
청록(靑綠)의 색채(色彩)처럼 편하며 즐겁고
리듬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투명(透明)하다.
이렇게 Rossini의 음악은 생동감(生動感)이 있고
자연미가 넘치며 순수(純粹)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서양 음악사에서 Beethoven과 쌍벽(雙璧)을 이루는 작곡가로
모차르트, 바흐를 지칭하나 Rossini를 제외할 수는 없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Beethoven의 인기를 누르고
유럽을 평정(平定)했던 작곡가는 이탈리아 출신 Rossini였다.
Rossini의 음악은 고뇌하는 Beethoven의 난해(難解)한
음악에 비해 경쾌하며 익살스런, 풍자와 해학(諧謔)으로
대중들에게 음악을 듣는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Rossini의 음악은 인위적인 요소(要素)보다
자연스럽고 경쾌한 리듬으로
마술사(魔術師)처럼 음악을 이끌어 간다.
이렇게 자연적이며 천재적인 롯시니만의 감각(感覺)으로
지친 영혼에 가득 생명력(生命力)을 안겨준 작곡가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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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볼로냐로 돌아와 음악학교 교장으로
여생(餘生)을 보냈다.
만년에 요리 연구에 정진(精進)하며 많은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38곡의 오페라와 칸타타, 피아노곡, 관현악곡, 가곡,
실내악곡(현악 4중주곡), 성악곡 등 많은 작품과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계승(繼承) 발전시킨
이탈리아 고전 오페라의 마지막 작곡가로 기록되었다.
1848년의 혁명(革命)에 피렌체로 피신하게 되고
볼로냐를 거쳐 파리에 정착했다.
1868년 11월 13일 Rossini는 파리근교의
파시 별장(別莊)에서 75세의 일기로 타계(他界)했고
유해는 페르라세즈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887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교회로 이장(移葬)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결혼 어음》《오르페오의 죽음에 대한 아르모니아의 통곡》
《탄크레디》《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자》
《심한 오해》《세빌리아의 이발사》《오셀로》
《호수위의 미녀》《아르미다》《도둑까치》
《비단사다리》《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신데렐라》
《이집트의 모세》《오리백작》《윌리엄 텔》등 38곡의 오페라와
칸타타, 피아노 곡, 관현악 곡, 가곡, 실내악 곡, 성악곡 등이 있다.


William Adolphe Bouguereau little thief(19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