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미유 생상스 교향곡 제 3번 C단조 "오르간"
Charles Camille Saint Saens(1835~1921)
Symphony No.3 in C minor Op.78"Organ"

William Adolphe Bougureau The little begger(1880)

교향곡은 관현악(管絃樂)을 위한 소나타 악곡으로, 형식적으로는 다른 소나타
악곡들과 다름이 없고 역사적인 변천과정(變遷過程)도 소나타 작품들과 같으며
기악곡(器樂曲)으로 규모가 장대하고 그 시대에 작곡가들은 교향곡(交響曲)의
작곡은 일종의 의무처럼 생각할
만큼 음악 역량(力量)을 집대성(集大成)한 것으로 차지하는 비중(比重)도 크다.
교향곡은 18세기 중엽부터 시작하여 독일의 칼 스타미츠,Carl Philipp Stamitz
(1745~1801)와 만하임 악파 (Mannheimer schule)와 요한 크리스챤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등이 교향곡(交響曲)의 선각자(先覺者)들이었고
하이든(Franz Joseph Haydn) 은 선진(先進)들의 음악적인 성과(成果)를 보다
발전시켜 형식을 정비(整備)하고 음악성을
더한 공로(功勞)로 교향곡의 아버지로 지칭되며 그 명예(名譽)를 얻게 되었다.
또한 Beethoven에 의해 교향곡은 어느 장르의 음악보다 더욱 발전 고양(高揚)
되어 작곡가들의 부담스런 책무(責務)처럼 인식(認識)되며 발전을 거듭했다.
***
교향곡에는 특이(特異)한 개성(個性)들이 내재해 있다.
개인의 영웅적인 개성을 작품의 주제로 작곡한 Beethoven의
《교향곡 제 3번 영웅(英雄)》과
교향곡 최초로 독창과 중창, 합창 등 성악을 도입한 Beethoven
《교향곡 제 9번 합창(合唱)》과
교향곡 마지막 장에서 단원들이 하나씩 촛불을 끄며 퇴장하는구성(構成)을 보여주는
Haydn의 《교향곡 고별(告別)》과
작곡가 스스로의 실연(失戀)의 아픔을 주제로 작곡한 Berlioz의
《교향곡 환상(幻想)》과
중국의 李 太白, 錢 起, 孟 浩然, 王 維 등의 시를 소재로 작곡한 Gustav Mahler 의
《대지(大地)의 노래》와
교향곡에 Piano와 Organ을 Orchestra의 악기에 편성한
Saint saens의 《교향곡 제 3번 Organ》 등이다.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 Saens)는 1835년 10월 9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화가(畵家)인 어머니와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큰 어머니에게
예술적인 기질(氣質)과 감각(感覺)을 키웠다.
절대 음감(絶對 音感)의 소유자였던
Saint Saens는 2세에 피아노를 연주했고, 작곡을 할 수 있었다.
1839년 3월 22일로 기록된 최초로 작곡한 곡인 《Piano를 위한 작은 단편》(3세)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保管)되어 있다.
생상스는 10세 때 독주회(獨奏會)를 개최했고 Beethoven의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암기(暗記)하여 연주할 정도로 그의 음악에 대한 천재성(天才性)은
모차르트 이후 프랑스의 신동(神童)으로 불릴 만큼 뛰어났다.
파리 음악원에서 Organ 공부를 마친 Saint Saens는 22세에 당시 Organist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파리 마들레느 교회의 Organist가 되었다.
《교향곡 제 3번 Organ》은 Saint Saens가 51세 되던 1886년 런던 필 하모닉 협회의
의뢰로 작곡하게 되었다.
이 교향곡은 훌륭한 음악성과 교향곡 최초로 Organ이 Orchestra에 편성되어
관현악과 더불어 웅장한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교향곡 제 3번 Organ》은 Saint Saens의 Organist로서실력과 경험의 귀결(歸結)로
이 작품에 Organ과 Piano를 독창적으로 편성하여
Organ과 더불어 관현악과 아름답고 웅장한 효과를 창조해 내고 있다.
*
19세기 후반은 Beethoven을 비롯한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기악 작품 연주가
주축(主軸)을 이루고 있었고, 이 시기에 프랑스의
음악은 오페라가 주도적(主導的)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Beethoven, Weber, Mendelssohn , Schumann 등 작곡가들의 음악이
프랑스에서 감동적인 연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때 특이한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 saens)의
《교향곡 제3번 Organ》이 1886년 5월 19일런던에서 Saint saens의 지휘로
초연(初演)되었고 대 성공(成功)을 거두게 된다.
《교향곡 제3번 Organ》악보에 “Franz Liszt를 추모(追慕)하여“ 라고 적혀 있듯이
이 작품은 Franz Liszt에게 헌정(獻呈)되었다.
이 교향곡은 Saint saens가 작곡한 5곡의 교향곡 중에서 유일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곡으로 Saint saens의 음악적, 예술적 편력(遍歷)과
해박(該博)한 음악 실력을 발휘(發揮)한 작품으로, 프랑스의 전통적인
화려(華麗)함과 우아(優雅)함과 다채(多彩)로움이 극치(極致)를 이루는 작품이다.
대규모 스케일과 악기 편성(編成)에Piano와 Organ 연주를 포함하여 거대(巨大)한
음악의 건축물(建築物)을 연상케 한다.
또한 화려한 Orchestra의 편성과, Piano와 Organ의 연주가 어우러진 웅장(雄壯)함과
연주가 특별하며 Organ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웅장한 연주의 중심에 Organ이 있어 이곡을 Organ 교향곡이라 불린다.
2악장으로 작곡된《교향곡 제 3번 Organ》은세부적(細部的)으로 악장이 구분되어
교향곡 구성(構成)의 4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제 1악장은 웅장(雄壯)하며 당당한 느낌을 주는 1부와 아름답고 서정적인 2부로 구성되며
제 2악장은 화려(華麗)한 Scherzo와
Fuga풍의 장엄하고 경건(敬虔)한 부분으로 나누어 졌다.
화려하며 서정적이고 웅장하고 강인(强靭)한 느낌을 주는 신비(神秘)스런 교향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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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악장 Adagio Allegro moderato poco adagio
제 2악장 Allegro moderato-Maestoso
Conductor : Alfred Scholtz
Muncher Symphony Orchestra
생상스 교향곡의 웅장하고 화려한 Scherzo와 Fuga풍의 장엄하고 경건하게
1악장의 느낌과 다르게 본격적으로 연주된다.
다른 교향곡의 Scherzo처럼 빠르고 힘차게 연주되며 제 1악장의 테마가
휘몰아치는 듯 반복하여
Organ 연주를 준비하는 듯 분위기를 조성한다.
Piano의 화려한 분산화음(Arpeggio)이 연주되며 2부는 다시 처음의 주제가
현악기로 연주되다가 Organ으로 이어진다.
Orchestra와 Organ의 연주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피아노 연주가 하모니를 이루고 화려한 피날레를 준비하며
마지막 연주 Allegro Maestoso로 Organ의 웅장한 연주가 시작되며
Organ 교향곡을 느낄 웅장한 연주와 Orchestra의 힘찬 연주가 이어진다.
Organ의 웅장한 연주에 Piano의 밝고 경쾌한 연주가 이어지고 다시 Organ
이 역동적으로 연주되며, 하강하는 느낌의 Organ 연주와
강력하며 역동적인 Orchestra의 연주가
인상적이며 연주가 끝난 후에도 감동이 이어진다.
***
19세기 후반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 과학과 물질문명의
이기(利器)는 사람과 세계의 거리를 좁혀 주었다.
사람들은 문학과 미술, 음악과 같은 예술을 통하여
순수(純粹)한 가치를 확인(確認)하고 상상의 자유도 보장(保障)받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
감상(sentimentality), 향수(nostalgia)와 같은
낭만의 속성(俗性)들은 이미 중산층의 보편적 정서가 되었고 음악계(音樂界)에도 피아노의
발명과 악기들의 진화(進化) 등
많은 변화(變化)와 발전(發展)이 있었다.
Saint Saens는 19~20세기의 위대한
음악정신(音樂精神)의 소유자라는 평가(評價)를 받는 대표적인 인물로 프랑스의 음악
진흥(振興)에 기여(寄與)한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는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이며, 지휘자로, 평론가(評論家)로, 시인, 화가로
각 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펼치며 명성(名聲)을 떨쳤다.
12세에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과에 입학하여16세 때 《교향곡 제 1번》을 작곡하였고,
21세 때 《교향곡 제 2번》을 작곡, 발표(發表)하여
성 세실리아 협회 콩쿠르에서 1위 입상(入賞)을 했다.
1879년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Samson and Delilah》를 발표했으며 그 후 19편의
오페라와 8편의 극음악(劇音樂)을 작곡했다.
또한 그는 국민음악 협회를 조직, 프랑스의 새로운 음악 진흥(振興)에 진력했고,
기악곡(器樂曲)을 작곡하여 《죽음의 무도》,
《헤라클레스의 청년시절》, 《피아노 협주곡 제 2, 4, 5번》과
《바이올린 협주곡 제 2, 3번》등과 많은 실내악곡을 많이 작곡했다.
Saint Saens는 독일의 고전파와 낭만파를 이해하며 아름다운 구성미(構成美)와 풍부한
음악성으로 크게 성공했다.
Hector Berlioz와 Schumann, Richard Wagner, Mendelssohn 등의 영향(影響)을
받은 Saint Saens의 음악 기법(技法)은
오히려 고전주의적이며, 우아(優雅)하며 균형(均衡)과 세련미(洗練味)가 넘친다.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Saint Saens의 예술은 라틴 적이어서 명랑하며,
정밀(精密)하고 간소(簡素)한 표현으로 우아하다.
부드러운 화성과 유연(柔軟)한 조바꿈, 넘치는 희열(喜悅)은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등
고전(古典)의 기초(基礎) 위에 선 것“이라고 말했다.
Saint Saens는 프랑스 후기 낭만주의 최고의 작곡가이며 어려서 Mozart와 비교되는
천재로 음악적 업적(業績)을 많이 남긴
유럽에서 존경(尊敬)받는 최고의 예술가(藝術家)였다.
Saint Saens는 Piano와 Organ 연주는 역사상 최고의 연주자로 알려져 있으며,
Berlioz나 Bizet 도 Saint Saens를
최고의 Piano 연주의 거장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Franz Liszt는 그를 세계 제일의 Organist라고 했다. 아베마리아의
Gounod는 Saint Saens를 가르켜 "프랑스가 낳은 Beethoven"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일생을 미혼(未婚)으로 살며 이국의 정서(情緖)에 많은 매력을 느껴 여행을
좋아했고 여행 중 1921년 12월 16일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86세를 일기로 타계(他界)했다.
그의 장례(葬禮)는 프랑스 국장(國葬)으로 예우(禮遇)를 갖추어 치러졌고
애국자(愛國者)로 추대(推戴)되었다.
주요 작품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1877), 《Etienne Marcel 》(1879), 《헨리 8세》(1883),
《아스카니 Ascanio》(1890), 6개의 드라마를 위한 9개의 부수음악,
40여곡의 종교음악, 140곡의 가곡《교향곡 A Major》(1850), 《교향곡 제1번》(1853),
《교향곡 F Major Urbs Roma》(1856), 《교향곡 제2번》(1859), 《교향곡 제3번》(1886),
《죽음의 춤》 등 4곡의 교향시곡(1874), 피아노 협주곡 5곡(1858-1896),
4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2곡의 첼로 협주곡, 16곡의 독주곡, 《동물의 사육제》(1886),
2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2개의 첼로 소나타, 3곡의 관악기를 위한 소나타,
2곡의 현악4중주곡, 2곡의 피아노 트리오, 2곡의 피아노 4중주곡,
45곡의 피아노 독주곡(마주르카, 왈츠 등), 3개의 연습곡집,
《베토벤 주제에 의한 변주곡》(1874), 《하모니를 위한 작품집》


Avantgarde Basshorn & Tri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