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부활
안녕하세요.
제가 음악다방에서 처음으로 여러분께 추천할 앨범은 1981년, 단 한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사라진 마그마의 데뷔 앨범 입니다.
이 앨범은 그 동안 롹매니아들에게 입소문으로 전해지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로
자리 매김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는 물론, 유럽과 일본의 컬렉터들에게도
수집대상으로 관심이 쏟아졌을 만큼 희귀 아이템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중고 LP의 가격이 30만원이 호가할 정도로 높았던 것은 단순히 그 희귀성만은 아니었죠.
국내 최초의 하드롹 앨범이라는 것과 트리오라는 형식의 헤비한 싸이키델릭 장르의
밴드로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마지막 세대라는 점이 바로 본작의 음악적 가치일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이 앨범과 비교할 수 있는 헤비함을 지닌 것은 아마도 ‘작은거인 2집'이
유일하지 않나 합니다.
1977년에 열린 제1회 대학가요제는 주최한 mbc측도 예상하지 못한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경쟁사인 TBC에서도 ‘해변가요제’라는 이름으로 경쟁에 참여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1회 대학가요제의 수준을 보고 자극받은 대학가의 고수들이 뛰어들어 진검승부를 펼치며
국내 가요계를 풍성하게 하는데 일조를 했죠.
‘긴급조치x호’ ‘대마초파동’ 등으로 맥이 끊어진 국내 롹씬에 새 물결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캠퍼스밴드’라는 단어의 탄생이었죠.
연세대 지질학과에 재학중이었던 조하문은 어린 시절부터 노래 잘하는 소년으로 유명했고
Deep Purple, Grand Funk Railroad, 신중현등의 영향을 받아 고교시절부터 스쿨밴드를
조직하여 활동했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밴드 ‘아스펜스’ 멤버로 활동하며 서양의 롹넘버들을 카피하여
대학가에서 인기를 얻기도 했었죠.
정기 연고전의 응원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날, 조하문은 합주실에서 연주를 하던
김광현 (연세대 불문학과)를 보고 그의 연주에 반해 새로운 밴드의 결성과 합류를
제안하여 ‘마그마’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라이너스(‘연’으로 유명한)에서 베이스를 담당하던 문영삼의 동생인
문영식(서울대 경영학과)를 드러머로 영입하여 라인업을 완성하죠.
1980년, 제4회 대학가요제에서 ‘해야’로 은상을 수상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보일 만큼 음악적 자신감에 차 있었죠.
(지금도 헤비메틀이나 하드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당시에 심사위원이라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인사들에게는 이들의 음악이 거부감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프로뮤지션으로의 길을 포기했던 그들은 기념으로 앨범이나 하나 내자는 기획사의
권유로 독집앨범을 내게 됩니다.
본작을 이루고 있는 트랙들에 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하죠.
대다수의 곡들이 조하문의 천재성과 김광현의 센스가 번뜩이는 걸작들입니다.
첫곡, ‘알 수 없어’부터 조하문의 보컬과 김광현의 삭막한 퍼즈톤의 기타가
청자(聽者)를 스트레이트하게 밀어붙입니다.
후반부에는 블루스풍으로 분위기가 바뀌는 나름대로의 색다른 구성을 보여줍니다.
세번째 트랙인 ‘아름다운 곳’은 오프닝 부분의 싸이키델릭한 분위기와
조하문의 질러대는 보컬로 인해 외국의 평론가들이 일본의 ‘Flower Traveling Band’와
비교하기도 했던 뛰어난 곡입니다.
이 곡에서 김광현의 연주는 마치 ‘Messiah Will Come Again’에서 Roy Buchanun이
보여준 상승하는 피킹 하모닉스를 연상시킵니다.
네번째 트랙, ‘기다리는 마음’은 앨범 전체를 볼 때 조금 튀는 성인 취향의
발라드곡으로 조하문의 박자를 당겼다 늦췄다하는 보컬이 인상적인 곡입니다.
여섯번째 트랙, ‘해야’는 그 동안 mp3로 인터넷에서 떠돌던 버전과는 다른 전반부의
오버더빙된 김광현의 아르페지오 연주가 오리지널의 신선한 매력을 주는 곡입니다.
이어지는 ‘잊혀진 사랑’은 단연 본 작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명곡으로 원제가
‘4차원의 세계였다가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잊혀진 사람’으로 바뀐 것을
제작과정에서 오타로 인해 다시 ‘잊혀진 사랑’으로 제목이 정해진 사연이 있는 곡입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 같기도 하고 인간의 생로병사,
인생을 그린 듯한 철학적인 가사와 김광현의 싸이키델릭한 연주, 그리고 조하문의
날카로운 보컬은 묘한 긴장감과 몰입도를 보여 주죠.
곡의 구성, 연주, 편곡등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진정한 마스터피스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트랙, ‘탈출’은 이 앨범의 유일한 연주곡이자 김광현이 단독으로 작곡한 곡입니다.
도입부와 초반부의 연주와 톤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멜로디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모습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괜찮은 수준의 연주를 보여줍니다.
당시 대학가의 기타리스트들 중에서도 ‘작은거인’의 김수철과 ‘활주로’의 지덕엽,
그리고 마그마의 김광현은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뮤지션이었죠.
‘천재’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았던 김수철과 솔로연주에서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지만 훌륭한 리프를 만들어내고 작곡에도 소질을 보여주었던 지덕엽에 비교하여
김광현은 이민 시절, 롹의 본바닥에서 스쿨밴드를 했던 경험에서 나오는 센스와
헤비한 기타톤이 매력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럴 수가 있을까(2nd)’와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5th), ‘그날(8th)’같은 트랙은
닭살스런 가사와 십대 소녀들이나 좋아할 분위기의 곡들이라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80년대 중반, 전영혁은 그의 프로그램 ‘25시의 데이트’에서 ‘잊혀진 사랑’을 가끔
들려주며 ‘세계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던 아까운 밴드’라는 멘트로 아쉬워 했었습니다.
조하문은 ‘이 밤을 다시 한번’ 등으로 이른바 ‘남자들의 발라드’ 전성시대를 잠시 열며
인기를 얻은 후 목사로 변신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고 김광현은
대구대에서 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문영식은 경제연구소를 거쳐 대기업 임원으로
재직하고있답니다.
그 동안 입에서 입으로만 그 명성이 전해지고 경제력이 받쳐주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거래가 되던 이 앨범은 극적으로 지하창고에서 마스터 테이프가 발견돼서 2004년,
깨끗한 음질로 리마스터링되어 재발매 되었습니다.
LP의 경우, 국내에는 이제 제작하는 업체가 없어 미국으로 마스터를 보내 만들어 왔죠.
그런데 재발매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일까여...
합지커버(LP Style Mini Sleeve) CD(리버맨 발매)와 LP는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아 거의
모두 품절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음반 역시 80년대 초반에 나온 것이라 녹음 수준이 우스운 지경입니다.
왜곡된 스네어와 심벌즈 소리에 솔로보다 리듬이 더 크게 녹음된 기타 소리와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은 사운드...옥의 티라고나 할까요.
오늘은 시대를 너무 앞서갔기에 사그러들 수 밖에 없었던 마그마와 그들의 앨범을
추천하며 ‘비운의 천재’ 조하문을 잠시 기억해 봅니다.
그럼 바빠서 이만...
TRACK LIST
A - 1.알 수 없어
2.이럴 수 가 있을까
3.아름다운 곳
4.기다리는 마음
5.우린 서로 사랑하니까
B - 1.해야
2.잊혀진 사랑
3.그날
4.탈출
Original Released in 1981(힛트 레코드)
Reissue(CD) - 리버맨 뮤직(600장 한정 발매), 비행선(2004)
Reissue(LP) - 비행선(600장 한정 발매, 2004)
B-2.잊혀진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