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1906~1975)/Symphony No.5 in D minor, Op.47//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교향곡 제5번《혁명》Op.47   10-02-10
글쓴이 정병구   5,245 hit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교향곡 제5번《혁명》Op.47

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1906~1975)
Symphony No.5 in D minor Op.47



Ilya Yefimovich Repin,1844~1930
Bunch Portrait of Vera
Ilyinichna Repina the Artist's Daughter

*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1844~1930)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 회화(繪畵)가 서구의 모방에 침체되어 있을 때
이를 탈피(脫皮)하여,고유의 민중성과 사실성을 그려 러시아 회화의
위상을 정립한 러시아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예리(銳利)한 사색(思索)과 관조(觀照)에 의거 모티브(Motive)를 선택하여
다양한 소재의 그림과 러시아 대 문호의 초상 등, 천(千)의 영혼(靈魂)을 그렸으며
삶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조형(造形)의 영역으로 구축(構築)한 화가이다.

또한 민중의 정서(情緖)를 회화로 대변(代辯)하며, 제정 러시아의
사회상과 불의에 항거하여 변혁(變革)의 시대에 동참한 위대한
19세기 러시아의 리얼리즘(寫實主義, realism)의 거장(巨匠)이다.








1975년 8월 9일 Dmitrii Shostakovich는 마지막 작품
《비올라 소나타 op 147》을 완성하고
심장병으로 모스크바에서 6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소련 공산당은 Shostakovich의 영전에

“공산당의 충성스런 아들인 Dmitrii Shostakovich는
소비에트 음악의 발전과 사회주의(社會主義)
휴머니즘, 인터내셔널리즘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전 생애를 바쳤다.”

라고 헌사(獻辭)를 바쳤다.

영국의 타임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며
공산주의 소비에트 권력에 대한 헌신적(獻身的)인 신봉자(信奉者)“
라고 보도했고,

뉴욕 타임스는
“가혹(苛酷)한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받은
충성스런 공산주의자“
라고 보도했다.

이렇게 Dmitrii Shostakovich는 Stalin체제하에서
사회주의(社會主義) 리얼리즘(realism)을 성실하게 실천하는
소련의 국민적 대 음악가로 추앙(推仰)을 받았고
민주 진영에서는 보수적인 어용(御用) 작곡가로
평가(評價) 절하(切下)되었었다.

그러나 사후(死後)에 사회주의 realism과 이데오르기와는
관계없이 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며 그의 음악가로의 업적은
더욱 빛을 발하며 세계적인 현대 음악가로 존경을 받고 있다.

파퓰러(popular)한 명곡으로 《교향곡 제5번과 제9번, 제1번》은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로 정착이 되어 많은 애호가들의 절찬리에 연주되며,
《현악4중주 8번》과 《피아노 트리오 2번》도
실내악의 걸작으로 자주 연주되고 있다.

*

Dmitrii Shostakovich는 제정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burg)에서 1906년 출생했다.

9세 때부터 어머니 바실리에프나에게 피아노와 작곡 수업을 했으며
1917년 러시아 붉은 혁명이 성공한 후 Shostakovich는
1919년 St. Peterburg 음악원에 입학하여 작곡은 Shteinberg에게,
피아노는 로자노바와 레오니드 니콜라에프에게 사사하였다.

Shostakovich는 음악원에서 다양한 형식과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으며,
음악원 졸업 작품으로 《교향곡 제 1번》을 작곡하여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던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부르노 발터(Bruno Walter) 등에 의해 소개되어 명성(名聲)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졸업 작품으로 《교향곡 제 1번》을 1926년에 초연한 후
Shostakovich는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며
1927년 바르샤바(Warsaw) 국제 콩쿠르에 참가하였고,
베를린에서 《교향곡 제 1번》을 초연한 후
작곡에 전념하여 1927년에 《교향곡 제2번》을 발표하였고
1929년에 Stalin 공산당 문화 관료로부터
형식주의(Formalism)적이란 비판을 받은
고골리(Nikolai Vasilevich Gogol)의 작품으로
작곡한 풍자 오페라《코》를 작곡했다.

평생 친구가 된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지휘자
소렌티스키를 통하여 Gustav Mahler 음악의 영향을 받았고,
그 후 《교향곡 제4번》을 작곡하였으나
어둡고 암울했던 소련의 현실을 반영한 듯한 이곡을
Stalin의 정치적 탄압이 두려워 34년간 공연을 할 수 없었다.

1934년 쇼스타코비치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맥베스 부인을 번안한 니콜라스 레스코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Lady Macbeth of the Mtsensk District》을
발표하였으나 이는 Shostakovich에게 치명적인 작품이 되었다.

볼쇼이 극장에 이 공연을 참관한 Stalin이 내용 중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남편을 살해하는 장면보고 불편한 심기(心氣)로 퇴장했다.
며칠이 지난 후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紙는
Shostakovich의 형식주의(Formalism)를 맹비난했다.

그 후 그의 작품은 공연이 금지되었고 정부와 공산당이 제작하는
선전 영화음악으로 연명(延命)할 수밖에 없었다.

레닌(Vladimir Lenin)의 붉은 혁명(革命)이 성공한
1917년 러시아는 문화적으로 가능한
자유의 시대를 맞게 되었고 러시아의 예술인들은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은 아방가르드 주의를 실험했다.

Shostakovich는 죽음과 종교를 주제로 한
Gustav Mahler의 심포니를 좋아 했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4번》은 절망을 주제로 작곡을 했으나
Stalin과 사회주의 승리를 찬양(讚揚)하기 위한 예술만 존재했던 시대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환영 받을 수 없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나의 創造的 回答)이라는 글에서
“나는 소련에서도 비극이라는 장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비극은 셰익스피어(Shakespeare) 비극의 인생을
긍정하는 pathos와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이념에 의해 채워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그의 갈등(葛藤)과 비극적인 상황이 이 교향곡에 내재되어 있음을 회고한다.

Shostakovich는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었으나
공산당과 정부, 프라우다 등에 의해
핍박과 비판에 시달리며 작품 활동에 많은 제재를 받고 있었다.

그의 비난과 핍박(逼迫)의 이유는
“건전해야 하면서도 간결하고 명확하며
인민에 봉사해야 할 예술 정신에서 이탈(離脫)했다.“
는 이유였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비판을 받으며
당의 정책에 순응하려는 노력을 기우렸다.

《교향곡 제 5번》을 작곡한 후 Shostakovich는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성의 구축(構築)에 있으며,
그 중심에는 인간을 설정하여 그가 겪는 갖가지 체험을 상상해보았다.
피날레 부분에서는 1,2,3 악장에서 나타난 비극적인 긴박(緊迫)했던
상황들을 해소하며, 밝은 인생관과 생을 영위하는 당위성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했다. “
라고 회고(回顧)하며
암울했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의식하며,삶에 대한
긍정적인 신념을 이 작품 속에 강렬하게 투영(投影)하기 위해 노력했다.

종전 후 Shostakovich는 《교향곡 제9번》을 발표했고 Stalin은
세계 제2차 대전의 승리를 기리는 장대한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은
걸작(傑作)을 기대한 Stalin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미술은 조형(造形)이나 그림으로, 문학은 언어로, 출판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Stalin 체제를 비판했는지 옹호(擁護)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용이하다.

그러나 음악은 인간의 감정과 의지와 마음과
상황 등을 표현하는 추상적(抽象的)인 예술 활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가 없는 교향곡의 다양한 뉘앙스와 표현의 섬세함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전달되는 메시지를 판단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러나 공산당이 작곡가 보다 음악을 잘 알던 Stalin 시대의
공포 정치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과 의지가 내재된 악상을 작품으로 묘사한
《교향곡 제5번》을 소련 공산당이 찬양(讚揚)한 것은 아이러니 하다.

지휘자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는
“스탈린은 절대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이며 폭군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쇼스타코비치를 억누를수록 그는 더욱 강해졌다.
스탈린의 압제(壓制)는 이런 의미에서
쇼스타코비치의 모든 음악에 흔적을 남긴 것이다.”
라고 말했다.


세계 제 2차 대전과 독일의 히틀러는 쇼스타코비치에게
어렵고 곤고한 중에 새로운 삶의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 때에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은 100만여 명의 희생자를 내며
죽음으로 결사 항전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레닌그라드에 투옥(投獄)되었던 쇼스타코비치는
전 세계에 나치 히틀러에 저항(抵抗)할 것을 라디오 방송으로 호소하며
《교향곡 제7번》을 작곡했다.

이 때 부터 쇼스타코비치는 더욱 유명해졌고 이 교향곡은
영웅적인 러시아인의 저항과 승리를 상징한다는 평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정부와 때때로 복잡하고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으며
그의 작품은 수차례 공개된 경고(警告)와
연주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받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쇼스타코비치는
그 시대에 가장 실력 있는 소련 작곡가로 인정을 받았고,
여러 번의 수상 경력(受賞 經歷)이 있었고,
소련 최고 회의 위원직에도 재직되어 있었다.

Avant-garde 시기 초창기를 제외하고 그의 작품은
주로 낭만파의 작품을 작곡했고
Gustav Mahler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쇤베르크의 무조주의 형식을
그의 음악에 도입하여 12음렬 기법을 사용했다.
또한 그의 음악은 강한 대조와 grotesque한 느낌도 있었다.

*



Ilya Yefimovich Repin,1844~1930
Coronation of Nicholas ll
and Grand Duchess Alexandra Feodorovna






제 1악장 Moderato



Kirill Kondrashin, cond.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1964)



Allegro non troppo 변형된 소나타 형식.
비극적 매력을 지닌 주제가 카논 풍으로 연주된다.
이어 바이올린의 독특한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연주되며 발전하여 코다로 끝난다.

느리게 전개되는 서두는 이해하기 쉬운
멜로디의 악상으로 주제부는 당시 정치적인 공포감과
사회적인 분위기를 묘사한다.

폭풍과 같은 Allegro의 연주로 사악한 무리의 파렴치(破廉恥)한
행동을 묘사하다가 다시 따사로운 연주으로 이어진다.

악마(惡魔)의 무리가 공격을 시작하고 폭력을 묘사함이 절정에 이르며
영웅은 없어지고 진혼곡(鎭魂曲)이 연주된다.





제 2악장 Allegretto. Scherzo



Kirill Kondrashin, cond.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1964)




밝고 경쾌한 기분의 왈츠 곡풍으로
중간 부는 민속 무곡 풍으로 연주되며
말러 풍의 왈츠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말러는 그의 음악적 전통에 충실한 랜틀러(Landler)이었다.

영혼이 없는 사악한 무리들의 폭력과 파괴를 묘사하며
바이올린 솔로의 연주와 무리의 군화에 짓밟혀
신음하는 어린이의 절규와 같은 연주되며
풀륫과 바이올린 솔로의 passage가 연주,
그 절박함이 다시 연주되고 사악(邪惡)한 무리들의
행진이 시작되며 이들의 승리를 예고하며 끝난다.



제3악장 Largo



Kirill Kondrashin, cond.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1964)




가장 아름다운 악장으로 그의 독특한 애수와
서정을 느끼며 고통의 분위기가 묘사 된다.

이 악장은 Shostakovich의 교향곡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수려한 멜로디가 연주되는 작품이다.
바이올린을 3개의 파트로 나누었다.

이 악장의 내용은 마지막 밤을 보내고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갈 한 남자일 수도 있고
내일이면 처형(處刑)당할 불쌍한 영혼일 수도 있다.

그 영혼 옆에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고,
울지도 원망(怨望)을 하지도 않는 아내의 따뜻함도 묘사되며,
첼로의 독주는 감동을 자아내며
악장의 클라이맥스를 지나 영웅의 격한 감정은 조용히 사라진다.



제 4악장 Allegro ma non troppo



Kirill Kondrashin, cond.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1964)






Mravinsky. Leningrad Phil Orchestra




슬픔이 다하고 승리의 개가(凱歌)를 울리는 서주로 시작,
행진곡 풍의 경쾌한 음악이 연주된다.
4악장의 finale 부분에 종소리가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폭풍 같은 기세로 영웅은 승리하고
전쟁을 예감하며 드럼과 저역의 호른의 연주가 이어진다.

“이 곡의 finale 에서 나는 생기에 찬 낙관적인 비전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앞의 세 악장에서 드러난 비극적인 느낌들에 대한 해결책을 추구한 것이다.”

-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중-


*




Ilya Yefimovich Repin,1844~1930
Choosing a Bride for the Grand Duke







Shostakovich 《교향곡 제 5번》은
1937년 31세 때 작곡한 곡으로
베토벤 이래의 전통을 고수(固守)하는 문제의 야심작으로
투쟁에서 승리로 이끄는 베토벤의 이념과
상통하는 점이 있고 밝고 명랑하며 환희의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교향곡 제 5번》이 초연된 후 그 당시의 상황을
쇼스타코비치의 주변(周邊) 인물들은 이렇게 증언한다.


“Shostakovich는 1937년
소련 비밀 경찰에게 취조를 받았고
중략- 당시의 쇼스타코비치는 주변 친척들과 친구들이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숙청(肅淸)을 당한 직후로
극도로 섬세하고 민감한 쇼스타코비치가
이러한 공포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는 이때에 최후의 진술일지도 모를 교향곡 제 5번》을 작곡하였다. “


-벤야민 바스너-



“이제 나도 《교향곡 제 5번》은 스탈린 정권하에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의 진혼곡(鎭魂曲)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다.
당시의 상황은 어떤 예술가도 예술의 도구로 스탈린에 대해
저항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으나
오직 기악(器樂)만이 당시의 진실을 말할 수 있었다.

Shostakovich와 동 시대를 살며 스탈린의 압제(壓制)를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의 기록이나 찾을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이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 5번에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네스티에프-



“청중들은 미친 사람들 같았다. 기립박수는 실로 광란 그 자체였다.
이는 무분별한 숙청(肅淸)에 대한 계산된 반항 같았다."


-바실레프나 샤포리니-



“아마도 《교향곡 제5번》은 쇼스타코비치가
평생의 음악 테마로 마음먹은 반 스탈린주의(Stalinism)를
처음으로 청중들에게 발표한 계기일 것이다.

청중들은 이러한 Shostakovich의 메시지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였는데
첫 악장이 끝나고 음악을 이해한 청중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의아해 했다.

대부분의 청중들은 쇼스타코비치의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여
연주회가 끝나면 경찰에 잡혀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초연의 대대적인 성공은 당시 대중이 가지고 있었던
느낌을 충실하게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쿠르트 샨데르링-



“소련 당국은 《교향곡 제 5번》을 발표한
쇼스타코비치를 당장 처형해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연주가 끝난 후 기립박수가 40분 동안이나
계속될 정도로 이러한 대대적인 성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소련 당국도 Shostakovich의 작곡 의도(意圖)를 모르지 않았지만
예상외의 결과에 당황한 나머지 작품의 성공을 자신들의 몫으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Shostakovich를 잘 교화(敎化)해서
그가 청중들에게 받아들어지는 상식적인 음악을 만들었다고 꼬리를 감추었다.

Shostakovich는 당시 러시아 사람들이 겪어야만 했던
일들을 생생하고 정확하게 음악으로 기록한 인물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는 마치 거울과도 같이 음악을 통하여 생생하게 묘사한다.
만일 그가 말이나 언어로 이를 표현했으면 당장에 숙청(肅淸)당했을 것이다.

음악은 추상적(抽象的)인 예술이다. 특히 바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당시 소련 당국은 완전한 바보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 당국은 완전한 바보들이었기
때문에 Shostakovich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공산주의라는 이상적인 이론 속에서 고통을 당하던 우리들에게
음악의 추상성(抽象性)은 더욱 생생한 현실을 묘사해 주게 된 것이다."


-므스티스라브 로스트로포비치-



《교향곡 제5번》은 우리나라와
소련과의 외교관계(外交關係)가 수립되기 전
냉전시대(冷戰時代)에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지휘하는
New York Philhamonic Orchestra에 의해
1979년 서울에서 연주되었다.






Shostakovich는 바르샤바에서 피아노 연주자보다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하며 작곡가로 더욱 유명해 졌다.

음악원 졸업 작품이었던 《교향곡 제 1번》의 양식은 다양하여
차이코프스키(Tschaikovsky)와 힌데미트( Hindemith. Paul),
프로코피예프(Sergei Sergeevich Prokofiev) 등의
영향이 쇼스타코비치의 작품 가운데 자주 나타난다.

이 때 비교적 자유스러운 러시아의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알반 베르그(Alban Berg) 등의
전위 음악가의 작품들도 연주되었다.

힌데미트(Hindemith. Paul),바르톡크(Bela Bartok)가
자신들의 작품을 러시아에서 연주할 정도이었고
쇼스타코비치는 스스로의 작품에
전위적(前衛的)인 경향들을 대입하여 작곡을 해 나갔다.

고골리(Nikolai Vasilevich Gogol)의 작품으로
작곡한 풍자 오페라 《코》에서는 새로운 서양 음악의 경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나며,《교향곡 제 5번》으로 초기 작품의
불안정한 양식에서 탈피(脫皮)하여
그의 개인적인 음악 양식을 정립했다.

《교향곡 제4번, 제5번》은 말러(Gustav Mahler)의 영향이 나타나고
《교향곡 제5번》은 기법상의 급격한 변화를 보이며
음악의 기초를 제공하며, 유기적(有機的)으로 성장해 나간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며
푸가와 샤콘(chaconne)등 바로크의 단일 주제 양식(樣式)을
선호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작곡 의도를 반영한다.

Shostakovich는 1937년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작곡과 교수로 임명되었고,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1941년에도
레닌그라드에서 《교향곡 제 7번》을 작곡하여
낭만적인 곡의 해석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다.

1948년 이후 소련 창작음악은 바닥 없는 수렁에 빠진 것처럼
암울한 시절이 다시 도래(到來)되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당국의 조치로 모스크바 음악원과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교편(敎鞭)생활이 금지되었고
다시 창작 활동에 제약(制約)을 받게 되었다.

스탈린이 타계한 1953년 쇼스타코비치는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방대하고 활달한 작품 활동으로 이어졌다.

또한 그는 프로코피예프(Prokofiev) 이후 러시아 최고의 음악가로
공산주의자이었으며, 정치에도 참여했으나,
작곡가로 정치적 이념을 반영(反映)하기를 거부하여
많은 핍박을 받기도 하며 더욱 빛을 발하였다.

Shostakovich의 많은 작품들에서
사색적(思索的)인 또는 내향성을 찾아 볼 수 있으나
그는 사회성이 강한 작곡가였다.

그의 걸작들은 암울 했던 시절 스탈린의 압제 하에
시대상을 반영하며 곤고함 속에서 더욱 창작력(創作力)이 샘솟았으며
이를 통하여 진솔(眞率)한 음악 언어와 만날 수 있었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서 유럽의 모더니즘(modernism)의
영향을 받았던 시절을 제외하고 대체로 스탈린의 정치적인 요구에 따라
형식은 민족적으로, 내용은 사회주의적으로
평이(平易)한 신고전주의적인 양식(樣式)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Shostakovich는 로마의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되었고
로열 필하모닉 협회의 금메달과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존경받는 성공한 음악가로 말년을 유복하게 보냈다.

1955년마비로 다리 한쪽이 불편해 졌고
1958년 중풍 증세로 오른팔이 불편해져
피아노 연주를 포기했고 1975년 폐암이라는 설도 있으나
심근경색, 심장병으로 타계했다.



주요 작품으로



《교향곡 15곡》《관악 4중주 15곡》과 오페라와 발레음악
영화음악 등 147곡의 작품을 남겼다.
《3개의 환상적 춤곡 (피아노곡)》 op.5,
오페라 《코》 op.15, 모음곡 《황금시대》 (4곡, Orchestra) op.22a,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op.29,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c단조》 op.35,《첼로 소나타 d단조》 op.40,
《현악 4중주곡 제 1번 C장조》 op.49,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op.81,
《24개의 전주곡과 푸가(피아노곡)》 op.87
블로크의 시, 《7개의 로만스 》op.127, 교향시 《10월 혁명》 op.131,
《비올라 소나타 C장조》 op.147,등이 있다.







Ilya Yefimovich Repin,1844~1930
Portrait of poet
Grand Prince Konstantinovich Romanov 1891



 


johnansaz 22-04-1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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