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④Pyotr Il'yich Tchaikovsky(1840~1893)/Piano Concero No.11 in Bb minor. Op.23//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피아노 협주곡 제1번   09-09-12
글쓴이 정병구   6,444 hit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피아노 협주곡 제1번

Pyotr Il'yich Tchaikovsky(1840-1893)/
Piano Concero No.11 in Bb minor. Op.23


Francois Boucher
(Madame de Pompadour)
Oil on canvas 131×163 cm.1747.Art Institute Chicago







불후(不朽)의 명곡과
화려하고 섬세하며 아카데믹한 거장(巨匠)들의 명화가 어우러져
감동이 더욱 배가(倍加)되는 음악다방을 기대하며

바로크 미술(Baroque art)의 거장인
루벤스(Peter Paul Rubens),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가브리엘 메추(Gabriel Metsu),
카를 반 루(Carle Van Loo)와

로코코 미술(Rococo art)의 거장인
프랑수와 붓셰(Francois Boucher),
앙투안느 와토(Jean Antoine Watteau),
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augh),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 Honore Fragomare),
티에블로(Giovanni Battista Tiepolo)와

19세기 인상주의(印象主義) 거장인
르느와르(Pierre Auguste Renoir)와
Academic classical artist인
코트(Pierre Auguste Cot) 등의 명화를 게재(揭載)했다.







세계 4대 피아노 협주곡으로
베토벤, 쇼팽, 그리그 협주곡에 이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Bb단조 Op.23>을 게재(揭載)한다.

※ 주옥(珠玉)같은 불후(不朽)의 많은 명곡 중에서
어느 시대에 어떤 기준으로 4대 협주곡으로 선곡(選曲)했는지
참으로 모순(矛盾)이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 누구로 부터인지
그렇게 불려지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도 4대 협주곡으로 기재(記載)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미 <1812년 서곡>으로
음악 다방(2008. 4. 26)에서 소개한바가 있다.

우수(憂愁)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암울(暗鬱)했던 시기에
1840년 5월 7일 러시아 우랄지방 보크킨스키에서
광산 감독관직의 아버지와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4세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고
이미 6세 때에는 능숙해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관직에 있다가
1860년 안톤 루빈스타인(Anton Grigorievich Rubinshtein, 1829~1894)의
음악교실에 입학하여 음악공부를 시작하였고
폰 메크 부인의 연금으로 교직을 떠나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의 음악은 낭만주의를 넘어서지 못했으나
18세기에서 19세기 초 러시아 고전주의 음악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예술가라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우리가 오늘 겪고 있는 이 음산한 시대에는
오직 예술가만이 이 현실로부터
시야를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라고 말할 정도로
질식할 것만 같은 암울했던 러시아, 이 시대에
대 문호인 체홉, 도스토예브스키, 투르게네브도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러시아적인 어두운 정서와
지식계급 사이에 뿌리 깊었던
세기말적 염세주의와 우울한 러시아의 사회상이
그의 작품을 통해서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의 40 여 년간 창작 중에는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표제 음악(標題音樂)적인 색채가 짙고
주법상 바이올린과 피아노에서 많은 진보를 보였으며,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악파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전적인 작풍(作風)과 신선한 음악으로
독특한 매력을 유지했다고 볼 수도 있다.

차이코프스키 일생은 1854년 14세 때의 왈츠에서
1893년에 완성된 <교향곡 제 6번. 비창>으로 끝이 났다.

그의 창작활동은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 퇴임 시기를 중심으로 2기로 나눈다.
전기는 비평과 교직에 종사했던 시기로
낭만적인 향취와 현란한 색채감이 있으며,
후기는 교향곡 제 4번(1877)이후
충실한 창조력과 기법의 완결의 시기다.

또한 교향곡과 발레음악 분야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빛을 발하며,
국민주의 음악을 기초로 서유럽 전통을 발전시키고
19세기 러시아 시민 문화와 그 맥락을 같이 하며,

그의 음악은 러시아의 민족주의 작곡가들의
음악과 동질성이 보여지고
미하일 글린카로부터 비롯된 화성을 다루고 있으며
발라키레프의 민속 음악과 더욱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탈리아 오페라
프리마돈나인 데지레 아르토와의 염문 이후
밀류코바와 결혼했으나 행복하지 못했고,
남은 생애를 좌절과 고독 속에 살며,
폰 메크와의 플라토닉한 관계는 오래 동안 지속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작곡에 정진하며
미국과 영국 등 많은 지역을 여행했다.
1889년에는 <피아노 협주곡 1번 Bb단조 Op.23>을
영국에서 지휘했고 1893년에는 교향곡 4번을 지휘했으며
1893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교향곡 제6번 B단조 Op.74><비창>을 작곡,
10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을 지휘했지만 호평을 얻지 못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과
그의 생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매혹적이며 자기 표현적이며
때로는 천박하며 때로는 화려하기도 한
그의 인생과 음악은
후기에는 절망감이 뚜렷하고
걸작인 교향곡 제6번에서 절정에 이르고 있다.

그의 작품은 풍부한 선율적인 영감과 상상력
그리고 관현악법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보여준다.

후기에는 러시아 민족주의를 거부하고 있으나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기초는
러시아 국민악파 작곡가만큼 러시아적이며
러시아에서의 그의 위상은
음악가와 대중 사이에 성공적인 가교가 이루어 졌다.

이렇게 그는 서정적인 작품을 통해
폭 넓은 계층의 청중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한편으로는 그의 진정한 음악적 재능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었으나

차이코프스키는 발레 음악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지칭되며,
교향곡을 비롯해 많은 작품들도
훌륭한 음악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피아노협주곡 제 1번>과 <바이올린 협주곡>은
더욱 높이 평가를 받는 명곡으로 자리하고,
연주기교를 통한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그의 음악은 독일의 낭만주의 음악 성향과 많이 가깝다.









차이코프스키는 3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1875년 Op.23.제 1번. 1880년 Op.44. 제2번 G장조.
1893년 Op. 75.제3번 Eb장조를 작곡하였다.

그 중에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은
대중의 인지도에 있어 2곡을 능가한다.
영혼을 감싸 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 기교는
이곡을 명곡으로 지칭하기에 충분하다.

4대의 호른의 연주로 시작하는
포르티시모의 충격적인 느낌,
피아노의 경쾌한 선율에 이어
현악기의 아름다운 선율은
이 협주곡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러시아의 향토적인 냄새가 풍기는
서주의 주제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서주 이외의 부분은 개성적이며
완성도가 높으나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낭만주의 시대 피아노 협주곡들은
도입부가 충격적인 것이 많으나
리스트, 슈만, 차이코프스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특별하게 대규모 화려한 시작을 보이는 것이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이며,
베토벤의 제 5번 협주곡(황제)이
화려한 피아노 카덴차로 시작된 것만큼 충격적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1874년 12월 작곡하여
평가를 받기위해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장이며 친구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Nikolai Grigorievich Rubinshtein, 1831~1881)을
찾아서 직접 연주하여 들려주었다.

호의적인 평가를 기대했던
차이코프스키에게 루빈스타인은 혹독한 평을 하였다.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차이코프스키의 편지의 내용은

“나의 피아노협주곡은
연주가 불가능한 듯이 보였으며,
쓰레기 같은 것이었다.
곡을 구성하는 패시지들은
어색하고 서투른 것이어서 구제불능이었다.
작품 자체가 좋지 못하고 천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의 작품을
그대로 사보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이 협주곡은 두 세 페이지만을 건질 수 있을 뿐
나머지는 완전히 다시 써야 했다. “

이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루빈스타인으로부터 받은
차이코프스키의 심적 충격과 상처를 알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협주곡을
한스 폰 뷜로에게 초연을 의뢰했고
보스턴에서의 초연은 대 성공을 거두었다.
모스크바의 초연은 세르게이 타네예프의 피아노 연주와
혹평을 했던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1878년 3월 22일 이루어졌다.

이 곡은 젊은 피아니스트인
세르게이 타네예프에게 헌정되었다.

*

차이코스키는 1893년에 <교향곡 제 6번(비창)>을 작곡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
이곡을 지휘하고(10. 28)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초연 당시 청중들은 냉담했으나
차이코프스키의 사후에 이곡이 재연될 때
청중들이 감동하여 흐느끼는 소리가
오케스트라를 능가 할 정도였다고 기록한다.

어둡고 우울하며 절망적인 비창(Pathetique)의
제 4악장은 스스로의 죽음을 암시한 것처럼 슬픈 곡이다.

그의 사인은 콜레라, 동성애로 인한 자살설 등이 있으나
우리는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답고 훌륭한 선율과 음악으로
세계 음악사에 기여한 귀중한 공로와 업적을 기억하며
그의 불후의 명곡인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감상한다.








Carle van Loo(Music)




전곡 이어 듣기




Vladimir Horowitz. piano
Arturo Toscanini. conductor
NBC Symphony Orchestra



Toscanini




제 1악장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
(너무 빠르지 않게 그리고 매우 웅장하게) 3/4박자






서주가 있는 자유스런 소나타 형식으로
도입부는 4대의 호른의 연주로 시작되며
피아노는 서주의 제시가 끝나며 연주가 시작된다.

이 주제는 차이코프스키가
카멘카에서 거리의 눈먼 거지들이
부르던 노래를 스케치 해 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Db장조로 전환하여 아름답고 서정적인
서주의 주제를 첼로와 바이올린이 연주한다.
피아노 독주는 겹친 화음을 계속 연주한다.

현악기의 피치카토와 피아노 독주가
제1주제를 변주하여 연주하고
카덴차로 변화, 화려한 연주가 계속된다.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의 투티로
서주의 테마를 연주한다.

주부는 Allegro con spirito, 4/4박자이며
Bb단조로 전개되며 피아노가 주제를 튕기듯 연주한다.
테마는 피아노와 풀륫 클라리넷 등
목관악기에 의해 전개되고 피아노가 화려한 기교로 연주한다.

제 2주제는 클라리넷과 바순에 의해
poco meno mosso로 연주된다.
조성은 Ab장조 현악기가 약음기을 장착하여
주선율을 연주한다.
제2주제를 피아노가 하강음형으로 변주하여
기교적이고 극적인 토카타 풍의 경과 부를 지나
새로운 악상으로 돌입한다.

카덴차 이후 종결부에 이르러
제 1주제와 제2주제가 계속 연주되고
피아노의 웅장한 연주와 함께 제 1악장을 마친다.

악장의 규모가 크고 서주의 강렬한 주제가
두 번 연주되지 않아 전체적으로 산만할 수 있으나
악장과 악장사이 유기적인 연결을
통하여 균형 잡힌 연주로 끝난다.



2악장 - Andate semplice
(느리고 간결하게), 6/8박자






현악기가 조심스럽게
Db장조의 피치카토를 연주하며
제 1악장의 긴박감을 정화한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제 2악장의 주제를
풀륫 독주의 단순한 선율로
화려하고 웅장한 제1악장과 대조를 이루며
피아노는 풀륫의 악상을 이어받으며 연주된다.

독주부의 화음은 연주하기 편하지 않으며
변주된 주제는 스타카토로 계속되다가
첼로가 이어 연주한다.

주제의 연주는 다시 오보에로
피아노는 장식음의 짧은 터치로 경쾌하게 연주되고
프랑스 민요를 모티브로 소박한 노래가
비올라와 첼로에 의해 연주된다.

제2악장은 즐거운 악장이며
연주는 고도의 기교가 요구된다.
빠른 악상은 양손이 교차하는 카덴차로 이어지고
pesante, Risoluto molto로 다시 느리게 연주된다.

피아노가 트릴로 주제를 연주하고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연주가 이어지며
풀륫의 연주로 끝을 맺는다.



제 3악장 Allegro con fuoco
(빠르고 격렬하게), 3/4박자







론도형식이며 마지막 악장은
러시아 농민의 무곡을 소재로 작곡한
흥겨우며 약간 투박한 곡이다.

주제는 피아노 연주로 b플랫 단조로 제시되며
경쾌하며 리드미컬한 러시아의 향토색이 드러나 있다.

대응되는 주제의 연주를
오케스트라 투티로 G장조로 연주한다.
거칠고 경쾌하게 연주하며
이어지는 피아노 연주는
러시아의 겨울바람처럼 양손을 교차하며
스케일을 연주한다.

제2주제가 현악기와 피아노 연주로 이어지며
두 개의 주제의 연주가 반복되고
변칙적인 론도형식을 이루게 된다.

피아노는 한 옥타브 간격을 유지하며
경과 부를 연주, 1주제를 풀륫이 연주,
현악기가 트레몰로 연주에
팀파니의 연주가 이어지고 코다로 돌입한다.

제 2주제를 오케스트라의 투티와
피아노의 독주로 매우 웅장하게 연주하며
이 악장의 클라이맥스로 나아간다.

종결부는 제 1주제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토카타풍의 화려한 독주의 기교를 유감없이 과시한다.


***


주요 작품으로


번호 없는 초기 소품이 약 20곡
교향곡 6곡. 미완성 교향곡 1곡. 교향시 1곡.
오페라 11곡. 발레곡 3곡.
다수의 실내악곡. 피아노곡. 가곡 및 협주곡 등이 있다.

<사계> <교향곡 6번 '비창'> <피아노 협주곡 1번>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4번> <교향곡 5번>
<현을 위한 세레나데 C 장조> <1812년 서곡>
발레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인> <호두까기 인형>
오페라 <예브게니오네긴> <스페이드의 여왕> <마제파>
저서 <화성학 개요>









Carle van Loo
(The Grand Turk Giving a Concert to his Mistress)
1737. Oil on canvas. 28 5/8 x 35 3/4 inches (73 x 91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