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⑶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1809 ~1847)/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09-10-03
글쓴이 정병구   5,284 hit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1809 ~1847)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





Louise Elisabeth Vigee Lebrun(Portait of Annapitt as Hebe. 1792)
Oil on canvas 140×100cm The Hermitage,St.Petersburg,Russia
.






많은 천재적인 음악가들은
어려움과 궁핍한 생활 속에서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며
생계수단으로 음악 활동을 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멘델스존은 1809년2월 3일
명망 높은 유태인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완벽한 음악 교육을 받았고
베를린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괴테와 절친했던
젤터(Karl Friedrich Zelter)교수로부터
화성법과 대위법을 배웠다.
또한 작곡과 음악이론을 공부하고
바흐의 대위법과 모차르트의 고전 양식을 교육을 받았다.

Felix라는 이름의 뜻대로
행운아로 태어난 멘델스존은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멘델스존은 두 살 때 부모들이 베를린으로 이사했고
음악과 그림, 어학 등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나타냈으며,
여러 악기를 다루게 되었다.

아홉 살 때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고,
열 살 때는 작곡을 시작하여 주위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조부 모세 멘델스존은 철학자로
독일의 소크라테스라 불리는
사상 계몽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부친은 함브르크의 명망 높은 은행가로,
모친은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재원이었다.
유복한 생활 속에서 작곡과 연주활동을 해서인지
멘델스존의 작품들은 밝고 화려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음악 애호가들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하여
베토벤의 협주곡은 웅장한 제왕 같은 곡인데 반하여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감미롭고 부드러운 왕비 같다고 비유한다.
또한 아담과 이브로 비유되기도 한다.

멘델스존의 1835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와 음악 감독직은
그의 음악인생과 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계기가 되었다.

멘델스존은 게반트하우스에서
18세기 중요 작품들을 발굴하여 재연하며
또한 당대의 음악가들의 작품들을 초연하였고,
바흐, 베토벤, 슈만, 슈베르트, 리스트,
베를리오즈, 베버의 명작들을 소개
음악 연주의 가치 기준을 설정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1838년 멘델스존 28세 되던 해
상임지휘자로 있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악장 페르디난드 다비드를 위해 작곡했다.

그러나 이곡이 완성된 해는 1844년 9월 16일이다.
멘델스존은 오랜 기간 동안 악기의 특성과 연주의 기교 등
섬세한 부분까지 연구했고,
다비드의 자문을 받으며 이를 작곡에 적용했다.
브람스가 요하임의 자문을 받으며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한 것과 같다.

또한 이 곡을 작곡하는 동안 멘델스존은
1년 전 결혼을 하여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었고,
라이프치히 음악원(Conservatory)을 창설했으며,
버밍엄 음악제 준비와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의 지휘자로
바쁜 생활을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작곡에만 몰두할 수가 없었다.

멘델스존이 설립한 라이프치히 음악학교는
전통적인 고전 음악의 보루가 되었고
지금은 Felix Mendelssohn College of Music and Theatre
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초연은
1845년 3월 13일 게반트하우스에서
바이올린 독주는 다비드가, 지휘는 부지휘자인
가데(Niels Wilhelm Gade)가 맡아 대 성공을 거둔다.



바이올린의 대부분 협주곡은
오케스트라가 주제 제시를 연주하고
독주 바이올린의 연주가 이어지지만,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현악기가 분산화음을 한 소절 연주한 후
독주 바이올린이 우수어린 주제를 연주한다.






제 1악장 Allegro molto appassionato

  


현악기가 분산 화음(arpeggio)을 연주하며
둘째마디부터 열정적인
제1주제를 독주 바이올린이 연주한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바이올린 서주의
화려한 선율과 순수한 아름다움이
묘사되는 1악장 때문에
이 곡이 최고의 명곡으로 자리한다.

독주 바이올린이 우수어린
멜로디를 연주하며 현악기가 화음을 이룬다.
이어 바이올린의 독주가 화려하게 연주,
관현악이 힘차게 제 1주제를 노래한다.

오보에와 바이올린의 화음과
클라리넷과 풀륫의 연주로
아주 여리게 이어진다.

전개부에서는 주로 제 1주제의 연주가 이어지고
멘델스존의 자작 카덴차가 연주된다.

카덴차에 이어 재현부에서
바이올린이 독주로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며
풀륫과 클라리넷의 선율에 제 1주제가 다시 연주된다.

pianissimo에서 전관현악의 fortissimo연주 후
긴 코다가 연주되고
독주 바이올린의 화려한 연주가
점점 빨라지며 열정적인 끝을 맺는다.



제 2악장 Andante allegro non troppo

  


종교적이고 경건한 분위기에
서정적인 맑은 선율이 아름답게 연주된다.
중반부의 긴장은 아름다운 선율로 연주,
새로운 감동을 주는 악장이다.

파곳의 선율을 배경으로
우아하게 주제가 연주된다.
이 부분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멘델스존의 아름다운 곡으로 지칭된다.

관현악은 독주 바이올린의 반주로 이어지다가
장중한 연주가 울려지며
독주 바이올린이 이어 변주로 곡을 이끈다.

마지막 부분은 바이올린이 처음의 주제를 반복하여
조용하던 관현악이 활기 있게 연주한다.



제 3악장 Allegretto Non Troppo
Allegro molto vivace

  


소나타 형식을 취하는 이 악장은
바이올린의 경쾌한 리듬이 열정적으로 연주되는
바이올린 음악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악장이다.

제2악장과 제3악장과의
대조를 완화시키는 악장으로
주부에서 fortissimo로 관악기와 팀파니가 정숙함을 깨뜨리며
독주 바이올린은 처음의 제1주제
동기를 4번 반복한 후 경쾌하게 제1주제를 연주한다.

경과 악구를 지나 제2주제가 B장조에서
관현악의 crescendo로 힘차게 연주된다.

전개부는 독주 바이올린의 제1주제 연주로 시작,
이어서 새롭고 장중한 주제가 연주된다.

자리를 바꾸어 독주 바이올린이
제1주제의 부분 동기를 연주하며
재현부에서 제1, 2주제를 독주 바이올린이 연주,
트릴로 연주하다가 활기있고 힘찬 트레몰로로 연주하며
관현악의 투티로 연주를 끝낸다.

***

음악의 역사는 천재 작곡가와 연주가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유복했던 멘델스존은 부인과 3남 2녀의
자녀가 있는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존경받고 인정받는 행복한 음악가이었다.

멘델스존이 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한 때는
이미 음악계의 정상 위치에 있었다.

그는 35세에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설립했고
원장으로 바쁜 음악 활동을 하던 중
프랑크푸르트 근교 조덴(Soden)이라는 온천지에서
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다.

5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은
D장조이나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E단조를 취한다.

이렇게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고전적인 틀을 존중하고 있으나
그의 작품에서 멘델스존 특유의
독특한 시도를 발견할 수 있으며,
파가니니, 모차르트, 베토벤, 슈포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도
다른 독자적인 작풍을 엿볼 수 있다.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멘델스존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나고
독일 낭만파 음악의 기념비적인 명곡이며
낭만적인 서정과 균형을 갖춘 형식미는
멘델스존이 후대에 남긴 최대의 유산으로 자리한다.

영국의 스텐실 베네트는
베토벤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교하며
아담과 이브라고 평했다.
긍정할 수는 없지만 그 화려함이나
유려함이나 그 섬세함은,
베토벤 협주곡보다 부드럽고 우아하며
여성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이 곡은 음악 영화 유모레스크에 삽입,
1988년도 빌보드 클래식 부문 4위에 오르기도 했다.





멘델스존은 어린시절
음악 미술 문학에 뛰어난 재질이 있었고
훌륭한 예술가와 학자들의 지도로 성장하였다.

파리에서 멘델스존은
음악가로서의 길을 택했고
그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세익스피어, 괴테, 파울 등이었다.

멘델스존은 바흐가 작곡하여 초연한 후
100년 동안 묻혀있던 <마태수난곡>을
1829년3월11일 베를린의 징그 아카데미와 재연했다.

이 작품을 약관 20세의
멘델스존의 지휘로 재연할 때
에드바르트 듀린트라는 성악가는

“이 작품과 함께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라고 찬사를 보냈다.

멘델스존이 이 작품을 재연하여
훌륭한 명작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고
위대한 바흐 부활의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멘델스존은 영국에서 작곡자, 지휘자,
연주자로 크게 인정받았고
이는 멘델스존의 인생에 중요한 부분을 점하게 된다.

멘델스존은 보수적인 음악취향으로
리스트, 리하르트, 바그너,
베를리오즈 같은 당대의 음악가들과는 거리가 있다.
멘델스존의 재능은 성년기 초기 작품인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Eb장조>(1824),
<현악 8중주>(1825),<한여름 밤의 꿈 서곡>(1826)
<현악 4중주A단조>(1827)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은 형식과
화성과 대위법과 음색 등이
베토벤의 작곡 기법을 이해했음을 알 수 있고,
그의 재능은 모차르트를 능가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교향곡 제1번 C단조>는
15세(1824)에 작곡하였고
이 곡은 실험적 작품으로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의 영향을 나타낸다.

멘델스존은 종교개혁 300주년을 기념하여
<종교개혁>(1829-1830)이라는
부제인 <교향곡 5번>을 작곡했고,

1843년에 프러시아의 빌헬름 4세의 명에 따라
국왕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공연되는 연극
<한 여름 밤의 꿈>의 무대 음악을 작곡했다.





38세의 짧은 생애를 살며
멘델스존은 행운아이었고 천재였고
음악가로 성공한 인생이었다.

정돈된 형식과 유연한 감정이 이입된
그의 음악은 낭만적인 고전주의라는 표현을
가능하게 한 작곡가였다.

또한 그는 독일에서 유태인 음악가로
차별대우를 피해 베를린을 떠나
유태인에게 관대한 라이프치히로 옮겨
정착했지만 행복한 가문의 이방인이었다.

그의 38세 요절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했고
이러한 무리한 과로가 그의 죽음을 불러왔다.

그의 생애 모든 것을 불사른
게반트하우스와 오케스트라와 컨소바토리의 일들은
그의 재능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너무 벅찬 과업이었다.

이렇게 그의 일생은 작곡과 연주,
음악으로 향유하는 모든 부문,
음악 교육과 훈련 등
전반적인 음악에 혼신을 다한 일생이었다.

음악가로, 행정가로, 교육가로, 작곡가로, 지휘자로,
노블리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의
정신에 충실한 보석 같은 삶을 살았다.


주요 작품

<핑갈의 동굴> <이탈리아 교향곡> <스코틀랜드 교향곡>
<한 여름밤의 꿈><무언가> <엄격 변주곡> <성파울로>
<찬미의 노래> <엘리야> <안티고네>
<바이올린 협주곡><스케르초>, <간주곡>,
<녹턴>, <결혼행진곡>등이 있다.







Louise Elisabeth Vigee Lebrun
(Self portrait age 26.1781.)
Kimbell art Museum, Fort Worth,Texas.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