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⑷Pyotr Il'yich Tchaikovsky(1840~1893)/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D장조.작품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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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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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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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D장조.작품35.
Pyotr Il'yich Tchaikovsky(1840-1893)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Francois Boucher (Portrait of Madame de Pompadour) Oil canvas. 201×157cm. Alte Pinakothek,Munich.Germany. * ***로코코 미술의 대표적인 초상화 모델인 퐁파두르후작 부인은 프랑스 루이15세의 총애를 받았던 국왕의 연인이며, 조언자로, 정치와 외교 등 권력의 실세로, 미모와 재능과 예술 감각이 뛰어난 여인이었다.*** * ***예술적인 소양을 갖춘 그녀는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볼테르 등의 유명한 예술가와 교분을 가지며 프랑스 문학과 예술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로코코 시대의 거장 프랑수와 붓셰, 카를르 반 루 등 많은 궁정 화가들이 그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퐁파두르풍의 예술과 머리 스타일을 유행시킬 정도로 문화와 예술에 뛰어난 안목이 있었다. 그러나 소모적인 낭비와 오랜 사치생활이 프랑스 국민의 증오를 증폭시켰고 후일 프랑스 혁명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우수(憂愁)어린 서정(敍情)과 열정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언제나 많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한 폭의 명화처럼 다가오며 뜨거운 감동과 감격의 세계로 이끈다.
이러한 차이코프스키의 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백미(白眉)로 자리한다.
이미 4대 피아노 협주곡을 게재했고 5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D장조(음악다방 2008.5.30)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D장조(음악다방 2009.9.27)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E단조(음악다방 2009.10.3)를 소개한 바가 있고 그 네 번째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D장조를 게재한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미 1812년 서곡(2008. 4. 26.)과 피아노 협주곡(2009. 9. 12)으로 음악다방에서 소개된바 있다.
멘델스존 (E단조)과 브루흐(G단조)를 제외한 3곡의 협주곡이 D장조로 작곡된 것은 바이올린이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낼 수 있는 조성이 D장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화려함과 애절한 멜로디가 아름다운 곡이며,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비해 더욱 난해하면서도 친근감이 있어 좋다.
이 협주곡은 바이올린의 화려한 현대적인 연주 기법과 오케스트라의 음악성을 최대한 활용했다.
또한 러시아 민요를 삽입한 작곡자의 애수어린 탐미적인 선율을 포함한 독창적인 작품이다.
베토벤이나 브람스, 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도 한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였는데 모든 곡이 불후의 걸작으로 자리한다.
안토니나 이비노프나 밀류코바 (Antonina Ivanovna Milyukova)와 결혼한 차이코프스키는 불행한 결혼 생활 통해 얻어진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 클라렌스 리조트에서 체류하는 동안 1878년에 작곡되었다.
그의 제자이며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지프 코데그(Yosif Kotek)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같이 연주했었던 것이 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아돌프 브로드스키(Adolph Brodsky)에 의해서 1881년 12월 4일에 초연되었으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과 같이 바이올린 협주곡도 처음 작곡될 당시 많은 곡절이 있었고 초연에서도 크게 호평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피아노 협주곡 제 1번과 함께 명곡 중의 명곡으로 자리한다.
이 바이올린 협주곡 제 1번은 초고가 작곡된 후 당대 러시아 바이올린의 거장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헌정하기위해 초연을 의뢰 했으나 그는 혹평으로 이를 거절했다.
차이코프스키는 실망하여 이 곡을 3년 동안 발표하지 않았다가 1881년 12월 빈 필과 한스 리히터의 반주와 브로드스키에 의해 초연되었다.
평론가 한슬리크는 “우리는 천하고 품위 없는 얼굴만 보았고 거친 고함소리만 들었으며, 싸구려 보드카 냄새만 맡았다. “라고 혹평을 했다.
프리트리히 피셔는 짜임새 없는 그림을 비평할 때 “보고 있노라면 냄새가 나는 그림이 있다. ”고 말하며 “차이코프스키의 이 곡은 음악 작품에도 들어서 냄새가 나는 작품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운 생각을 우리에게 처음으로 알려 주었다. “ 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러한 실망과 좌절에도 브로드스키는 유럽을 순회하며 이곡을 연주하여 곡의 가치를 인정받는데 성공한다. 그 후 레오폴드 아우어 교수도 이를 인정하며 스스로 연주하여 대 성공을 거둔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진가를 알리는데 공헌한 브로드스키에게 헌정되었다.

제 1악장, Allegro moderato - Candenza
Jascha Heifetz. Violin Fritz Reiner. conductor Chicago Symphony Orchestra
유명한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의 악장으로 오케스트라의 장중하고 경쾌함이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와 절묘하게 어울린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서주에서 시작되는 주제가 암시된 후 바이올린의 화려한 테크닉의 향연이 펼쳐지는 카덴차와 반복되어 연주하다가 오케스트라의 폭발하듯 화려한 야성적인 경과부로 이어지고 제2주제도 독주 바이올린의 연주로 제시된다.
이어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아름다움의 극치에 이른다. 다시 화려한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연주되며 다시 재현부로, 독주 바이올린은 종결부에 이르러 화려한 리듬과 힘찬 연주로 끝을 맺는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눈부신 감동으로 다가온다.
일반적인 바이올린의 협주곡은 오케스트라가 제1,2주제를 연주한 다음 바이올린이 이어서 주제를 연주하게 되는데 이 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짧은 서주에 이어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한다.
제 2 악장 Canzonetta Andanta G단조 3/4박자.
Jascha Heifetz. Violin Fritz Reiner. conductor Chicago Symphony Orchestra
Canzonetta(작은 노래)라고 되어있는 A-B-A의 악곡의 기초 형식인 3부분(ternary form) 으로 구성되며 관악기가 조용하게 서주를 연주하며 독주 바이올린이 약음기를 사용, 탄식하듯 애절하고 아름다운 제1주제를 연주하며 감동을 자아낸다. E장조의 제2주제가 연주되며 높은 음역에서 조용히 내려가 클라리넷과 이어진다.
제1주제가 반복 연주되며 바이올린과 관악기들의 연주가 교환된다. 슬라브적인 서정의 선율이 오케스트라의 조용한 회상적이고 추상적인 연주로 끝나는 부분이 없이 제3악장으로 연결된다.
제 3 악장 Allegro vivacissimo D장조 2/4박자. 론도 소나타 형식
Jascha Heifetz. Violin Fritz Reiner. conductor Chicago Symphony Orchestra
소나타 형식의 자유스런 악장이다.
전 악장에서 이어 연주되는 곡은 열광적인 리듬의 연주로 분위기가 바뀌어 진다.
오케스트라의 ff연주로 제1주제를 연상하는 단편을 연주한다. 이어서 독주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잔잔하게 연주한다.
주제는 러시아 분위기를 묘사하며 민속 무곡 트레팍(Trepak)의 형식으로 강한 리듬과 경쾌한 속도로 연주되며 A장조로 바뀌어 진 주제가 연주된다.
러시아 농민들의 춤을 추는 듯 활기어린 연주다. 약한 템포로 이어지고 독주 바이올린은 다시 제1주제의 단편을 연주, 새롭게 D장조의 제1주제를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다.
제2주제는 G장조로 연주되며 다시 D장조로 되돌아 제1주제를 연주한다.
다시 제1주제는 불꽃같이 현란하고 경쾌하게 음역이 넓어지며 절정에 이르고 점점 열기가 고조되며 환희에 찬 바이올린의 연주와 오케스트라의 투티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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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한슬리크가 말한 것처럼 강렬한 러시아적인 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야성적인 1악장의 주제와 슬라브적 애수 어린 선율의 2악장, 3악장의 힘찬 리듬과 열정적인 끝맺음 등은 유럽 작곡가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러시아 적인 독특한 민족 색채가 넘치는 것들이다.
연주가 불가능할 것이라 예견한 레오폴드 아우어 교수의 말대로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는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선율적인 영감과 관현악법이 뛰어나 <백조의 호수 Swan Lake> <잠자는 숲속의 미녀 Sleeping Beauty> <호두까기 인형 The Nutcracker> 등 고전 발레 음악의 최고의 작곡가로 평가된다.
내성적인 차이코프스키는 사랑했던 어머니가 콜레라로 14세 때 타계하고 그 후 피아노를 위한 짧은 왈츠 곡을 작곡하여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표출했다.
1865년 말 루빈스타인 형제로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의 화성법 교수 자리를 제안 받았다.
그의 <교향곡 1번 G단조. 겨울날의 환상 Op.13.>(1866)을 작곡, 계속되는 과로로 인한 정신적 위기가 있었지만 차이코프스키는 1866년 1월 모스크바에 정착하게 된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은 1860년대 말과 1870년대 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민족주의 작곡가들의 음악과 동질성을 보이고 있다.
발라키레프의 제안으로 서곡〈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1869)을 작곡했다.
차이코프스키 그의 본질적인 매력은 민족주의적 희가극〈대장장이 바쿨라 Vakula the Smith〉 (1874, 초연 1876)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는 무소르크스키가 작곡한 그 어떤 오페라보다도 발라키레프의 민속 음악적 어법과 더욱 밀접한 관계가 있다.
<피아노 소타나 G장조 작품 37>(1878), <관현악 모음곡 1번 D단조 작품 43>(1878~79), 그의 후원자인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대관식을 위한 음악이며
그리고 상업적인 성공을 목적으로 작곡된 최초의 오페라 〈오를레앙의 처녀 The Maid of Orleans〉 (1878~79) 같은 한층 무미건조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시기에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35>(1878)와 <현을 위한 세레나데 C장조 작품 48>(1880), <이탈리아 기상곡 작품 45>(1880), <1812년 서곡 작품 49>(1880) 등의 걸작이 작곡되었다.
모스크바 초연으로 체면을 유지한〈예브게니오네긴〉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황제의 찬사 큰 인기를 누렸다.
1885년에 작곡된 <만프레드 교향곡 Manfred Symphony〉작품 58은 크게 호평을 받았고 말년의 차이코프스키의 삶과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푸슈킨의 작품을 각색한 2번째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1890 공연)과 그가 좋아한 발레곡 <잠자는 숲속의 미녀〉(1890) 등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채에도 불구하고 다시 신경쇠약 증세가 심해졌다. 교향곡 5번 E단조 작품 64(1888)와 그의 주요작품들은 점점 감정적으로 격해져 히스테리와 절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교향곡 제 6번을 작곡하고 부제를 붙일 때의 일화와 같이 스스로의 죽음을 암시한 것 처럼 암울하고 절망적인 비창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을 지휘하고 9일 만에 53세의 길지않은 음악 인생을 접고 타계한다.

 Louise Elisabeth Vigee Lebrun(Self Portrait.1790.) Oil on canvas.100.08×79.25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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