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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Ludwig van Beethoven(1770~1827)/Symphony No.5 in C minor Op. 67//루트비히 판 베토벤 /교향곡 제 5번 C단조 《운명》 작품 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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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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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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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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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판 베토벤 / 교향곡 제 5번 C단조 《운명》 작품 67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Symphony No.5 in C minor Op. 67
 Jean Antoine Watteau (The Fortune Tellers)1710 Oil on panel Museum of Fine Arts, San Francisco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Eb major 황제(2008. 12. 30.)와 바이올린 협주곡 D major(2009. 9. 27.)로 음악다방에 게재된 바 있다.
음악다방에서 Beethoven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협주곡을 소개하며 그의 인생과 음악의 지극히 일부분인 단편적인 부분들을 기술(記述)한 바 있다.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나 그래도 내용 중 중복이 된 부분이 있으면 양해 있으시기를 바란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예술인들의 방종(放縱)은 도덕과 윤리적인 면에서 면죄부를 지니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되어 있었다.
특히 고전 음악을 작곡한 음악인들은 아름다운 선율을 만드는 훌륭한 음악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사생활은 경박하고 부도덕하며 비윤리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Beethoven은 1792년의 기념 첩에서 발췌한 글을 보면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고 자유를 무엇보다 사랑하고 비록 왕좌의 편을 들어서라도 절대 진리를 배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라고 그의 사상을 피력하고 있다.
이렇게 베토벤은 그의 말과 같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었다. 그리고 권력과 귀족들에게도 아부하지 않았던, 궁핍함에도 재물에 비굴하지 않았던, 귀족들에게 예절 바르지 못했던(?) 고집불통의 베토벤을 우리는 사랑한다.
그는 운명과 싸우며 불굴의 영혼은 피울음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 투병(鬪病)하며, 고뇌(苦惱)하며, 가장 완전하고 위대한, 그리고 강한 호소력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던 베토벤. 그를 우리는 사랑 한다.
청각 장애로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 절규와 같은 유서를 쓰며 자살을 결심했던 베토벤. “옳게 또 떳떳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오직 그러한 사실만으로써 능히 불행을 견디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입증하고 싶다.“ 이는 1792년의 기념 첩에서 발췌한 글로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불굴의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귀가 들리지 않았기에 내면적으로 더욱 성숙할 수 있었고, 그는 속세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에 모든 소리를 마음으로 들으며, 소리를 잃은 고통 속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에 삶의 철학과 예술혼을 담아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이렇게 운명과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실의와 좌절과 절망의 생활에서 승리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 베토벤의 불굴의 영혼은 더욱 훌륭한 음악을 탄생시켰다.
베토벤은"나의 예술은 가난과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 하여야 할 것이다. 타인을 위해서 일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나의 최대의 행복이자 즐거움이었다. “라고 고통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도 타인을 의식하며 그가 살아 있는 당위성을 피력한다.
그는 불행을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감을 통하여 고통과 고뇌를 초인적(超人的)인 노력으로 극복한 베토벤, 그에게 엄습한 불행은 역설이 아닌 진정 귀주영광(歸主榮光) 축복의 귀한 은사(恩賜)였다.
우리는 시대의 불협화음과 속도의 현기증 속에서 오늘을 살며 속세(俗世)에서 만들어지는 소리가 아닌 인간이 듣지 못하는 천상의 소리를 베토벤을 통하여 들을 수 있었음에 항상 감사한다.

베토벤, 그의 음악은 장르를 초월하여 어느 장르에서도 독보적인 불후의 명곡들로 자리한다.
베토벤은 고전음악의 최대 완성자이며, 또한 고전음악의 형식미에서 탈피하여 낭만주의 음악에 문을 열어 가교(架橋)를 설정한 음악가였다.
베토벤은 영웅적(英雄的)인 투지로 자신에게 엄습한 고통과 난관(難關)을 초인적인 의지로 극복한 승리자였으며, 보다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혼을 그의 음악에 담은 위대한 작곡가이고 철학자이며 사상가였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처럼 신동은 아니었지만 음악적인 천재성은 어릴 때부터 표출되기 시작했다. 베토벤, 그에게는 많은 역경과 고난이 엄습했다.
생활은 궁핍했고, 사랑은 실패했으며 치명적인 귓병을 앓고 드디어 청각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는 고통 속에서 위대한 예술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815년 이후 그의 창작은 웅대한 구상과 자유로운 형식과 진지한 표현으로 악성(樂聖)이 아니고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였다.
베토벤의 작품은 낭만적인 영향에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고 냉철한 이성과 안정된 형식미를 잃지 않았으며 생명의 체험을 합리적인 형식을 통해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3기로 나눈다. 제 1기(1786-1803) 초기의 작품으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시기로 교향곡 제1번과 제2번의 작곡된 시기다.
제2기(1804-1816)는 베토벤의 개성을 발휘한 독창적인 시기로 교향곡 제3,4,5,6,7,8번까지 작곡한 시기다.
제3기(1817-1827)는 청각을 상실하여 감각을 초월한 초인간적인 영감으로 최고의 작품을 작곡한 시기로 교향곡 제 9번을 작곡했다.

Beethoven은 감동으로 넘치는 명곡 중의 명곡인 9곡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고집스럽게 꼭 다문 입술에 산발한 사자머리로 위대한 음악의 길을 걸었던 귀머거리 천재. 그의 일생은 고통과 투병으로 점철(點綴)된 비운의 천재 음악가이었다.
베토벤의 생애를 집필한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그의 저술에서 인간적인 베토벤을 그리고 있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 애정 결핍의 외로운 베토벤. 자신의 청각 장애를 감추기 위해 은둔(隱遁)했던 베토벤. 명성보다 늘 궁핍함에 시달렸던 베토벤을 집필하며 베토벤이 지닌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열정을 되살리고 있다.
베토벤은 속세를 떠난 예술가가 아닌 정치적인 이념을 지닌 음악가였다. 또한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음악가였다.
거만해 보이는 그의 바른 행동은 궁핍하면서도 순간적인 이익에 타협하지 않고 이를 단호히 거부하며 스스로의 도덕성을 철저하게 구현하고자 했던 희망의 표현이었다.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심신의 고통으로 자살의 충동을 느끼며 음악가의 길을 걸었던 베토벤이 강한 집념의 인간이었음을 언급한다.
젊은 나이에 죽은 동생을 사랑했고 불성실한 조카의 대부가 되어 그로 하여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았던 베토벤, 그에게 유산을 상속했지만 베토벤의 임종 때 나타나지도 않았다.
로맹 롤랑은 천재 음악가였지만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영웅 베토벤을 그의 저술을 통하여 그 깊이를 제시한다.

이 교향곡 제5번은 1808년 12월 22일 안 데아 비인 극장에서 초연했고 후원자인 로브코비쯔 공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헌정되었다.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라고 한 말은 제자 신들러(Anton Schindler)의 제1악장 서두의 주제에 대한 질문에 베토벤의 답변이다. 이 일화로 교향곡 5번은 “운명”이라는 부제를 얻었다.
이 부제는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 3번 에로이카, 6번 전원, 9번 합창과 같이 베토벤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다.
“운명 교향곡”이라는 부제는 일본에서 쓰이고 있었으나 일본의 음반과 책자들을 우리나라에서 검증 없이 그대로 번역되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으나, 미국과 서구에서 이 교향곡 5번은 “C 단조 교향곡”이라고 불리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은 동서고금의 교향곡 역사를 통틀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고 미사여구(美辭麗句)나 수식으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음반의 경이로운 판매고와 연주회나 방송의 횟수도 다른 교향곡과는 비교될 수 없다.
슈만은 “아무리 들어도, 마치 자연의 현상처럼 외경(畏敬)과 경탄이 새로워진다. 이교향곡은 음악의 세계가 계속되는 한 몇 세기(世紀)고 간에 남을 것이다“ 라고 격찬했다.
교향곡 제 5번 C단조는 처음 시작부터 곡을 완성하기 까지 약 6년간 열정을 다하여 베토벤 스스로의 인생관을 투영한 걸작중의 걸작이다.
그가 38세 때에(1808년) 교향곡 제 5번이 완성되었으며 이는 젊은 베토벤의 도전과 갈등, 슬픔과 좌절을 통하여 성숙되어가는 베토벤의 의지와 고뇌(苦惱)속에 성취의 기쁨을 표출했다.



전곡 연속 듣기
Franz von Liszt Piano 편곡
제 1 악장 Allegro con brio
“운명”의 동기는 4개의 음으로 되었으며 변주로 이어져 정점에 이른다. 호방(豪放)하며 장쾌(壯快)한 주제는 변형되어 박진감 넘치는 클라이맥스로 연주된다. 호른의 독주와 제1바이올린의 감미로운 연주에 이어 제2주제를 연주하는 클라리넷과 풀륫, 현악기의 선율에 더블베이스, 첼로, 비올라가 긴장을 더하며 호른과 목관악기가 가세한다.
제1주제가 남성적이며 제2주제는 여성적이고, 유연하게 조화를 이루며 발전부에서는 화려한 음색의 호른의 연주로 끊임없이 주제는 종횡무진(縱橫無盡)한 연주를 계속하며 클라이맥스에서 재현부로 이어진다. 매력적인 오보에의 Adagio 연주가 이어지다가 박진감 넘치는 연주가 이어지다가 코다의 화려한 연주로 장엄하게 끝맺는다.
제 2 악장 Andante con moto
변주곡 형식의 자유로운 곡이다. 비올라와 첼로의 부드러운 연주가 시작되나 박진감과 긴장감이 있다. 위풍당당한 제2주제가 상행의 가락을 처절(凄切)하게 연주한다. 이어 1,2,3의 변주가 아름답다.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베토벤이 운명과 투쟁하는 장면을 묘사 했다고 했고 베를리오즈는 코끼리가 신이 나서 춤을 추는 것 같다고도 했다고 전해지는 변주가 계속된다.
제 3 악장 Allegro
scherzo에 이어 운명 주제가 변형되어서 다시 연주된다. 2개의 주제가 엇갈려 전개되다가 푸가의 트리오가 등장하여 긴장을 증폭시키며 다시 연주되는 스케르초는 폭풍 전야를 예고한다.
상행하는 분산화음형의 가락으로 나타나는 scherzo의 주제는 이어 운명의 주제가 다시 3박자로 나타난다. 트리오 부분은 푸가기법을 도입, 조용하며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시 스케르초로 연주되다가 고요함으로 끝이 난다.
제 4 악장 Allegro Presto
파울 벡커(Paul Bekker)가 “승리(Victory)”라고 표현한 악장으로 유명하다. 3악장의 마지막 고요함은 폭풍전야와 같고 crescendo되다가 중단 없이 폭발하여 제1주제를 투티로 이전 악장들의 긴장이 모아져 드디어 힘차게 분출하며 승리의 함성처럼 연주된다.
로맹 롤랑은 운명과의 처절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함성을 내어 지르는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이렇게 이 4악장을 승리의 악장이라 불린다.
제 1,2,3,악장은 이 4악장을 위하여 힘을 축척했고, 제 2주제의 처절한 아름다움을 연주한다.
변주의 연결이 절묘하게 이어져 웅장한 코다로 마무리 짓는 감동적인 베토벤 승리의 악장이다.
제 1, 2주제로 이루어진 발전부는 제 3악장의 폭풍전야를 만들었던 부분들을 다시 연주, 재현부로 돌입하여 이 곡의 특징인 대단한 규모의 코다로 끝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선천적인 아들의 재능과 천재적 소질을 과시하려고 베토벤은 4세 때부터 과중한 연습으로 7세 때에는 개인의 피아노 연주회를 할 수 있었다.
1779년에 스승인 크리스천 고트로프 네페 (Christian Cottolob Neffe)로부터 음악과 정서적인 영향을 받았고 1782년 궁정 예배당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1787 빈에서 흠모하던 Mozart, Wolfgang Amadeus 를 만났고 본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 살림을 맡았다.
1792년 바르트슈타인 백작과 친구들의 원조로 빈에 유학하여 빈에서 귀족들의 보호를 받았고, 셴크,(Johann Schenk, 1753-1836), 알브레 히트베르거(Johann Georg Albrechtsberger, 1736-1809),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 등에게 사사하여 음악가로서의 지식과 능력을 키웠다.
그 후 베토벤은 페르디난드 리에스 (Ferdinand Ries)를 가르쳐 작곡가가 되었고 그는 베토벤을 회상하며 “베토벤을 기억한다.”라는 책을 썼다. 칼 체르니(Carl Czerny)도 베토벤에게 수학했고, 칼 체르니의 제자 중 프란츠 리스트(Franz von Liszt)도 그 중 하나였으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를 빈에서 초연했다.
1795년 피아노 연주자로 데뷔 이 시기 최고의 작품인 피아노 3중주곡을 1800년에는 제 1교향곡과 6곡의 현악 4중주곡을 발표하였다.
베토벤 처절한 고통과 절망의 시작은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 유서로 시작된다. 그의 상실되어가는 청각의 고통은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외부 접촉을 삼가며 작곡에만 전념했다.
칩거(蟄居)하며 작곡에 몰두한 베토벤은 제2교향곡, 오라토리오 감란산상의 그리스도, 제 3교향곡 영웅을 작곡하며 Mozart나 Haydn의 영향에서 탈피하여 개성적인 스타일의 영역을 확립하였다.
1805년 베토벤은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의 초연에 실패, 다시 수정 보완하여 재연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나 그 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1810년 괴테의 극시(劇詩) 에그몬트 서곡을 작곡했고 그 후 유명한 영원한 여인에 부치는 편지를 썼다. 이렇게 여성을 그리는 마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작곡가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의 회상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베를리오즈의 스승인 프랑스의 저명한 음악교수 르쥐외르(Lesueur)는 학생들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베토벤의 “C단조 교향곡이 연주되는 음악회에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의 부탁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연주회가 끝난 후 베를리오즈는 교수에게 연주회의 의견을 물었다. "우선 바람을 좀 쏘여야겠어, 굉장하군. 모자를 쓰려고 했을 때 내 머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어. 지금은 아무 말도 할 게 없네. 다음에 얘기하세." 라고 연주회의 감동을 말한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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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더불어 빈고전파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그들이 확립한 고전파의 형식이나 양식은 베토벤에 의하여 더 개성적으로 다듬어 졌다.
베토벤의 독자적인 확립된 양식으로 그들의 정적(靜的)인 고전성에 비해 베토벤의 작품은 동적(動的)인 다이내믹한 힘을 특징으로 하며 작품마다 독자적인 개성으로 베토벤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베토벤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깊은 감동과 감명을 주며 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음악가로서 청각을 상실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으나 불가사의한 초인적(超人的)인 능력으로 이를 극복하여 음악사에 전무후무한 명곡들을 작곡한 베토벤의 정신력과 그 집념은 귀감이 되어 역사를 이어간다.

 Jean Antoine Watteau(The Anxious Lover) 1719. Oil on canvas Palacio Real,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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