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닌 레오폴드 드보르작/교향곡《신세계로부터》
제9번E단조Op.95
Antonín Leopold Dvorak(1841-1904)
Symphony No.9 in E minor.Op.95《From the New World》

Hans Zatzka (1859-1945)The Goddess Of Spring.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세계 5대 교향곡 중 4번째로
체코(보헤미아)의 Mozart로 불리우는
Antonin Leopold Dvorak(1841-1904)의
《교향곡 제 9번 E단조 신세계로부터》를 게재한다.
*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신동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으로
훌륭한 음악을 작곡했고 또한 연주로 그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드보르작은 신동도 아니었고
음악가의 집안도 아니었으며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음악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대기 만성(大器晩成). 그는 음악의 장르를 초월하여
206곡의 불후의 명곡을 작곡했다.
*
프라하를 흐르는 체코의 어머니
몰다우 강 기슭에 비셰흐라트 성(Vysehrad Castle)은
신동이었고 4세에 바이올린을 연주한
보헤미아 음악의 창설자 Bedrich Smetana가
노년에 청각 장애가 있었음에도
작곡한 《나의 조국》 중 《몰다우》 강 기슭에 있는 성의 이름이다.
이 체코의 상징인 몰다우 강 기슭은
세계적인 음악가인 스메타나와
그를 이은 드보르작이 자라난 어머니 같은 강이다.
Beethoven 처럼 내면의 갈등과 투쟁,장엄하고 어두운 색채의
작품을 쓴 Smetana와 다르게
Dvorak은 주로 밝고 명랑한 작품을 많이 작곡하여
체코의 Mozart로 불린다.
*
드보르작(Antonin Dvorak)은
중부 유럽 동쪽에 위치한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몰다우 강 기슭 넬라호제베스에서
정육점과 여관업을 영위하는 가정에서
1841년 9월 8일에 태어났다.
드보르작의 가정은 8형제의 대가족으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드보르작의 가정은 궁핍했지만 자연과 울창한 원시림 속에서
그들만의 풍습과 체코의 민속 음악으로 성장했고
집시들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과 항상 가까이 할 수 있었다.
신동 음악가들과 달리 드보르작은
아주 늦은 나이에 비로소 음악가로서의 생이 시작되었다.
15세 때 2년간 프라하 오르간학교에서 연주 수업을 받고,
비올라 연주자로 레스토랑·호텔 등에서
연주 생활을 하다가 1862년 프라하 가설극장(後국민극장)의
비올라 연주자가 되었다.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가
1866년 지휘자로 취임하여 그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연주 할 때
Orchstra 비올라 연주자로 비올라를 연주하던
드보르작은 크게 고무되어
작곡에로의 집념이 Smetana를 이어 세계적인
체코슬로바키아의 국민적인 작곡가로 성장하게 했으며,
또한 Smetana의 영향으로 체코의 민족 문화를
중흥시켜야 할 음악가로서의 소명의식이 충만해 졌고
1872년《백산의 후계자들에 의한 합창 찬가》로 인정을 받으며
11세기에 설립 된 성 아달베르트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드보르작은 할레크의 애국적인 시에
혼성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찬가인
《빌라 호라의 후계자들.Dedicove Bile Hory》을 발표하면서
신예 작곡가로 성공을 거두며 데뷔하게 되며,
스메타나가 지휘한 《교향곡 제 3번. Eb장조. Op.10》의
초연도 성공을 거둔다.
이 시기에 드보르작은 다른 음악가들 보다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피아노와 작곡할 종이도 조달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었으나
1873년 11월 몇 곡의 연주가 성공을 거두어
프라하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어 약간의 궁핍함을 면할 수 있었고
안나 체르마코바(Anna Cermakova)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드보르작은
1남 2녀의 자녀를 차례로 잃고 비탄 속에서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를 작곡했다.
그 후 1877년 오스트리아 정부의 장려금 심사 위원인
Brahms의 인정을 받아 출판사에서
그의 작품이 출판되며 유명해 졌고,
그의 실내악과 관현악곡을 런던이나 베를린에서
연주할 정도로 명성은 퍼져나갔다.
드보르작은 지휘를 시작했고
영국에서 스스로 작곡한 곡을 지휘하여 크게 환영을 받았다.
Handel, Haydn, Mendelssohn 같은
위대한 음악가에게만 찬사와 갈채를 보냈던
영국도 드보르작의 음악에 찬사를 보낼 정도로
드보르작은 음악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다.
오라토리오 《스타바트 마테르 Op.58》을 연주한 후
드보르작은 그 때의 감격을
“청중들은 나를 우레와 같은 박수로 맞이해 주었다.
더 큰 열광은 곡이 진행됨에 따라서 더욱 커져
마지막 박수는 너무 크게 울려
나는 청중에게 몇 번이고 답례를 되풀이해야 했다.
동시에 관현악단과 합창단원이
내게 가장 열렬한 갈채를 보내 주었다.“ 라고 고국에 전했다.
이렇게 영국에서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드보르작은
9번이나 영국에 초청을 받아 영국을 방문하였고
《교향곡 제8번》《레퀴엠》등을 위촉받아 작곡했다.
전통을 중시하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명예 음악 박사 학위는
영국인들의 드보르작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크게 인정한 결과이다.
이렇게 드보르작의 연주 여행은
그의 창작에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고
세계적인 작곡가로서의 전성기를 맞은 드보르작은
드디어 막대한 수입으로 궁핍함을 면하게 된다.
궁핍하고 불행했던 드보르작의 생은
일대 전기를 맞게 되고 2남 4녀의 자녀와
순진하고 착한 여인이라고 Tchaikovsky에게 칭찬 받은
아내의 내조로 행복한 생활 속에 작곡에 전념한다.
드보르작은 성실한 가장으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었다.
그는 국민주의 음악 운동의 선구자로
Smetana와 함께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졌고,
자연과 조국을 향한 뜨거운 열정은 그의 작품으로 표출되었다.
신을 향한 경건한 신앙심은
드보르작 작품의 근본이 되었다.
서정적이며 민족적인 그의 음악은
향토적인 선율과 화성과 리듬이 소박하고 신선하며,
균형잡힌 고전적 구성과 풍부함이 내재되어 있다.
Dvorak은 Brahms, Tchaikovsky와 친숙한 사이였고
어렵게 시작한 그의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으나
예술가로서의 훌륭한 인간성과 도덕성을 지니고 있었다.
*
1892년 신세계 미국으로부터 초빙을 받은
드보르작이 뉴욕에 도착했을 때
300명의 합창단과 80명의 오케스트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때 드보르작은 최후의 교향곡이며 최대의 명작인
《교향곡 제9번.From the New World.Op.95》와
《현악4중주 제12번 F장조 America》
《첼로협주곡 b단조 op.104》등을 작곡했다.
1893년 12월 Dvorak의
《Symphony No.9.From the New World》이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했고,
미국을 신세계로 지칭하는 이 교향곡은
청중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했으며
또한 아름답고 화려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Dvorak은 이 교향곡 9번으로
미국의 흑인 영가(Negro Spiritual)와
원주민(인디언)의 음악을 아름답게
그리고 화려하게 만들었고,
작품을 통해 흐르는 강한 이미지는
그의 진지한 인간성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미국적인 것과 보헤미아적인 것이 혼재되어있고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의 향수어린 테마를 전개하며
지난 세계의 음악을 새로운 세계로 연계시키는
Dvorak의 불후의 명작으로 강한 감동어린 작품이다.

Hans Zatzka (1859-1945)Skittles. Oil on panel.31.3 x 47 cm. Private collection

제 1악장 Adagio. Allegro molto
George Szell - Cleveland Orchestra
느린 4박자의 당김음이 포함된 음률과
서주부에서 빠른 주부로 이어지는 과정이
증기 기관차의 발차 모습을 연상한다.
탄식하듯 저음의 멜로디가 첼로로 연주로
서주부가 시작되며 풀륫의 연주에 이어
투티가 열정적으로 연주된다.
현악기와 호른이 낮은 음으로 제1주제를 연주,
팀파니의 연주가 이어지고 짧은 클라이맥스 후 주부로 이어진다.
이렇게 서주부의 유연한 멜로디는
새로운 세계의 여명을 묘사하며,
열정적인 투티는 신세계의 개척정신을 묘사한다.
주부는 pp로 바이올린의 연주와
호른의 연주로 제1주제가 제시된다.
드보르작이 향수에 어린 소년 시절부터
민속가곡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 악장을 흑인 영가(Negro Spiritual)와
보헤미아 민속음악과 연계됨을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의 세계와 새로운 세계로 이어지는
감명을 깊은 악장이다.
오보에와 풀륫의 연주로 부주제가 이어지며
흑인 영가의 특색을 보여준다.
발전부에서 자유로운 변형의 제2주제가 연주되며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섞이어
변화하며 힘차고 아름답게 연주되다가
강한 코다로 이어진다.
제 2 악장 Largo
George Szell - Cleveland Orchestra
꿈 속의 고향 선율로 방랑자의 향수와 고독과
애수가 서린 잘 알려진 아름다운 명곡이다.
잉글리시 혼의 애수어린 연주로 시작되며
이 선율은 5음 음계로 향수를 머금은 듯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흑인영가에서 소재를 얻었다.
드보르작의 제자 피셔가
많이 알려진 “꿈 속의 고향”을
이 곡으로 합창곡을 만들었다.
이 주제를 이어 풀륫과 오보에의 애수어린
선율의 부주제가 연주된다.
다시 잉글리시 혼의
아름다운 멜로디의 연주가 정감어린 선율로 이어진다.
제 3악장 Scherzo. Molto vivace. Poco sostenuto
George Szell - Cleveland Orchestra
빠른 3박자의 Scherzo 악장으로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과 흥겨운 연회를 연상하는,
인디언 민요가 삽입되어 있어 우리 민요와 같이
명랑하고 경쾌하며 아름다운 정취를 묘사하는 악장으로
유머러스하며, 해학적인 악장이다.
활달한 민속 무곡 풍으로
제1트리오는 소박한 무도곡과 흑인 영가를 연상하는
짧은 Scherzo의 주제로 시작되며,
제2트리오는 독일 풍의 구성으로 그리움을 묘사한다.
반복 연주되며 Scherzo의 주제를 고조시키며
코다로 이어진다.
제 4 악장 Allegro con fuoco
George Szell - Cleveland Orchestra
빠른 4박자의 소나타 형식이며
모든 악기의 연주가 크레센도로 고조되며
현악기의 힘찬 연주로 서주부가 시작되며
트럼펫과 호른이 행진곡 풍의 경쾌한 제1주제를 연주한다.
이어 클라리넷의 서정적인 제2테마가 연주되며
다시 격렬한 무곡풍의 선율을 연주,
다시 슬라브 풍의 거친 느낌의 리듬이 연주된다.
제시부와 작은 코다를 지나 발전부로 이어진다.
제1,2,3장 악장의 주제를 상기시키는 특성이 있다.
재현부는 제시부를 변화시키며 단축시킨 형태로 연주되며
여러 악장의 소재를 사용하였다.
웅장하고 호방한 클라이맥스를 연주하며
이 종결부는 구성의 오묘함과 자유분방한 악상,
그리고 강건한 힘으로 이 《교향곡 신세계로》의 뛰어난 우수성을 표출한다.

Hans Zatzka (1859-1945)Reclining Beauty.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드보르작은 오르간 학교에서 수학한 2년을 제외하고
가정의 어려움 속에서 독학으로 음악가로서의 자질과 실력을 쌓은
그의 작품은 체코 민족의 애환을 묘사한다.
또한 표제음악의 전성기에
절대 음악을 많이 작곡한 드보르작은
Beethoven, Schubert와 Wagner, Liszt의 연구에 열중하였고
Brahms의 영향을 받은 그의 작곡 활동은
귀국한 후 자연과 더불어 교향시와 오페라만을 작곡하였다.
이때 애국적인 내용인 국민주의적 색채가 짙은
서곡 《후스교도.Husitska Op.67》과 《교향곡 제7번 d단조》를 작곡한다.
*
젊은 시절 드보르작은 체코의 베르디가 되는 꿈이 있었다.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보르작은
1900년 야심의 오페라 《루살카. Rusalka.Op.114》를 작곡하여
오페라 작곡가로도 성공을 거둔다.
인간과 물의 요정의 비련을 묘사한 오페라 《루살카》는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와 체코 오페라의 금자탑을 이루었다.
60세에 교향시 《영웅의 노래. Pisen Bohatyrska.Op.111》와
환상적인 오페라 《아르미다.Armida. Op.115》를 작곡했고
60회 생일을 맞아 드보르작은
오스트리아의 종신 상원의원으로 귀족이 되었고
프라하 음악원의 예술학원장에 선임되었다.
건강한 삶을 살았던 드보르작에게도
생의 노년에 찾아온 영광도 잠시 신장병과 방광염으로 투병하다가
1904년 5월 1일 뇌일혈로 63세의 일기로 타계한다.
드보르작의 일생은
음악가로도 성공했고, 노년에 존경받으며 영광을 누렸던
성공한 인생이었다.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집례되었고
온 체코 국민의 슬픔과 애통 속에
자신이 작곡한 진혼곡이 연주되며 장엄하게 엄수되었다.
민족주의 음악의 기틀을 다진 보헤미아 최대의 작곡가
드보르작은 음악적인 재능을 타고난 강한 개성의 작곡가이다.
또한 아름답고 현명한 부인의 내조로
궁핍했지만 안락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드보르작이 훌륭한 작곡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일 것이다.
주요 작품으로
오페라《루살카》는 스메타나의《팔려간 신부》와 더불어 체코를 대표하며
교향곡과 실내악으로 확실한 성공을 거둔 작곡가로
《9곡의 교향곡》을 작곡했고 《5곡의 교향시》와
《현악 4중주곡》등 32곡의 실내악곡을 작곡하여
19세기 후반 Brahms에서 이어지는 실내악의 대가로 지칭된다.
관현악 작품도《슬라브 춤곡집. Slovansketance 제1집 Op.46》과
《제2집 Op.72》등 20여편을 작곡했다.
협주곡으로《피아노 협주곡 G단조 op.33》《바이올린협주곡 a단조 op.53》,
《첼로협주곡 B단조 op.104》 등 7곡의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피아노 곡으로 연탄곡 《스코틀랜드춤곡집 op.41》과
《보헤미아의 숲에서 op.68》과 피아노 독주곡 8개의
《유모레스크.8 Humoresky.op.101》등 10여편의 곡을 작곡했다.
성악곡으로 교회음악《스타바트마테르.op.58》,
《미사곡 op.86》《레퀴엠 op.89》《테 데움 op.103》등이 있고
그의 출세작《빌라 호라의 후계자들》과
합창곡과 무반주 합창곡 등이 많이 있으며
2중창곡인《모라바 이중창 op.26》등 많은 이중창곡을 작곡했고,
《집시의 노래.Gypsy Melodies」op.55》《황혼의 노래.Evening Songs」op.3》등
수십 편의 예술성 높은 가곡을 작곡했다.


Hans Zatzka (1859-1945)The Tambourine Player.
Oil on canvas. 58.4 x 37.2 cm. Private collec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