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⑩Gustav Mahler (1860~1911)/Symphony No.9 in D major//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제 9번 D장조(이별)   09-05-30
글쓴이 정병구   4,752 hit
 



구스타프 말러/교향곡 제 9번 D장조(이별)

Gustav Mahler(1860∼1911)/Symphony No.9 in D major


Peter Paul Rubens
(The Crowning of St Catherine)





후기 낭만주의의 정점에서
초연 때마다 혹평으로 시달리며 고뇌 속에 살았던
말러는 10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미래를 의식하며 미래의 음악을 작곡하며
미래를 살다간 말러 특유 인생역정의 결과였다.

그의 음악은 풍자를 곁들인
낭만적인 서정성과 세기말 시대상을 반영했고,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하며 인생에 대한 회의와
그러나 긍정할 수 밖에 없었던 스스로의 소중한 삶에의 집착과
열정으로 자연과 사물을 노래했으며,
또한 죽음의 그늘에서 그가 느끼는 염세적이고
운명적인 슬픔들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말러는 어린 시절부터 선천적이며 유전적인 심장질환과
체질이 약했음에도 열정적인 인생을 살았으나
그의 불우한 성장 배경으로 인한
정신적인 긴장감,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
절망감들이 음악으로 표출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작곡자 보다는 지휘자로 더욱 알려졌던 말러는
20세 때 부터 지휘봉을 잡았고
특히 오페라 지휘에는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브람스는 말러가 지휘하는 오페라
<돈 지오반니>의 연주를 보고 감격하여
“제대로 연주하는 <돈 지오반니>를 보려면
꼭 부다페스트에 가라.”
라고 격찬한 바가 있다.

그는 지휘자로서 명성이 확고해져서
빈 궁정가극장, 빈 필의 상임지휘자로 많은 오페라를 지휘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뉴욕 필의 지휘자를 역임했다.

또한 그는 베토벤 이후 가장 형이상학적인 작곡가로
음악의 정신적인 면을 구현하는데 크게 기여 했고
현대 음악에 지대한 공헌을 한 큰 별로 자리한다.


***


항상 바쁜 일정으로 인하여 여름휴가 때
작곡에 몰두해온 말러는 결혼 후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홀로 지내고 있었다.
여름휴가 때마다 말러의 옆에서 수발해 오던
알마 말러가 건강이 나빠져 치료를 위해 떠났기 때문이다.
1909년 여름의 일이다.

여름을 지내며 말러와 알마와의 편지 내용은
교향곡 제8번의 해석과 괴테와 파우스트,
삶의 목적, 또는 작곡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말러는 브루노 발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친 듯 빨리 썼고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는 해독이 불가능 할 것이다.
겨울이 되어야 알아 볼수 있도록
정리할 여유가 생길것 같다.“ 라고 이야기 했다.
이렇게 교향곡 제9번은 초고가
거의 읽기 불가능 할 정도로 난필이었다.

짧은 시간에 이 정도 규모의 곡을
작곡한 예는 일찌기 없었다.
말러는 “모차르트가 교향곡을 작곡하는 같은 시간에
그 모차르트 교향곡의 3배가 넘는 양의 작품을 썼다“라고 이야기 했다.

작품의 내용에 대하여
브루노 발터에게 보낸 말러의 편지에서
“이 작품은 오랫동안 혀끝에 걸린 무엇을 말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교향곡 제4번과 같이 놓을 수 있지만
많이 다르다.“라고 이야기 했다.

제 4번과 제 9번의 비슷한 점에 대하여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두곡이 각각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 4번은 우아한 성악곡이 포함되어 천상의 세계를 묘사하며
제 9번은 순수한 기악곡으로 다른점이 있으나
두곡 모두 투명한 개념들을 단순하게 형상화 시키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대지의 노래>는 1908년 여름, 타계하기 3년 전
48세 때 완성되었다.
말러는 사랑하는 딸 알마를 잃은 후
그의 마음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구체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쇠잔해 가는 건강과 정신력의 감퇴를 느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인생의 무상함 속에
동양의 허무주의와 탐미적인 정취,
그리고 취흥과 여유로움에 매료되며 영감을 얻었고
이 영감으로 <대지의 노래>를 작곡했던 말러는
이승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끝없는 동경의 세계를 그리며
교향곡 제 9번 작곡을 시작했다.

교향곡 제 9번에서 말러가 묘사하는
이별이 현실적 의미보다
은유적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909년 교향곡 제 9번을 작곡하던 해는
말러는 죽음을 의식할 정도로 불편하지 않았고
열정적으로 새로운 일들을 펼치던 시기였기에
말러의 이별의 의미를 유한한 인간이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에 관한 명상이라고 표현하였다.

<대지의 노래>와 교향곡 제9번, 제10번은
말러의 이전의 교향곡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열정적이고 질풍노도 적 이었던 작품에 비해
후기의 작품은 체념적이며 모든 것을 초월한 경지였다.

교향곡 제 9번의 초고가 끝난 후 말러는
뉴욕 필하모닉으로 부터 상임 지휘자로 초대되어
대서양을 건너 가을 시즌을 위해 뉴욕으로 갈 때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의 초고를 가지고 갔다.

그 후 1910년 4월 유럽으로 돌아 올 때
비로소 브루노 발터에게 작품의 완성을 알릴 수 있었다.

말러의 미완성 교향곡 제 10번을 제외하고는
마지막으로 완성된 교향곡 제 9번은
빈에서 시작하여 미국에서 완성되었고,
말러 스스로 쇠진되어가는 스스로의 건강을 의식하며
인생을 관조하는 고뇌와 그 비애와 갈등을
말러특유의 음악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말러의 모든 음악적 시도에 대한 마지막 결단으로 볼 수 있다.

멩겔베르크는
말러의 <대지의 노래>가 친구에 대한 이별이라면
교향곡 제 9번은 사랑한 모든 사람에 대한, 세계에 대한,
인류에 대한, 말러의 예술, 삶, 음악에 대한 이별이라고 설명하며
제 2악장을 “죽음의 춤”
이라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말러는 <대지의 노래>에서 자아의식과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음악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으며,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와 강박관념 속에 작곡한
<대지의 노래>를 스스로 교향곡으로 인정하면서도
9번이라 번호를 붙이지 않았음은
다른 음악가들의 9번 징크스를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12년 쇤베르크는 어느 강연회의 연사로 참석하여
“9번이라는 숫자는 하나의 한계로 보인다.
그 한계를 넘어 가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그 숫자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는 무엇이 10번속에 잠재되어
우리에게 다가올 것처럼 보인다.
제9번을 작곡한 사람은
내세에 이미 너무 가까이 서있는 셈이다. “라고
말러를 의식하며 강연을 했다.








말러는 불가사의한 죽음의 존재를
피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지의 노래>의 장대한 슬픈 마지막 악장에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말러는 <대지의 노래>를 마치고도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말러는 다음 교향곡에서 다시 죽음을 준비해야만 했다.

말러의 후기 교향곡들은
이별과 죽음을 공통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교향곡 제9번 제4악장의 레퀴엠과 같은 곡은
말러가 세상에 대한 고별을 준비한 것으로 보여 진다.

이렇게 말러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분주한 생활과 의욕적이고 열정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일에 대한 의욕과 관계없이 말러의 작품들은
죽음과 이별에 관한 내용으로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제1악장과 제4악장을 “죽음의 정화”로
윌리암 리터는 이야기 했고
파울 베커는 은유적 표현으로
“죽음이 내게 들려 준 것”이라고 표현을 했다.
또한 발터는“떠다니는 환상이 아니라
실제 감정으로 이별의 슬픔과 하늘의 빛에 대한
영감 사이를 오가는 것“이라 이야기 했다.

교향곡 제9번은 느린 악장으로 시작하여
느린 악장으로 끝난다.
카를 뵈르너의 말을 인용하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비창”이
악장의 순서와 내용면에서도 많이 닮아 있다.

곡의 조성은 D장조로 불리지만
D장조는 1악장이고 C장조와 A단조인 중간 악장을 거쳐
마지막4악장은 Db장조로 시작된다.
중심의 조성이 없어 전통적인
교향곡의 틀이 무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각 악장이 독립되어 있지 않고
1, 4악장은 리듬으로 연계되어 있고
3, 4악장은 삽입구를 공유한다.

교향곡 제 9번의 초연은
말러의 타계 후 1년이 지난 1912년 6월 26일
브루노 발터의 지휘로 비엔나에서 연주되었다.

많은 관심과 기대 속에 연주된
교향곡 제9번은 다양한 평가가 있었으나 성공리에 끝났다.

브루노 발터는 초연을 지휘하고 한없는 눈물과 함께
지휘봉을 놓을 수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발터의 눈물은 말러가 생전에 추구했던
근원적인 생명에의 페이소스가 있다.
연주가들이 말러의 음악을 쉽게 손대지 못하는 이유가
편성의 거대함 때문이 아님을 발터는 잘 알고 있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과 다른 점을 알기위해서는
고뇌했던 생명의 본질성 앞에서 눈물을 흘린 말러의 심정을
의식하며 그의 괴로움과 곤고했던 시절에 동참해야 될 것이다.






Pierre A Renoir(Young woman at the Piano)






제 1 악장 Andante comodo







시작은 전통적인 첫 악장과 대조를 보인다.
곡이 시작되는 동기가 <대지의 노래>가 끝맺는
바로 그 동기, 봄의 아지랑이,
내세적인 느낌을 주는 동기가 우아한 슬픔을 지닌
제9번 교향곡의 첫 주제와 완전히 동일하다.

말러가 <대지의 노래>를 작곡한 후 동기가 연계된
교향곡 제 9번을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기가 나타내는 것이 이별이라는 것은 추측을 할 수 있다.

말러 특유의 소나타 형식으로
두 주제가 제시 부를 구성하고
제 2주제는 같은 으뜸음을 단조로 한다.
두 주제와 함께 제시 부와 종결부도 발전 부에서
다루고 있고 종결 주제는 제2주제와 같은 소재를 이용한다.

말러의 교향곡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송 행진곡은 발전 부의 마지막에서 연주된다.

팀파니가 느린 장송 행진곡의 분위기를 연주하며
트럼펫의 기상나팔과 벨의 동기를 연주,
말러 특유의 혼란스런 정신 상태를 볼 수 있다.
재현 부는 “죽음의 상징”이라 불리는
붙점 리듬으로 시작, 코다를 지나 모렌토로 끝난다.





제 2 악장 Im Tempo eines gemachlichen Landlers.
Etwas tappisch und sehr derb






이 곡은 세 가지 무곡 주제로 이루어졌는데
첫 부분은 편안한 렌틀러, 거친 왈츠,
느린 렌틀러 등 “죽음의 무도“
라고 표현한다.
이 세곡은 번갈아 연주되며
중간에 왈츠와 렌틀러 주제가 같이 연주된다.

서투르고 거칠게 라는 지시로 시작되어
여러 무곡이 연주된 후 세심한 피아니시모로 종결된다.





제 3 악장 Rondo Burleske.
Allegro assai. Sehr tratzig






R. 스트라우스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부를레스크가 유명하나
말러의 부를레스크는 농담으로 들리기에는
너무 거칠고 완고하며 공포스럽다.

부를레스크 주제는 대 주제 사이에 계속 연주되며
이어서 푸가가 연주된다.
이는 독립된 푸가 주제가 아니고
부를레스크 주제를 이용해 구성했다.
정교하지만 복잡한 전개 방식을 가지고
연주하는 듯 빠지는 이 악장의 중간에는
제 4악장을 예고하며 고요히 연주된다.





제 4 악장 Adagio.
Sehr langsam und naco zuruckhaltend






첫 악장의 주제들을 변형, 상승시키는
감정의 교차를 발견할 수 있다.
이별을 다루고 있는 이 악장은
두개의 주제로 구성되었고 소나타 형식이지만
연주를 조금씩 바꾸며 번갈아 연주된다.

이는 교향곡 제 4, 6 번의 느린 악장처럼
두 주제가 변주 형태로 느리게 연주된다.
중간에 클라이맥스가 있고 점차 실내악 형태의
현악 합주가 이어지며 모랜토로 끝난다.

말러의 고뇌를 초월한 명상적인 마지막 부분에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세상 구경을 다한 말러가 내려와 날개를 접는 것”
이라 묘사를 했다.
또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네 번째 곡이 숨어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어느 학자는 이야기 했다.

인간의 상실에 대한 의미가 포함된 코다는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연계된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며 사라지는 것과 존재하는 것이
서로 대결하며 이를 노래한 말러는
참으로 위대한 음악적 시인이었고
이 작품에서 가장 세련미 있는 그리고 깊이 있는 의미를
음악으로 성취하였고 많은 가능성과 함축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Pierre A Renoir(초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