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⑪Gustav Mahler (1860~1911)/Symphony No.10 in F# major(Unfinished) Realization by Deryck Cooke //구스타프 말러 / 교향곡 제10번(미완성)   09-06-07
글쓴이 정병구   4,429 hit
 



구스타프 말러 / 교향곡 제10번F#장조(미완성)

Gustav Mahler(1860~1911)
Symphony No.10 in F# major(Unfinished)
Realization by Deryck Cooke


Peter paul Rubens
(The Adoration of Magi)






말러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와
제 1번에서 미완성 제 10번까지 감상을 끝내며
교향곡에 대한 말러 스스로의 표현을 인용한다.

"나에 관한 한 교향곡이란 하나의 세계를 이룩하기 위하여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술적인 수단을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Gustav Mahler-


아홉 개의 음표들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의 비명 같은 트럼펫의 연주가 이어진다.
트럼펫의 A음이 불륜의 Alma를 의식한 것일 수도 있는데
교향곡 제 10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이 불협화음은 절규와 같이 처절하며,
말러의 부인 알마의 불륜에 대한
고통의 산물로 20세기의 무조음악을 예고한다.

국제말러협회 회장을 지낸 에르빈 라츠는
말러 제10번의 초고 중에서
연주가 가능한 제1악장만을 말러의 작품으로 인정한다.
미완성의 2, 3, 4, 5악장은 말러의 스케치가
4단으로 약식 총보의 형태로 전해졌기 때문에
연주 가능한 악보를 만들 수 있었다.

데릭 쿡, 휠러, 카펜더, 마제티 등이 완성본이 아닌
연주 가능 본(Performing Version)을 만들었다.

교향곡 제1번부터 제9번과
대지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말러에 대하여
기술한 바와 같이 죽음과 고통과 염세적인 갈등 속에서도
삶과 죽음, 고뇌의 장벽을 제거하며
타성에 젖은 형식과 전통적인
가치관의 붕괴로 파생되는
문제들을 음악으로 표출했다.

그러나 말러는 음악을 변혁하고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말러가 사용한 소박한 리듬과
온음계적인 화성은
과거의 음악에 안주하는 것을 허용치 않았고
드넓고 무한한 세계를 교향곡에
담아 표현하고자 했던 말러의 의욕과 같이
장대한 악곡 규모와 거대한 관현악의 편성은
현대의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이 시대에 쇤베르크나 제자들과 그를 추종하던
많은 사람들은 말러를
새로운 음악의 선구자로서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에 비평가들은 말러의 음악을 평하기를
“무의식적인 기억과 위장된 인용, 스캔들을 야기 시키는
평범함과 감상적인 자기만족을 끼워 맞춘“ 것이
말러의 음악이라고 비난과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말러의 음악에서 흔히 연주되는
렌틀러의 무곡이나 행진곡 등과
단순하며 서민적인 리듬,
쉽게 만든 것 같은 선율들이 그러했다.

또한 극적으로 묘사되는 분위기의 변화,
조성의 파괴, 과장된 대조,
거친 음향, 격렬한 색채, 산만할 정도의 양식 등
말러의 음악에서만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비평가들에게 충격을 주고 도발적으로 보이게 하여
비난과 혹평의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비극적인 것, 해학적인 어투,
그로테스크한 것 등 민요적인 소박함과 정교한 서법,
숭고함 속에 저속함, 진지함과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신비주의, 니힐리즘 등
열거 할 수없이 많은 것들은
말러 특유의 모순과 근원적으로 대립하는 것들이
말러의 음악에서 확실히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근원적으로 대립하는 것들과, 역설적인 모순은
말러의 음악에서 깊이 있는
인간 성찰의 계기를 부여하며,
또한 그의 고뇌와 죽음으로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그의 음악의 심연에서 독창성과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고
형이상학적인 이미지를 표출하고 있다.

클로드 드뷔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동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향락적인 면이 말러의 음악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말러는 스스로의 음악에
정신적인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며 노력했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베토벤 이후 가장 형이상학적인 작곡가로 말러를 지칭한다.

미완성 교향곡 제10번은 말러가 의도한
제 5악장 중에서 보필하여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제1, 2, 3,악장이었으나 2,3악장은 뼈대만 있었고
제1악장도 완성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이 악장에서
말러의 만년의 심경이 잘 묘사된 것으로 평가한다.

이 교향곡은 영국의 말러 연구가
데릭 쿡에 의해 완성되었고
1965년 11월 5일 유진 오먼디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말러의 데릭 쿡 판(2판)을 미국에 소개했고
그 후에 데릭 쿡(3판)이 최초로 레코딩 되었다.










제 1 악장 Adagio

 


비올라와의 모놀로그이며 고통의 화음이다.
1910년 여름 휴가 기간에 토블라흐에서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인 제 10번이 작곡되었다.

말러는 라이프치히와 뮌헨을 오가며
바쁜 지휘 일정을 보냈고 휴가 기간 동안
건강도 돌 볼 틈이 없이 작곡에 열중하였다.
제 10번도 제 9번과 같이
알마와 떨어진 기간 동안 작곡을 했고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남겨진 자료로는 날짜를 추리하기 어렵다.

말러의 유언에 따라 알마가 이 교향곡의 원고를
폐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곡의 스케치에
말러의 심리적 갈등과 배경을 볼 수 있다.








제 2 악장 Scherzo I

 


삶의 긍정
말러의 고뇌와 극심한 갈등의 요인은
건강 문제도 있지만
알마에 대한 말러의 연민이었다.
알마의 정부인 발터 그로피우스가 그곳에 왔었고
말러는 그를 알마에게 안내했었다.

알마가 말러에게 주는 강박관념은
말러의 심리상태를 흔들었고
이 곡 자체가 어둡고 냉소적이며
고별에 관한 것이지만
곡의 스케치에 말러가 한 낙서들이
말러의 그 때 심한 갈등을 짐작한다.








제 3 악장 Purgatorio

 


연옥과 지옥으로도 표현되며
제 3악장에도 말러의 마태복음에서
인용된 낙서를 발견한다.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다 이루었다.”등의 구절이 있다.

피날레까지 스케치한 제 10번 교향곡이
미완성이었던 이유는 겨울에 시간이 있었음에도
말러가 이 곡에 몰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브루노 발터를 비롯하여 관계자들은
작곡가의 유언을 무시하고
이 곡을 폐기하지 않았던 알마의 행동을 비난했다.

알마의 행동에 변명이 있다면
이 곡의 상당 부분이 완성되어진 상태였고,
1악장과 2악장은 스코어 스케치로 거의 완성되어 있었으며,
3악장 연옥은 간략한 스코어 세 장으로 남았고
마지막 두 악장은 네 단의 작은 스코어가 있어
부분적으로 악기 지시까지 되어 있었다.]











제 4 악장 Scherzo II

 


악마가 함께 춤을 추다.
알마 말러는 말러의 악보가 미완성이지만
많이 진전이 있었기에
연주용 악보로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에른스트 크레넥은 알마 말러의 의뢰를 받아
미완성 악보의 보완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제1악장과 제3악장으로 만들었고
그가 구성한 연주용 악보의 초연은
1924년 비엔나와 프라하에서 있었다.

브루노 발터, 레오도르 아도르노, 에르빈 라츠는
제1악장 Adagio가 완전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며 비난했다.

이후 조 윌러, 데릭 쿡크, 클린턴 카펜터,
레모 마제티 한스 불술레거 등이
말러의 미완성 악보의 작업을 했으나
그 중 데릭 쿡크의 악보가 유명하다.

데릭 쿡크는 단순한 스케치가 아니며
전체 모습의 레이아웃임을 강조하고
새로운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말러의 작곡 성향을 보아 데릭 쿡크는
많은 부분을 보완하고 수정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데릭 쿡크는
“본인의 작업이 연주할 수 있도록,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 것“
이라고 이야기 했다.








제 5 악장 Finale

 

너를 위해 살고 너를 위해 죽는다.
데릭 쿡크는 말러가 작업한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으나
대위성부나 화성이 결여되어 있는 곳,
등에 대하여는 보완이 불가능 했다.

데릭 쿡크는 여러 번 보완 수정하여
연주용 악보를 완성했다.

많은 학자들은 완전한 것은 아니나
말러가 남긴 마지막 작품을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에
찬사를 보냈고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래를 살며 미래를 작곡한 말러는
그가 죽은 뒤 50여년 후 비로소
학문적으로나 음악가들에게
20세기 작곡기법의 선구자로 인식되었고,
그의 음악이 많은 음악가와
동호인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시작 했다.

말러는 보수경향을 추구하는
바그너와 리스트에서 발단된 신낭만주의와
브람스에서 근거한 신고전주의와 투쟁의 시대에
말러가 새로운 방향에 대한 강한 동경을 나타내었다.

말러는 이러한 과도기에 훌륭한 업적을 남겼고
고전음악의 원칙과 보수 세력의 틈에서
시대풍조에 적합한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려 하였으나
화성과 선율 형식 등을 개척하거나 변혁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러한 시기에 말러는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타인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며
낭만주의 시대에서 근대음악으로의 가교를 연결한
과도기를 살다간 진보주의자로 인식해도 좋을 듯하다.








Peter Paul Rubens (The Majority of Louis X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