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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Ludwig Van Beethoven(1770-1827)/piano concerto no.5 in Eb major Op.73. Emperor//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작품 73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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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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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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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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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8 h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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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b장조 황제 작품 73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piano concerto no.5 in Eb major Op.73. Emperor

Happy New Year
기축년(己丑年) 새해가 밝아 왔습니다. 지난 한 해는 참으로 어렵고 곤고했습니다.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 셸리(Percy Shelley)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 에서 추운 겨울에 소망의 봄을 예감하는 것처럼,
어려움과 곤고(困苦)함 속에서도 미래의 아름다운 생을 조각하고 수놓는 과정으로 감내(堪耐)하며 떠오르는 태양처럼 새해의 문을 힘차게 여시기 바랍니다.
절대 원음과 하이 앤드를 추구하시는 금강 음악다방 가족 여러분께는 게시되는 음악 소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겠지요.
그러나 음악다방에 쉬어가시며 미흡 할 지라도 지난 기억들을 반추하여 소장하고 계신 하이 앤드 기기의 좋은 음질로 다시 감상하시기 바라오며.......
기축년 새해 아침. 하시는 사업의 번영과 댁내에 평강의 축복이 임재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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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휘몰아치는 하루와도 같았던 고난과 역경의 일생을 살아 왔던 베토벤.
청각 장애인의 고통으로, 엄습하는 죽음의 그늘에서,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절규와 같은 유서를 쓰며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던 베토벤.
그는 운명과 싸우며 불굴의 영혼은 피울음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장 완전하고 위대한 그리고 강한 호소력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던 역사에 기록 된 불후(不朽)의 명곡들을 작곡했습니다.
어렵고 곤고한 경제 한파의 연장선에서 새해를 맞으며 음악다방 가족여러분께는 참으로 익숙한 베토벤의 역동적이고 당당한 기풍이 서린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황제>로 새해 아침에 희망과 용기를 얻으며, 지극히 높은 곳에 소망을 두고, 가치 있는 것들을 바라며, 지고지순한 사랑들을 담아 새해 음악다방의 문을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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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소리에서 음으로, 음에서 멜로디로, 멜로디에서 하모니로, 하모니에서 리듬으로, 작곡으로, 연주로, 감상으로, 이해로, 그리고 마침내 황홀경으로 이끈다.”라고 한 어느 책의 소제목들이 기억이 나서 인용(引用)한다. 참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음악은 음을 훌륭하게 다스리는 학문이고 예술이라고 한 바와 같이 작곡가와 연주자에 의해 훌륭하게 다스려진 소리들은 음악이 되고, 그 음악은 우리의 심혼(心魂)골수(骨髓)를 파고든다.
어느 때는 슬픔과 비통함으로, 어느 때는 기쁨과 희열과 황홀함으로, 또한 실의와 좌절과 시련 속에서 방황 할 때 피할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섭리(攝理)와 경륜(經綸)과 사랑이 되어 소망과 용기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
음악은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느끼며 찾을 수 있도록 심미안(審美眼)을 길러주고, 일상에서 빚어진 고통과 곤고(困苦)와 슬픔을 위안과 위로와 희열(喜悅)로 바꾸어 주며, 하루의 복잡한 일상에 찌든 우리의 영혼에 정화(淨化)와 성화(聖化)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 때 비로소 정결(淨潔)한 마음 되어 귀주영광(歸主榮光), 주님을 향한 기도의 문이 열린다. (정병구 “마태수난곡 斷想"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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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타 형식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화음이 베토벤 특유의 고뇌와 완벽함으로 웅장하고 근엄하게 서주부가 시작된다.
관현악은 독주 악기보다 비중이 크고 피아노 연주는 치밀하며 섬세하게, 화려한 분산 화음으로 서정적이며 카덴차 풍으로 연주된다. 멜로디도 밝고 명쾌하며 참으로 아름답다.
제 2 악장 Adagio un poco mosso 4/4박자
이 악장은 이 곡의 가장 뛰어난 악장으로 마음을 흔드는 황홀경, 절정에 이른 절묘(絶妙)한 아름다움과 피아노의 느리게 연주되는 부분은 우아한 아름다움이 어느 곡과도 비교할 수없는 걸작이다.
엄숙한 종교적인 색채와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으로 박진감 있게 연주, 침통하리만큼 애절하며 또한 밝고 감동적인 악장이다.
제 3 악장 Rondo Allegro Eb장조 6/8박자
론도 형식. 피아노 연주 주법의 극치와 색채의 아름다움과 웅장한 기상이 힘차게 약동하며, 경쾌하고 밝고 호쾌한 분위기의 흥겨운 악장으로 관현악 연주의 정수(精髓)를 느끼게 한다.

베토벤 연구의 명저로 평가되는 프랑스의 사상가, 소설가이며 평론가인 <장 크리스토프 Jean Christophe>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로맹 롤랑(Romain Rolland:1866~1944) 의 <베토벤의 생애 La Vie de Beethoven>의 서문에서 “영웅이란 오랜 세월 초인적인 분투와 노력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인류에게 용기와 위안을 불어넣어 준 사람으로 베토벤이야 말로 영웅 대열의 맨 앞에 세울 수 있는 사람“ 이라고 기록하고 또한 “만약 신이 인류에게 저지른 범죄가 있다면 그것은 베토벤에게서 귀를 빼앗아 간일이다. “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동서고금을 통하여 베토벤을 제외하고 영웅, 악성이란 칭호를 받는 음악가가 또 있을 가?
빈의 중앙 묘지 음악가 묘역에 잠들어 있는 역경과 불운의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은 궁정 악단의 가수인 요한을 아버지로 1770년 독일 서부 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가세는 풍족하지 못했으나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음악가로 키워보려는 아버지에게 엄격한 음악교육을 받아 4세 때부터 건반악기를 배운 베토벤은 7세에 대중 앞에서 연주 할 수 있을 만큼 숙련 되었다.
14세에는 궁정 극장 오르간 연주자가 되어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으며 4년 후 17세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모차르트를 만났고 피아노를 연주하여 모차르트를 놀라게 하였다.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후 베토벤은 두 동생을 돌보며 생계를 걱정하며 성격적인 결함이 쌓이기 시작 했다.
베토벤은 기구한 운명을 저주하며 매사 부정적이었으며 거친 성격으로 주위로부터 조롱꺼리가 되기도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빈에서 피아니스트로 인정을 받아 인기도 높아지기 시작했으며 기교가 넘치는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는 칼 리히노프스키 공작을 매료(魅了)시키기에 충분 했다.
베토벤은 그의 후원으로 생활도 윤택해 졌고 최고의 경의와 찬사를 받으며 상류 사회의 사교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안락한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 아니라 위대한 일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선천적인 베토벤의 거칠고 교만한 기질은 상류사회의 생활을 접고 은둔(隱遁) 생활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자신의 독창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음악도 듣지 않았다.
제 1교향곡을 작곡하여 발표한 그의 나이 30세 (1800) “자신을 천재로 착각하는 시골뜨기”라며 비평가들은 비웃었다.
제 2교향곡이 작곡 발표되자 “만약 베토벤이 이따위 장난질을 계속한다면 우리의 오케스트라는 악기들의 싸움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라고 비평가들은 혹평(酷評)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제 1교향곡을 완성하기 직전부터 점점 청각이 상실되어가며 불행이 시작되었다.
귓병으로 고통을 겪으며 두 동생 앞으로 하일리겐슈타트 시골에서 작별을 고하는 절규와 같은 유서를 쓰며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그는 운명과의 영웅적인 싸움으로 실의와 좌절과 절망의 생활을 탈피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 그의 불굴의 영혼은 더욱 훌륭한 음악을 탄생시켜 갔다.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운명의 끈을 붙잡겠다.”고 썼고 또 다른 편지에 “병에서 치유만 된다면 나는 온 세계를 담아낼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의 병은 치유되지 않았으나 편지의 사연과 같이 그의 음악은 지금도 경의와 감동으로 세계를 담고 있다.
프랑스의 작곡가 오네게르는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내면적으로 성숙 할 수 있었고 천재성을 집중하도록 도왔으며 시대의 무미건조함이나 범용(凡庸)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고 베토벤의 일면을 지적했다.
로맹 롤랑은 “베토벤의 일생은 태풍이 휘몰아치는 하루와도 같았다.“라고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던 그의 생을 회고하며 “인간의 힘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 위대한 그리고 강한 호소력으로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감동으로 이끄는 음악, 그것이 베토벤의 교향곡 제 9번이다.“ 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청각 장애로 인해 연주 활동 보다 작곡에만 전념했으며 대인관계도 피해 칩거하고 있었다.
피아니스트인 베토벤은 32곡의 피아노 소나타와 5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고 곡 중 <황제>로 부제가 붙은 <피아노 협주곡 5번 Eb장조 작품 73>은 명성 그대로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최고의 감동을 주는 걸작으로 그리그, 쇼팽,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과 세계 4 대 피아노 협주곡으로 자리한다.
불멸의 예술혼을 불사른 베토벤의 집념이 스며있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황제>는 1808년에 시작 다음 해 그의 나이 38세 때 완성되었다.
이 해는 나폴레옹 군이 비엔나를 침공하여 베토벤은 피난 중 포성 속에서 이 곡을 작곡 했다.
웅장하고 화려하며 힘차고 당당한 기풍으로, 호쾌함과 강렬함이 서려있어 보무당당한 황제의 행차를 연상시킨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이 곡은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1811년 11월 28일 초연 되었다.
독주자는 라이프치히 파우리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이었던 시나이더(Schneider)로 초연 당시 호평을 받을 만큼 성공적으로 연주되었고 후원자인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었다.
1815년 이후 12년간은 베토벤의 창작기 중에서 후기에 속하며 정치와 사회도 많은 변혁이 있었고, 악화일로의 귓병으로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어 필담을 통해서만 의사를 소통할 수 있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과 한 살 차이로 동시대를 살며 나폴레옹을 인류의 위대한 지도자로 그를 숭배하여 교향곡 제3번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후 배신감을 느끼고 그 생각을 취소했다. 그들이 연주를 요청할 때마다 이를 거절했다. “연주를 해 주든가 아니면 전쟁포로가 되든가 하시오”라는 그들의 협박에 빗속을 뚫고 3 마일이나 걸어서 다른 마을로 도망쳤다는 일화가 있다.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더불어 빈 고전파를 대표하며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확립한 고전파의 형식이나 양식은 베토벤에 의하여 개성적으로 다듬어 지고 완성되어 졌으며,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정적인 고전성에 비하여 베토벤의 작품은 역동적이고 스케일이 크며 곡마다 특유의 스타일로 하나의 아성(牙城)을 이루고 있다.
그의 음악세계는 고전주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으나 그를 추종하는 낭만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과도기를 살며 고전의 형식미에서 벗어나 낭만주의 음악의 문을 연 교량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인간의 의지에 대한 확신이 강하게 들어나고 동 시대의 문호 괴테와 실러의 사상과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포괄(包括) 했으며, 또한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하던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따르고자 했고 형식적인 예술 보다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내용과 생명의 체험을 진지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베토벤은 소리를 잃은 청각 장애자임에도 어떤 작곡가들 보다 생생하게 소리를 잃은 고통 속에 삶의 철학을 예술혼에 담아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베토벤의 후기 창작 활동은 역동적인 힘은 부족하지만 심오한 마음의 세계가 표현되어 감동적이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음악 형식에서도 베토벤은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 현악4중주를 작곡하며 그 영역을 확대했고 교향곡 9번에서는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성악과 기악의 어울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다.
<교향곡 제 9번 합창>을 작곡할 당시 완전히 청각을 상실 했었고 생활도 궁핍했으며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었으나 그는 고통과 슬픔과 절망의 심연에서 좌절하지 않고 이를 극복한 승리자였고, 철학자이었고, 사상가였다. 그의 불굴의 투지는 최악의 조건에서 음악사에 남을 불멸(不滅)의 명곡을 작곡하였다.
베토벤의 삶은 청각 장애의 투병으로 고통의 나날이었고 그의 후기 작품들은 완전히 청각을 상실했을 때 마지막 10년간에 걸쳐 작곡되었다.
그의 음악에는 항상 숭고함과 따사로움이 있고 인간의 영혼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또한 인생이란 고뇌 속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풍요하고, 가장 행복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청각 장애자로 소리를 잃었지만 이를 극복한 초인적인 정신력은 인간의 집념이 한계를 뛰어넘은 기적으로 주옥같은 불후(不朽)의 걸작을 탄생시켰고 승리의 그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후기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과도기에 가장 뛰어난 영향력 있는 음악가였으며 그의 작품들은 사후 180 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깊은 감동과 감명으로 그 신비한 생명력으로 클래식을 애호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살아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 이후 그를 후원하던 귀족들이 몰락하자 궁핍한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육신의 질병으로 시달리던 그가 임종을 맞게 된 것은 1827년 창밖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그는 죽어가며 “여러분 박수를 보내라. 이제 희극은 끝났다.”는 말을 남기고 57세의 나이로 타계, 태풍이 휘몰아치는 하루와도 같았던 고난의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1827년 3월 29일 베링거 묘지에서 약 2만 여명의 조문객의 애도 속에 치러졌고 빈 시의회의 “명예 묘지 추진 법”제정에 따라 1881년 중앙 묘지 음악가 묘역에 불멸의 거장들과 함께 안장되었다.

베토벤의 작품
그의 작품은 미완성곡과 분실된 곡 보류된 곡을 합하면 1500곡에 이른다.
베토벤의 걸작 중의 걸작인 9곡의 교향곡이 있고 그 중 다른 교향곡에서 볼 수 없었던 넘치는 힘과 웅장한 압도적인 스케일의<교향곡 3번 영웅>과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들긴다.”의 <교향곡 5번>에 대하여 시인 괴테는 “나는 이 교향곡을 들으면 천정이 와르르 무너질 듯 마구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인간이 지닌 희로애락의 감정을 솔직하고 선명하게 묘사한 <교향곡 5번 운명>과
병마와 시달리는 고통 속에서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평화와 기쁨, 인생의 고난, 희망과 감사를 노래한 <교향곡 6번 전원>과
전인미답의 신비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듯 쾌활한 스케르초, 천국의 평화로움처럼 서정적인 악장으로 시작되며 환희의 송가로 끝나는 베토벤 불후의 명작이며 프러시아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에게 헌정된<교향곡 9번 합창>은 그의 4대 교향곡이다.
음악의 성서라 일컫는 32곡의 피아노 소나타가 있고, 이중 <8번 비창> <14번 월광> <23번 열정>은 3대 소나타로 불린다.
로맹 롤랑은 <23번 열정>을 가리켜 “베토벤의 열정의 마음, 탄탄한 턱과 위쪽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 고뇌로 단련된 불굴의 기백이 그대로 다가오는 것처럼 여겨지는 작품” 이라고 평했다.
5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 제 5번 협주곡은 <황제>라는 부제로 걸작 중 걸작이며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16>과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Eb 단조>와 쇼팽<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Op11> 과 같이 세계 피아노 4대 협주곡의 하나이다.
21곡의 피아노 변주곡이 있고 하나의 주제가 다양한 양식으로 변형되는 베토벤의 변주 양식을 집대성한 <디아벨리 왈츠 주제를 한 변주곡 작품120번>은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과 쌍벽을 이루는 걸작이다.
11곡의 피아노 3중주곡 중 <7번 Bb 장조 대공 작품 97>은 피아노 3중주의 최고의 명곡이다.
피아노 소품중 하나인 바가텔 27곡 대표작은 <25번 A단조 .op.173 엘리제를 위하여>가 있다.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5번 봄과> <9번 크로이체르>가 대표작이다.
1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61은>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2곡의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로망스> 5곡의 <첼로 소나타> 5곡의 <현악 3중주>가 있고,
16곡의 <현악 4 중주>는 현악 4중주 역사상 백미이다. 3곡의 <현악 5중주>와 대단한 호평을 받은<목관 7중주> 1곡이 있다.
300여곡의 가곡 중 대표작으로 <그대를 사랑해><아델라이데>가 있다.
극음악 11곡과 오라토리오 <감람산위의 그리스도>와 2곡의 미사곡 중 유명한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장엄 미사곡>이 있다.
칸타타, 이중창, 삼중창, 합창곡 등 수많은 성악곡과 오페라 <피델리오>는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곡이며 이를 위해 4개의 서곡을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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