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Johann Nepomuk Hummel(1778~1837)/Concerto for Trumpet & Orchestra. in Eb major//요한 네포무크 훔멜 / 트럼펫 협주곡   09-01-26
글쓴이 정병구   6,260 hit
 



요한 네포무크 훔멜 / 트럼펫 협주곡

Johann Nepomuk Hummel(1778~1837)
Concerto for Trumpet & Orchestra in Eb major


Thomas Gainsborough
(The Artists daughter Mary)




요한 네포무크 훔멜(Johann Nepomuk Hummel)은
브라티슬라바 극장의 관현악단 지휘자이었던
음악가 아버지로 부터
1778년 브라티슬라바(현 슬로바키아 공화국 수도)에서 태어났다.

훔멜은 음악적인 재질이 뛰어나
4살의 나이에 악보를 읽었고,
5살에 바이올린을, 6살에 피아노를 연주 했으며,
각 도시를 방문, 연주 여행을 통해
탁월한 피아노 실력을 과시했고
어린 시절 아버지로 부터 음악을 배웠다.

모차르트는 훔멜의 재능을 아껴
2년 동안 그의 집에서 같이 기거하며
훔멜에게 자기의 재능을 전수하기에 이르렀고
9세에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으로 첫 독주회를 가졌다.

모차르트는
“저 소년이야 말로 미술에서 라파엘이 해낸 일을
피아니스트로서 이루게 될 것이다.”
라고 훔멜에 대하여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고,

음악 애호가 윌리암 가디너는
훔멜의 연주를 듣고
“어린 모차르트를 제외하고
훔멜은 영국을 찾아 왔던 가장 놀라운 연주자다.”
라고 격찬한 바가 있다.

훔멜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스승인
알브레히츠 베르거에게 대위법을 배웠고
클라멘티, 하이든에게 사사,
실리에르에게 성악곡 작곡과 미학, 음악 철학 등을 사사했다.

















제 3 악장 Finale-Allegro(Rondo)













제 1 악장 Allegro con spinto













제 2 악장 Andante






훔멜은 당대에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로
왕성한 활동을 한 음악가이며
피아노 최고의 거장으로 존경을 받았고
작곡에서도 베토벤과 견줄만한 수재로 평가를 받았으며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음악의 과도기에
가교 역할을 담당한 음악가이나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절묘한 기교와
멜로디에서 풍부함과
화성법과 대위법에서의 교묘함으로
그의 뛰어난 기량을 엿 볼 수 있다.

또한 그가 만든 독특한 운지법과
근대적인 피아노 주법으로
단아하고 명료한 음색,
음악을 통한 서정성과 화려함,
정교함과 우아한 장식효과와
단락의 명료한 변화는 고전주의 음악의 특징으로
그의 연주는 전 장르에 걸쳐
음형적 장식으로 아름답고 부드러웠다.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였던 훔멜은
피아노곡과 극 음악, 교회 음악
실내악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이 곡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보다 늦게 작곡, 초연되었으며
트럼펫의 자연스런 아름다움과 어려운 테크닉을 구사한 곡으로
악기로 연주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화려하고 아름답다.

트럼펫의 명인 바이딩거(Weidinger, Anton)를
위해 작곡 했던 이 트럼펫 협주곡은 바순 협주곡과 더불어
출판 되지 않은 채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바이마르에 가면 반드시 괴테를 만나라.
그리고 훔멜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라.”
이 이야기는 독일 지성의 상징 괴테와 쌍벽을 이루는
피아니스트 훔멜의 명성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이야기다.

19세기 초 유럽 음악계를 사로잡았던 훔멜은
체르니, 쇼팽, 슈만, 페르난디도 힐러,
지기스문트 탈베르그, 멘델스죤 등 유능한 제자와
괴테, 베토벤, 하이든, 모차르트와 동 시대를 살며
그가 당대에 베토벤의 라이벌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은 진실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괴테와 베토벤에 비교되는 훔멜은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훔멜은 교향곡을 제외하고
거의 전 장르에 걸쳐 작곡을 했으며,
혁신적인 피아노 연주기법을 창안,
19세기 초 모든 피아노 연주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변혁의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그의 주옥같은 작품을 볼 때
오늘날 훔멜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미진한 것인지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


그가 남겨 놓은 작품의 양이나 그가 생전에 누린 명성은
베토벤의 음악과 다른 차원에서
음악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나
훔멜의 성공은 예술과 고통이 철저히
밀착되었던 베토벤의 성공과는 다르다.

그 당시 훔멜은 대인관계에서
대가들과의 교류와 교제를 통하여
경제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괴테의 소개로 바이마르 지식층의 유력인사들과 교제하며
베토벤의 추종 그룹과 맞설 정도로 명성은 대단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베토벤이 가진
거인적이고 초인적인 이미지나 열정,
그리고 번뜩이는 천재성 은 없었다.

훔멜을 베토벤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또한 훔멜을 대중의 기호에 편승하여
비르투오소 음악가로
많은 재산과 명예를 얻은
부르주아(bourgois) 사람으로 편협한 평가도 해서는 않된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교차로에서
수많은 음악가들과 관계를 맺으며 이루었던
경시할 수 없는 그의 음악적 성과는
그가 남겨놓은 음악을 통하여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는 말년 바이마르 궁정 극장의 지휘자로 있었고
유복한 생활을 누리다가
1837년 59세의 일기로 여생을 마쳤고
그의 많은 유산은 프리메이슨 협회에 기증되었다.

그가 타계한 후에도 명성은 여전했지만
그의 음악은 고전주의를 지나
낭만주의의 급속한 발전으로 쉽게 잊혀져 갔고
20세기 이후 고전 음악의 부활에서도
그의 이름은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훔멜의 이름과 작품이
당시의 명성과 뛰어난 천재성에 비해
기억되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이든처럼 훔멜도
동 시대를 살았던 모차르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근래에 지속적인 연주회나 녹음되는 음반으로
그를 좋아하는 추종자들이 늘고 있다.

훔멜의 작품

9곡의 오페라, 3곡의 미사곡, 피아노 곡 125 곡,
7곡의 <피아노 협주곡>과 <피아노 6중주곡>, <5중주곡>등
많은 실내악곡을 작곡 했고,
피아노 독주곡 <론도 파보리 Op 11>
<런던 귀향 Op. 127> <오베론의 마술 뿔피리 Op.116>
<트럼펫 협주곡> <클라리넷 협주곡>,
<바순 협주곡>, <만도린 협주곡> 등이 있으며
<피아노 교본>을 저술, 운지법을 혁신했다.


William Adolphe Bouguereau Two Girls(Childhood Idyll)



 


johnansog 22-04-19 11:36
뎃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