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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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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ei Prokofiev(1891-1953)/ Symphony No.1 in D Major Op.25 Classic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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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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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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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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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0 h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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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예프 / 교향곡 제 1번 (Classical Symphony)
Sergei Prokofiev(1891-1953)/Symphony No.1 in D Major Op.25
 Carle van Loo (Noble Woman)

프로코피예프는 유대인 대 지주 아버지와 피아노 연주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1891년 우크라이나 손초프가(드네프로 페트로프스크)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음악 교육을 받은 프로코피예프는 5 세 때 <인도풍의 갤럽>을, 9세 때 피아노 반주가 있는 오페라 <거인><무인도에서>등을 작곡할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음악가였다.
14세 때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에게 사사하여 음악이론, 작곡, 피아노, 지휘 등을 수학하였고 음악에 대한 학문적인 확고한 기반을 닦아 유럽의 근대 음악에 전위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다.
프로코피예프는 현대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스트라빈스키보다 대담하지 못하지만 무소르그스키의 뒤를 이은 낭만적인 음악으로 시작하여 현실주의적 음악으로 두각을 나타낸 작곡가이며 간단명료하게 심상을 음악으로 전달하는 작곡가 였다.
20세기 초 전위적인 음악가로 “음악에서 소나타 형식을 능가하는 형식은 없다. 나는 고전으로 돌아가겠다”. 라고 고전 복귀를 선언했고, 그의 유명한 고전 교향곡은 그런 사상의 소산이었다. 이 고전 교향곡은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제 1번의 별칭이다.
예리하며 타악기를 연주하는 듯 전위적인 비상한 피아노 연주법이나, 청중을 압도하는 화성의 표현등으로 스트라빈스키와 같이 혁신적인 재능을 인정 받았고,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놀라움을 주었다.
또한 인습에 대해서는 지극히 반항적이었고 모더니스트에게서는 진보적인 작곡가로, 보수파들은 이해 불가능한 작곡가로 인식이 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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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전 교향곡은 러시아 혁명의 시기(1917)에 작곡이 되었고 프로코피예프는 다음 해 일본 경유 미국으로 망명하여 27세의 젊은 나이로 조국 러시아를 떠난 길고도 외로운 여행이 시작 되었다.
사회주의 체제가 싫어 망명한 라흐마니노프 같이 프로코피예프도 그 체제에서의 창작 활동이 싫어 망명했고, 드디어 소비에트 정부는 이 두 사람에게 귀국을 종용, 1933년 프로코피예프는 귀국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비버리힐즈에서 타계한다.

제1악장 Allegro(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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