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닌 레오폴드 드보르작/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
Antonín Leopold Dvorak(1841-1904)
Cello Concerto in B minor, Op.104

HansZatzka In The_Night_Sky

프라하(Prague)를 흐르는 체코(Czech)의 몰다우 강 기슭에
비셰흐라트 성(Vysehrad Castle)이 있다.
비셰흐라트는 전승(戰勝)을 축하하는 개선(凱旋)의 성도(聖都)이었고,
때로는 적의 공격을 격퇴(擊退)한 전쟁터이기도 했으나,
번영(繁榮)했던 성도는 지금은 폐허(廢墟)가 되었고
그 폐허의 성(城)이 흐르는 몰다우 강 물결에 어린다.
Vysehrad Castle은 신동(神童)으로 4세에 바이올린을 연주(演奏)한
보헤미아 음악의 창설자(創設者) Bedrich Smetana가
노년(老年)에 청각 장애(聽覺 障碍)가 있었음에도 작곡한
<나의 조국>중 <몰다우>江 기슭에 있는 성(城)의 이름이다.
이 체코(Czech)의 상징(象徵)인 몰다우 강 기슭은
세계적인 음악가(音樂家)인 Smetana와
그를 이은 Dvorak이 자라난 어머니 같은 강이다.
Beethoven처럼 내면의 갈등(葛藤)과 투쟁(鬪爭) 그리고 장엄(莊嚴)하고
어두운 색채(色彩)의 작품을 쓴 Smetana와 다르게
Dvorak은 주로 밝고 명랑(明朗)한 작품을 많이 작곡하여
체코(Czech)의 Mozart로 불린다.
드보르작(Antonin Dvorak)은 중부 유럽 동쪽에 위치한
체코(Czech)의 수도 프라하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몰다우 강 기슭 넬라호제베스(Nelahozeves)에서
정육점과 여관업을 영위하는 가정에서 1841년 9월 8일에 태어났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신동(神童)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기량(技倆)으로
훌륭한 음악을 작곡했고 또한 연주(演奏)로 그 이름을 알렸으나
Dvorak은 신동도 아니었고 음악가(音樂家)의 집안도 아닌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음악교육(音樂敎育)도 받지 못했다.
이렇게 Dvorak은 신동 음악가들과 달리 아주 늦은 나이에
비로소 음악가(音樂家)로서의 생이 시작되었고
15세 때 2년간 프라하(Prague) Organ 학교에서 연주 수업(授業)을 받으며
비올라 연주자로 레스토랑,·호텔 등에서 연주 생활(演奏生活)을 하다가
1862년 프라하 가설극장(假設劇場)(後 國民劇場)의 비올라 연주자가 되었다.
체코(Czech)의 작곡가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가
1866년 지휘자로 취임하여 그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연주 할 때
Dvorak은 Orchstra의 비올라를 연주하며 크게 고무되었고
이를 계기(契機)로 작곡가가 되겠다는 집념(執念)이 Smetana를 이어
세계적인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의 국민적인 작곡가로 성장하게 했다.
또한 그는 체코(Czech)의 민족 문화를 중흥시켜야 할
음악가로서의 소명의식(召命意識)을 자각하며 정진(精進)하였고
1872년<백산의 후계자들에 의한 합창 찬가>로 인정을 받으며
11세기에 설립 된 성 아달베르트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Dvorak은 <라 호라의 후계자들.Dedicove Bile Hory>로
신예(新銳) 작곡가로 데뷔하여 Smetana가 지휘한
<교향곡 제 3번. Eb장조. Op.10>의 초연에서 성공을 거둔다.
Dvorak은 안나 체르마코바(Anna Cermakova)와 결혼하여 행복했으나
1남 2녀의 자녀를 차례로 잃고 비탄(悲嘆) 속에서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를 작곡했다.
1877년 오스트리아 정부의 장려금(獎勵金) 심사 위원인
Brahms의 인정(認定)을 받아 출판사에서 그의 작품이 출판되며
유명해 졌고, 그의 실내악(室內樂)과 관현악곡(管絃樂)을
런던이나 베를린에서 연주할 정도로 명성(名聲)은 퍼져나갔다.
Dvorak은 영국을 방문(訪問), 스스로 작곡한 곡을 지휘하여
Handel, Haydn, Mendelssohn 같은 위대(偉大)한 음악가에게만
찬사(讚辭)와 갈채(喝采)를 보냈던 지극히 보수적인 영국에서
호평(好評)과 찬사를 받으며 음악가로서의 위치를 공고(鞏固)히 하게 된다.
Dvorak은 Oratorio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 Op.58>를 연주한 후
그 때의 감격(感激)을
“청중(聽衆)들은 나를 우레와 같은 박수(拍手)로 맞이해 주었다.
더 큰 열광(熱狂)은 곡이 진행(進行)됨에 따라서 더욱 커져
마지막 박수(拍手)는 너무 크게 울려
나는 청중(聽衆)에게 몇 번이고 답례(答禮)를 되풀이해야 했다.
또한 관현악단(管絃樂團)과 합창단원이 내게 가장 열렬한
갈채(喝采)를 보내 주었다. “라고 고국(故國)에 전했다.
이렇게 영국에서 첫 공연(公演)을 성공적으로 마친 Dvorak은
9번이나 영국에 초청(招請)을 받아 영국을 방문(訪問)하였고,
이 후에 그는<교향곡 제8번><레퀴엠>등을 위촉(委囑)받아 작곡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은 Dvorak에게 명예 음악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는 전통(傳統)을 중시(重視)하는 영국인들이 Dvorak에 대한
새로운 인식(認識)과 작곡가로서의 역량(力量)을 크게 인정(認定)한 결과이다.
이렇게 Dvorak의 연주 여행(演奏 旅行)은 그의 창작(創作)에 활동에
큰 영향(影響)을 미쳤고 세계적인 작곡가로서의
전성기(全盛期)를 맞아 궁핍(窮乏)하고 불행(不幸)했던
그의 생은 일대 전기(轉機)를 맞게 되었고,
2남 4녀의 자녀와 순진(純眞)하고 착한 여인이라고
Tchaikovsky에게 칭찬 받은 아름답고 현명한 아내의 내조(內助)로
안락하고 행복(幸福)한 생활 속에 작곡에 전념(專念)했다.
Dvorak은 Brahms, Tchaikovsky와 친숙한 사이였고
어렵게 시작한 그의 인생(人生)은 평탄(平坦)하지 않았으나
Dvorak은 예술가(藝術家)로서, 성실(誠實)한 가장으로
윤리적(倫理的)이고 도덕적(道德的)이었다.
그는 국민주의(國民主義) 음악 운동의 선구자(先驅者)로
Smetana와 함께 세계적(世界的)으로 이름을 떨쳤고,
어려움 속에서도 미래(未來)에 대한 소망(所望)으로
자연과 조국(祖國)을 향한 뜨거운 열정(熱情)은 그의 작품으로 표출되었으며
신을 향한 경건(敬虔)한 신앙심(信仰心)은 Dvorak작품의 근본이 되었다.
서정적(抒情的)이며 민족적(民族的)인 그의 음악은
향토적(鄕土的)인 선율(旋律)과 화성(和聲)과 리듬이 소박(素朴)하고 신선하며,
균형(均衡)잡힌 고전적(古典的) 구성과 풍부(豊富)함이 내재되어 있다.
1892년 신세계(新世界) 미국으로부터 초빙을 받은 Dvorak이
뉴욕에 도착했을 때 300명의 합창단과 80명의
Orchestra 의 열렬한 환영(歡迎)을 받았으며
이 때 Dvorak은 최후의 교향곡(交響曲)이며 최대의 명작(名作)인
<교향곡 제9번.From the New World.Op.95>과
<현악4중주 제12번 F장조 America>
<첼로협주곡 b단조 op.104>등을 작곡(作曲)했다.
1893년 12월 Dvorak의<Symphony No.9.From the New World>이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의 연주(演奏)로 초연(初演)했고,
미국을 신세계(新世界)로 지칭(指稱)하는 이 교향곡은
청중(聽衆)들의 애국심(愛國心)을 고취(鼓吹)시키기에 충분했으며
또한 아름답고 화려(華麗)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Dvorak은 이 <교향곡 9번>으로 미국의 흑인 영가(Negro Spiritual)와
원주민(인디언)의 음악(音樂)을 아름답게 그리고
화려(華麗)하게 만들었고, 작품을 통해 흐르는 강한 이미지는
그의 진지(眞摯)한 인간성이 내재(內在)되어 있다.
또한 미국적인 것과 Bohemia적인 것이 혼재(混在)되어있고
타향(他鄕)에서의 향수(鄕愁)어린 테마를 전개(展開)하며
지난 세계의 음악을 새로운 세계로 연계(連繫)시키는
Dvorak의 불후(不朽)의 명작으로 강한 감동(感動)어린 작품이다.
그는 오르간 학교에서 수학(修學)한 2년을 제외(除外)하고
가정의 어려움 속에서 독학(獨學)으로
음악가로서의 자질(資質)과 실력을 쌓은
그의 작품은 체코(Czech) 민족의 애환(哀歡)을 묘사한다.
또한 표제음악(標題音樂)의 전성기에
절대 음악(絶對音樂)을 많이 작곡한 그는
Beethoven, Schubert와 Wagner, Liszt의 연구에 열중하였고
Brahms의 영향(影響)을 받은 그의 작곡 활동은
귀국(歸國)한 후 자연과 더불어 교향시(交響詩)와 Opera만을 작곡하였다.
이때 애국적(愛國的)인 내용인 국민주의적 색채(色彩)가 짙은
서곡<후스교도.Husitska Op.67>과 <교향곡 제7번 d단조>를 작곡했으며
젊은 시절 그는 Verdi의 음악을 흠모(欽慕)하며
체코(Czech)의 Verdi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고
1900년 야심의 오페라 <루살카. Rusalka.Op.114>를 작곡하여
오페라 작곡가(作曲家)로도 성공을 거둔다.
인간과 물의 요정(妖精)과의 비련(悲戀)을 묘사한 오페라<루살카>는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와 체코 오페라의 금자탑을 이루었고
60세에 교향시 <영웅의 노래. Pisen Bohatyrska.Op.111>와
환상적(幻想的)인 오페라 <아르미다.Armida. Op.115>를 작곡했으며,
60회 생일을 맞아 Dvorak은 오스트리아의 종신(終身)
상원의원(上院議員)으로 귀족(貴族)이 되었고
프라하 음악원의 예술학원장(藝術學院長)에 선임(選任)되었다.
Dvorak 생의 노년에 찾아온 영광(榮光)도 잠시
신장병(腎臟病)과 방광염(膀胱炎)으로 투병(鬪病)하다가
1904년 5월 1일 뇌일혈(腦溢血)로 63세의 일기로 타계(他界)했다.
그의 일생은 음악가로도 성공(成功)했고, 노년에 존경(尊敬)받으며
영광(榮光)을 누렸던 성공한 인생으로 그의 장례(葬禮)는
국장(國葬)으로 온 체코(Czech) 국민(國民)의 슬픔과 애통(哀痛) 속에 자신이
작곡한 진혼곡(鎭魂曲)이 연주(演奏)되며 장엄(莊嚴)하게 치러졌다.
주요 작품으로
오페라<루살카>와 교향곡 9곡. 교향시 5곡.
현악4중주곡과 32곡의 실내악곡
관현악곡 <슬라브 춤곡집. Slovansketance 제1집 Op.46>과
<제2집 Op.72>등 20여곡
협주곡<피아노 협주곡 G단조 op.33>
<바이올린협주곡 a단조 op.53><첼로협주곡 B단조 op.104>등
협주곡 7곡. 피아노 곡 연탄곡 <스코틀랜드춤곡집 op.41>과
<보헤미아의 숲에서 op.68>. 피아노 독주곡 8곡.
<유모레스크 Humoresky.op.101>등 10여편.
교회음악<스타바트마테르.op.58>. <미사곡 op.86>
<레퀴엠 op.89><테 데움 op.103>
출세작 <빌라 호라의 후계자들>과 다수의 합창곡과 무반주 합창곡.
2중창곡 <모라바 이중창 op.26>외 다수의 이중창곡.
<집시의 노래.Gypsy Melodies」op.55>
<황혼의 노래.Evening Songs」op.3>등 다수의 예술성 높은 가곡.
대기 만성(大器晩成). 드보르작은 음악의 장르를 초월하여
206곡의 불후(不朽)의 명곡(名曲)을 작곡했다.
*
“나는 Cello로 이렇게 협주곡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이 말은
동시대(1800년대 중 후반)를 Dvorak과 함께
음악으로 세계를 풍미(風靡)하며 주옥(珠玉)같은 실내악을 작곡했던
Brahms가 Dvorak의 첼로 협주곡 악보(樂譜)를 보고 한 말로 전해지며,
이 Cello 협주곡을
<Ochestra와 첼로를 위한 교향적 협주곡>이라고도 칭하며
카잘스(Pablo Casals)는 이 곡을
“영웅의 생애를 담은 한편의 드라마”라고 했다
Bohemia에서 태어나 Bohemia를 사랑했던 Dvorak,
Bohemia의 시와 음악과 문화를
중흥(中興)시킬 소명(召命)을 가졌던 Dvorak.
그는 미국에서 <신세계로 부터Symphony No.9 E minor Op.95 >와
<현악 4중주>와 <아메리카>,
<Cello협주곡 B단조 op.104>를 완성하고 귀국(歸國)했으며,
Dvorak이 미국에서 왕성(旺盛)한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時期)의
마지막 작품인 이 Cello 협주곡은 Cello음악의 황제(皇帝)로 불린다.
궁핍(窮乏)하게 어린 시절을 지낸 Dvorak은
미국생활의 영화(榮華)를 적응(適應)하지 못하고 향수(鄕愁)에 젖어있을 때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인 조세피나(妻兄)의 우환(憂患)소식을 듣고
이 소식(消息)이 작곡 동기(動機)로 전해지며
1894년 말부터 작곡에 착수 1895년 초에 완성하여
고향 출신 cellist 하누시 비안 (Hanus Wihan)에게 헌정(獻呈)되었다.
이 Cello 협주곡은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의 초청(招請)으로
1896년 영국의 cellist 레오스턴(Leo Stern, 1862~1904)이 연주,
Dvorak의 지휘(指揮)로 초연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작곡 후 수정작업(修正作業)을 하며
조세피나가 타계(他界)한 소식(消息)을 듣고
그녀가 좋아하던 자신의 노래(내 영혼이라도,,,)를 삽입(揷入)하였고
미국 작곡가 허버트(Victor Herbert) Cello협주곡의
효과적 고음 처리법(高音處理法)에 매료(魅了)되어
"피날레의 종결은 마치 숨과 같고,
1, 2악장을 회고하며 솔로가 pianissimo로 소진,
다시 음향은 커지고 마지막 소절은 투티로 연주되어
폭풍우 같은 종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이를 포기할 수 없다. “라고 했다.
이 Cello 협주곡은 독창적(獨創的)이며 규모가 커서
다른 Cello 협주곡이 따르지 못하나,
Schumann, Haydn, Saint Saens의 Cello 협주곡과 같이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認定)받고 있으며
<신세계로부터 Symphony No.9 E minor Op.95 >와 같이
흑인(黑人) 영가(詠歌)와 미국의 민속음악(民俗音樂)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요(民謠)가 도입(導入)되었고
Bohemia 민속음악이 신비(神秘)하게 융화(融和)되었다.
*
Cello Concerto in B minor, Op.104
Jacqueline Du Pre, Cello
Swedish Radio Symphony Orchestra
Sergiu Celibidache, conductor
제1악장 Allegro
첼로가 밝고 경쾌(輕快)하게 주제를 연주하며
이국적(異國的)인 제1주제를 지나 제2주제가 목가(牧歌)풍으로 연주되고,
Sonata 형식의 관현악(管絃樂)연주로 긴 제시부가 이어진다.
즉흥적(卽興的)일 만큼 Recitativo는 서사적(敍事的)으로 연주된다.
카잘스(Pablo Casals)는 이 곡을
“영웅(英雄)의 생애(生涯)를 담은 한편의 Drama” 라고 했다.
발전부는 1주제로 전개되는데 polyphony적이며
새로운 대 선율(大 旋律)을 첼로가 연주하며
재현부는 제1주제를 암시(暗示)하는 Coda를 연주한다.
제2악장 Adagio ma non troppo
제3악장 Allegro moderato
“英雄의 생애를 담은 한편의 Drama 중 영웅의 죽음
이라고 한 부분에 도달(到達)한다.
tremolo로 연주하는 팀파니의 시작으로 투티,
급하게 fortissimo로 연주(演奏)되며 금관악기의 연주로
대서사시(大敍事詩)의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
Rostropovich. Cello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Carlo Maria Giulini. conductor
Dvorak Cello Concerto : Rostropovich Part 1
Dvorak Cello Concerto : Rostropovich Part 2
Dvorak Cello Concerto : Rostropovich Part 3
Dvorak Cello Concerto : Rostropovich Part 4
Dvorak Cello Concerto : Rostropovich Part 5
Dvorak Cello Concerto : Rostropovich Part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