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간은 빨리도 지나간다.
이른 새벽에 나왔건만 한 곳이라도 더 둘러 볼려고
열심히 다니며 셔트를 누르다 보니 금방 출근 시간이 가까워 온다.
동지가 가까워 오니 낮이 짧아진 탓이다.
여름의 하루는 밤이 짧고
낮이 길어 지루하리 만큼 긴 하루가 된다.
동지와 하지때 낮의 길이 차이는 약 일곱 시간은 되는 것 같다.


연밭가의 나무들은 벌써 나목으로 변해
물속에 그림자 드리우고 바람따라 일렁이고 있다.



아조타 농원의 이덕선생님댁의 뒷산이다.
아침 추위가 나무위로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에 포근해 보인다.
시간이 많으면 인사라도 드리고 가고 싶으나
또 다음으로 미루고 그냥 지나친다. 다음에 뵐때 야단맞을까 겁이난다.





언제 들러도 아늑하고 편안해 보이는 곳이다.
나는 언제나 이런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 볼거나.
머지 않아 겨울철새 무리들 물위로 날아와서 노닐 것이다.


능내리의 가을이 되면 항상 찾아 뵙고 싶은 분이 또 있다.
몇해 전에 석굴을 가져가서
함께 마당에 불을 피워 놓고 굴을 구워먹은 한선생님 댁이다.
집뒤켠의 언덕에 돌감나무 몇그루가 있고
매년 아주 탐스런 감이 가지가 휘어지게 많이 달린다.
오늘 오랜만에 찾아 뵈어도 잊지도 않고
나의 안부를 물으시며 반겨주시니 기분이 좋다.




정자 뒤에 있는 감나무가 특히 많은 감을 달고 있다.
하지만 많이 달리니 탐스럽긴 하다만
무서리가 내리기 전까지는 떫을 것 같은 예감이 들고
알이 작으니 먹을 게 적고 씨앗이 가득하고 맛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작은 고염도 그러하고 돌감도 씨앗은 빈틈도 없이 가득채우고 있다.




알이 적게 달려도 내 고향의 감만큼은 실하지 못하지만 이뿌다.



까치 녀석들이 감을 탐내고 오간다.








능내리의 조홍감은 빛이 좋으니
감의 색감도 그만이고 먹는 것 보단 보는 맛이 더욱 좋다.
내가 찍은 감의 고운 색을 보면서 무엇이 실제 감의 색인지 헷갈린다.
감의 색이 빛의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이니
어떤 색이 실제의 감색인지 정의를 내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여긴다.
아주 심한 역광일때는 검은색, 순광일때는 주황색.
측광일때는 주홍색으로 보이며 빛의 각도에 모두 다르게 보이며
시간이 지나 홍시가 된다면 또 판이하게 들리는 색으로 변하고 말게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마음의 상태를
"이것이 실체다."라고 말하는 것도 불가능한 게 아닌가한다.
며칠전에 티비에서 대원군과 고종의 관계를
여러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담론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시인. 역사학자, 영화제작자,등등...
여러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며느리와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마음상태.
당시의 국제적인 문제와 나라를 어떻게 지켜내야하는가를 얘기하는 장면이었다.
역사를 추리해서 재해석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격동기를 살아낸 그들의 착잡한 마음 상태를 직업에 따라
각자의 생각이 판이하게 틀리게 표현하는 점도 재미를 더하게 했었다.
하지만 고종도 대원군의 실체도 사라졌고
당백전까지 찍어가며 창건한 경복궁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러져 갈 것이며 실체도 사라질 것이다.
이천년을 넘게 견딘 로마의 건축물도
오천년을 버티어온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머지않아 그 실체가 소멸할 것이고...
족보에 씌여진 조상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며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모습도 다음 세대에는 뇌리에서 소멸될 것이고...
변덕이 심한 내 마음의 상태를 나도 모르는데
우찌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실제 우리의 눈에 보이는 사물의 색도 빛에 따라 틀리게 보이는데...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마음의 실체는 없는 것 같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며 변해가는 과정이 아닌가 한다.
나는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
나의 실체도 없고 불과 십년만 지나도
걸음도 어거정 거리며 걷는 노인네로 변해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우찌 살아갈꺼나...
저절로 소멸하고 말진데 이리 고심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네.




날이 맑으니 빛이 강열하고 산의 굴곡에 따라 명암이 다르게 보인다.
이런 아침을 보내고 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