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하늘이 맑아야 하는데...
토요일날 비가 왔으니 맑아질리가 없겠으나
행여 새벽에 창밖을 보니 역시 뿌연 구름만 가득하다.
안개라도 짙으면 몽환적이 풍경이 펼처질까 하고 집을 나섰다.
새벽을 가르는 맛도 좋긴 하다만 오늘은 안개도 없다.
두물머리가 좋을까 미사리가 좋을까 하다가
되도록이면 진사분들이 많지 않은 미사리 쪽으로...



맑은 날씨라면 빛이 좋을텐데 어둡다.
버드나무는 아직도 한여름같이 푸르나
억새는 하얗게 피어나 거센 바람에 흩날리고
메타세콰이어 나무에 붉은 단풍이 곱게 들었다.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 속으로 쌩쌩 들어가니 엄청 춥다.
무서리 내렸고 가을이 겨우 깊어지는가 싶었는데 벌써 겨울이 왔나보다.
이곳은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고 있고
멀지 않은 곳에서 겨울 철새인 고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고니가 날아온 걸 보니 겨울이 온 게 맞다.




올해 처음으로 고니를 찍으러 망원렌즈를 장착하고
내 키보다 높게 자란 풀밭을 헤치며 살살 강가로 가니
고니는 벌써 눈치를 채고 하늘로 날아 올라 멀리 사라지고 있다.
아쉽고 안타깝고 고니들이 야속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거센 바람이 억새꽃을 마구 흔들고 희롱하며 지나가니
억새는 바람장단에 맞추어 신이나서 춤을 추고 있으나 나는 몹시 촙다.
벌써 따뜻한 방의 아랫목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왔다.




매서운 강바람만 쌩쌩 불고 빛이 없으니 재미가 없다.




갑자기 한쪽 하늘이 열리며 빛이 쏟아져 내리니
이 무슨 변고 인지 모르겠고 내 바라던 요행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강열한 빛이 든 버드나무는
봄에 한창 녹음이 짙어가는 것 같이 보이고
억새꽃이 피어 있으니 가을임을 알리고 있다.
해는 가만히 있고 구름이 움직이며
내 마음에 들게 빛을 조종하고 있으며
오늘 빛의 향연을 보았으니 구름이 고맙다.
금방 빛이 사라질까 마음은 급하고
버드나무와 억새의 새하얀 모습도 찍어야 하고
몸이 하나 밖에 없는 게 아쉽고 허둥대다 보니 추위도 잊었다.






바람에 억새꽃 휘날리는 모습만
가만히 보고 있어도 신나고 재미있다.




구름이 금방 빛을 건너편으로 보내고 다시 어두워지니 아쉽다.
버드나무의 품종도 여러가지다.
버들강아지가 탐스럽게 열리는
갯버들이나 산버들과 왕버들같은 종류는
일찍 잎이 시들어 단풍도 들지 않고 하얗게 변해 있었고
키가 크고 가지가 늘어진 수양버들은 아직까지도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며 바뀌어 가는
사이의 계절도 아름웠다고 기억될 것 같은 아침이다.
빛이 잠시 들었다 사라지듯이
세월도 금방 지나고 우리 인생도 순식간에 지나고 말 것 같다.
모든 것이 순간이고 눈 깜박할 사이가 아닌가 한다.
옛날에 읽은 석가의 말씀이 생각난다.
부처가 제자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예....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너는 도를 깨우칠려면 아직도 멀었다 하고는 다른 제자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예...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너도 도를 깨우칠려면 아직도 멀었다 하는데 다름 제자 답을 했다.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는 그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그렇다. 생과 사는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
너야말로 도를 이루었도다. 우리의 삶은 그 찰나에 있는 것이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벽제 화장장으로 갔었다.
며친전까지 병실에 계셨고
온기가 흐르고 가는 숨을 몰아 쉬고 있는 내 어머니였다.
순식간에 한줌의 재가 되어
유골함에 담겨져 나오는 어머니는
흙이었고 자연이었고 어머니가 아니었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픈 참담함이었다.
사람의 목숨은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숨을 쉬고 있으니 살아 있음이 틀림없다.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