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일 일요일은 서울 시내가 온통 안개로 뒤덥힌 날이었다.
두물머리쪽의 안개는 더욱 짙고
강가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아련하게 보일 것 같아
급히 차를 몰아 그곳으로 달렸더니 의외로 서울 보다 짙지 않아 실망이다.




논밭과 갈대로 뒤덥혔던 땅을 시에서 공원으로 꾸민 곳이다.
산책할 수 있는 꼬불길을 잘 다듬어 놓고
길가에는 꽃과 풀을 심어 화단을 꾸미는 중이며
내년 봄에는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한 나무를 두고 내가 위치를 바꾸면 나무의 위치도 바뀌게 된다.
몸의 위치만 바꾸는 게 아니라
마음의 위치를 바꾸어 상대를 바라보면
불화로 얼룩진 가정도 행복해 질 것 같을 때가 많다.
남편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고
바가지만 긁어대는 아내들이 있는가 하면
아내의 입장을 전혀 헤아릴줄 모르는 남편들이 많고
항상 불만과 증오에 가득차 있는 부부가 많은 걸 보면...
이곳에다 글로만 써서 행복한 척
가장하는 이중삼중 인격을 가진 사람도 있으며...

같은 색의 옷을 입고 한방향을 주시하며
산책하는 이 부부는 마음도 한 곳을 바라보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정답게 살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녹색 풀밭이었을 때는 곤충이 넘처났는데
누렇게 변했고 가끔씩 오목눈이가 떼로 몰려와 풀씨를 찾는다.




옅은 안개 때문에 산의 뒤모습 어렴풋하고
어부는 배를 은행나무에 묶어 놓고 어디로 갔는지
배만 홀로 남아 그림자를 물속에 드리우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요일만 되면 언제나 사람들로 넘처나고
옮겨 심어 놓은 수형좋은 느티나무에 단풍이 들었다.
다리가 없던 시절에 겨울이 되면
땔감으로 사용할 나뭇짐을 실은 우마차가
얼음위를 건너 다녔다고 하고 궁을 지을려고 강원도에서
잘라온 목재를 땟목으로 만들어 서울로 향하며 이곳에서 쉬어 갔다고 한다.
보름에 걸처 물길따라 서울까지 와야하니
뗏목위에다 작은 움막같은 집도 지어 생활 도구를 싣고
밥까지 해 먹으며 이곳에 도착하면 무사히 서울에 당도 했다는
자부심에 차서 주막에서 곡차까지 곁드린 제대로 된 식사를 했을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아주 낭만적인 레프팅이란
놀이였을테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힘든 노동이었을 것이다.
그 레프팅이란 놀이가
옛날의 향수를 찾아 돈을 들여가며
즐기고 몰두하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이해가 간다.




오래된 느티나무는 물위에 떠있는
뗏목의 행열과 뗏목을 끌고와서 주막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상사를 내려다 보았을 것이며
한나절 거리인 마포나루에 닿으면 뗏목꾼의 일이 끝났을 것이고
다시 몇푼의 품삯을 받아 뗏목 위에 실었던 가재도구를 챙겨 메고
처자식이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대단히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을 게고
사람들은 이런 가운데서도 즐거움을 찾는다.
정선 아리랑의 한대목을 살펴보면...
"물결은 출러덩 뱃머리는 울러덩
그대 당신은 어데로 갈라고 이 배에 올랐나.
우리집의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다녀가셨나."
전산옥 아리랑은...
"산옥이 팔은 객주집 베개요.
붉은애 입술은 놀이터 술잔이네
산에 올라 옥을 캐니 이름이 좋아 산옥이냐.
술상머리 부르기 좋아 산옥이로구나.
천질에 만질에 떼 품팔아서
술집갈보 치마 밑으로 다 들어가고 말았네."
처자식을 뒤로하고 목숨을 걸고
뗏목을 타고 왔지만 주막집 샥시에게 반해서
돈을 모두 날리고 아픈 가슴을 안고 돌아가야만 하는
당시 떼목꾼들의 인생사가 훤히 보이는 아리랑이다.
두물머리에는 이보다 더욱 많은 희노애락사를 품고 있는 곳일게다.


길가에는 조약돌에다 자신의 염원을
담은 글을 써놓은 돌을 깔아 놓아 운치를 더한다.


삼층으로 지은 찻집의 빨간 파라솔이 이뿌고
가을이 깊어가니 노란 은행잎이 벤치를 뒤덥었다.
두물머리 한바뀌 돌고나니
몹시 춥고 으스스 한 게 아무래도 몸살이 날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