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풀어내야 한다.   13-10-31
글쓴이 고태환   1,912 hit
 
보름만에 맞는 정기 휴무일인데
비가 온다는 뉴스를 접하니 영 섭섭하고
새벽에 일어나 하늘부터 살펴보니 맑지가 못하니 맥도 빠지고...

며칠전에 잘못 먹은 곡차 덕분에 아직 몸도 시원치가 않다.

느긋하게 누워 있으니 볼록배 아줌마의 눈이 이상하다.
휴무일을 맞았는데 왜 새벽에 빨리 도망가지 않는냐는 눈치다.

여덟시 가까이 되어서야 간단하게 챙겨먹고
차에 오니 비 내린 흔적이 있었으며 하늘이 개이는 것 같다.

그래도 야외를 달리니 가슴이 시원하다.

아마 지금쯤이면 남이섬에는
단풍과인파가 넘처나리라 여겨진다.
이번에는 두물머리에 들리지 않고 곧장 춘천 방향으로...




























청평댐까지 오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해가 나기 시작한다.

다섯시 쯤에 나왔다면 두물머리의
멋진 안개도 보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지만
이미 시간은 지났으니 후회한들 무엇하랴만 아쉬운건 아쉬운거다.

청평댐에서 강변으로 접어 들었다.






































작년에 이집의 감나무에는 감이 너무 많이 달려서
가지가 부러질듯 했는데 올해는 몇개 달리지 않았고
은행알이 잘긴 하지만 먹을만한데 물속에 떨어진 게
그대로 방치되었고 이것도 물을 오염시키는 게 아니지 모르겠다.

먹거리가 흔해지니 이젠 아까운 게 없어졌다.
















































평일 아침이니 차가 없고 한적해서 좋다.

깍아지른 절벽 밑의 길이 위태롭고
건너편에 있는 산과 강물이 오랫동안 함께하니 
같은 색이 되었고 산과 물은 언제나 침묵으로 일관하며
정적에 쌓여 있고 햇볕이 강의 잔물결에 반사되어 반짝이니 
마치 강물 위에 새하얀 은가루 한줌을 흩뿌려 놓은 듯이 보인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으며
조급함도 없고 언제나 순리를 따르나
내 마음만 스스로 바빠 하릴없이 허둥댄다.



























작년에는 대기도 맑고 단풍이 고왔었다.

내가 너무 이르게 찾아와서
단풍이 설익었다 투덜되니 이도 참 어리석네.















































굽이 굽이 돌아가는 길옆의
단풍이 아름답다만 빛이 강열하지 않으니 곱지가 않다.

강 건너편의 산등성이에 용이 굽이치고
차츰 히뿌연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하니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
















































항상 시끄러운[?] 음악속에서 살다가
이런 강가의 고요함을 접하면 또 다른 자연의 음악에 몰입하게 된다.

풀벌레 소리 작은 물살소리
간혹 하늘을 나는 직박구리의 날갯짓소리들이 
고요를 깨우면 그 어떤 음악보다 장엄한 연주같이 들린다.
















































밤을 지새며 침묵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조사의 가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먹이를 찾는
물고기의 꼬리 지느러미가 물풀 사이를 가르는 소리도 들린다.


















































풀의 반영이 정적의 소리에
물속에서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춘다.

소리 없음에 소리가 더욱 크게 울린다.

























































깊어가는 가을의 정적 음악에
모두들 귀를 기울이고 초목과 벌레와 사람이 고요를 즐기고 있다.
























































온 산하의 자연이 원색의 무대가 되었고
안갯속 은은한 태양 조명아래 웅장한 가을 환상교향곡이 울려퍼진다.

그 웅대한 음악은 너무 조용하지만
모든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연주를 하니
몸이 가벼워지고 귀가 황홀하고 눈이 행복한 아침이다.

이런 무위의 자연을 즐길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집착과 원한은 저절로 소멸해 버리고 말 것 같다.

집착과 원한을 우리같이 많이 안고 살아가는 민족도 드물 것 같다.

한곳에 모여 사는 농경민족이었으니
항상 얼굴을 마주보며 살아가야 하고
그중에서도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집착이 있었고
좁은 테두리안에서 경쟁해야 하니 작은 원한이 쌓여가고
이것이 점점 메아리가 되어 확대되어 싸움으로 이어지고
종래에는 승패를 갈라야하고 지는 자가 있으면 원한으로 남게된다.

그런 원한을 안고서도 좁은 곳에서
또 다시 서로 얼굴을 맞대고 농사를 지으며
품앗이를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농촌이다.

유목민들은 넓은 면적을 활개치며 다니니
사람이 귀하고 귀한 사람이 서로 만나면 반거울 것이다.

간혹 이들이 원한을 가졌다하면
어느 한쪽은 곧 피비린내나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민족은 원한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속으로 속으로만 삭여 가면서
살았지 죽음으로 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 눔의 원한[怨恨]이 뭔지? 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원[怨]은 원수를 갚다의 원이며
한[恨]은 한을 풀다의 한이 아닐까 한다.

원수를 갚는 건 죽이는 것이고
한은 자신의 마음속에 내재된 상대에 대한
원을 풀어내며 용서해야 하는 것이 한풀이라는 것 같다.

언제나 한을 속으로만 삮여 낼려니
누구나 한가지 이상의 한을 안고 살아갔을 것이며
평생에 풀지 못한 한을 안고 죽었다면 누군가는 그 못다푼
한을 풀어 주는 것이 망자에 대한 예의였고 한많은 민족이 된 것이다.

진도의 씻김굿이나 넋두리 춤이나 한풀이 춤이나
모두 한을 풀지 못하고간 원혼이 저승에 가지 못했다고
구천을 헤멘다고 여겨지면 망자를 영혼을 불러다 한을 풀어주었던 것이다.

가정안에서 시어머니에 대한 한이 쌓여가고
가정 밖에서는 탐관오리들에 대한 한이 생겼을 것이고
나라 밖에서는 왜구나 떼놈들에게 많은 한이 쌓여갔을 것이다.

유목민 같이 멀리 다녀보지 못했으니
마을을 떠나 멀리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항상 마주하는 얼굴에 원과 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우리 민족이 선하고 악한 것이 아니라
생활의 구조 자체가 멀리 다녀 보지 않았으니
일본이나 중국을 넘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을 것이며
항상 밖에서 당하고 안에서 동족을 향해 풀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였으리라...

그렇게 수도 없이 당하고도 안으로만 삮이며
한을 풀어가며 용서하며 살아가야하는 한많은 민족이 된 것이 아닐까?

과거 중국과 일본에 당한 한도 용서하고
왜구 수장 아베 시키의 몰염치도 잊지는 말되 용서하고...


이제는 한을 풀어내듯이 모든 걸 풀어내야 한다.

얼킨 실타레도 풀고 
손바닥만한 작은 나라니 지방색도 풀고
코가 막히면 코도 시원하게 풀어내 버리고
마음이나 손이라도 심심하면 심심한 것 까지도 심심풀이로 풀어내고...

우리는 뭣이든 풀어내야만 살아갈 수가 있다.

이제 세상이 넓은 것도 깨우첬으니
원과 한도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모든 게 저절로 풀어지게 항상 신나는 환상곡만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막힌 곳은 뭐이든지 풀어내야 한다.

고요한 강가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뭐든지 풀어진다.



그런데 우찌하여 꼭 닫혀진
내 마음만은 풀어지지가 않느메뇨.




 


레너드 13-11-01 09:31
 
자연을 가까히 하시닌 시인이 되신듯 합니다.
     
고태환 13-11-01 11:49
 
워낙 아둔하여 아직도 시가 뭔지 모릅니다.

누구나 이런 멋진 자연을 보면 크게 느끼는 바가 많겠지요.

하지만 표현이 안되니 참으로 갑갑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