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저수지를 뒤로하고 고향으로 향한다.
친구의 고급차는 잘 닦여진 길을
소음도 없이 조용하게 미끄러지듯이 달리지만
고속도로가의 멋진 풍경이 마구 지나치고 차를 세우라 일러도
이 마음씨 고약한 나뿐 운전수 친구는 사고가 난다며 세울 생각을 않는다.
덩치가 나보다 커니 때릴 수도 없고
속이 답답하디만 얌전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안개가 남아있는 산야의 단풍이 빛과 어우러져
감탄사가 절로 나지만 차는 멈출줄을 모르니 속이탄다.


괴산에서 고향 상주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아 한시간여만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벼는 베어져서 허허벌판이 되었지만
아직도 몇몇곳에는 풍년이 들어 낱알이 고개를 숙인 벼가 남아있다.



안개가 모두 걷히고 따뜻해지니 등애가 날아와 식사를 하고...







곶감이 투명하게 잘도 말라간다.
곶감 만드는 일도 끝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제 온도를 잘 맞추어 말랑말랑하게 잘 건조를 시키면 된단다.
예전에는 곶감을 아주 단단하게 건조시켜
표면에 새하얀 분이 나도록해야 오래 보관 할 수가 있었지만
요즘은 어느 집이나 냉동실이 있으니 반건조하여 먹기에 편하게 해야 한단다.
곶감을 만드는 일도 온도 조절을 잘해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며 온도를 낮추어 대형선풍기를 쉴새없이 돌리고 있다.
건조장의 온도가 높으면 깍아서 걸어 놓은 감이
물러터져 홍시가 되어 밑으로 떨어져 낭패가 되고 만단다.
곶감도 맛있지만
씨가 없는 감을 사분의 일로 잘라서
말린 것을 먹어보니 너무 달고 좋았다.



시기가 늦게 도착했다.
대부분의 감을 따버려 탐스럽게 많이 달린 감나무를 찾기가 힘들었다.


감이 흔한 고장이니 홍시가 되어
떨어진 것을 보고도 줏어 먹는 사람들이 없어서 아깝다.
친구집 세곳을 돌며 이것저것 얻어 먹었더니
배가 꽉 차서 아까운 것을 봐도 입맛이 동하지 않는다.
감의 종류도 여러가지다.
애초에 떫은 맛이 없는 단단한 단감이 있고
홍시를 만들어 먹는 제일 큰 감은 대봉이라 하고
약간 납작하여 홍시나 반건시를 만드는 반시가 있고
곶감을 만드는 감은 둥시라하고 야산 아무곳에나 가지가 휘어지게
많이 달리고 무척 떫어서 서리가 내리고 나서야 먹을 수 있는 아주 작은 돌감이 있다.
예전에는 돌감도 좋은 먹거리였는데
이제는 처다보는 사람이 없어 새들의 먹이가 되고만다.
품종이 아무리 좋은 감의 씨앗을 심어도
야생에서 자라는 도토리만한 열매가 달리는
고염나무가 되어 나오는 게 참으로 이상하다.
이 고염나무가 어느정도 자라면 품종이 좋은
감나무의 가지를 잘라 접붙여서 감나무 묘목을 생산한다.


또 다른 친구집을 방문했다.
대규모 사과 농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밭떼기로 팔아넘겼다고 한다.
석회석 농약을 치니
사과나무와 과일리 하얗게 되었고
그 농약은 인체에는 무해하다 하며
잎이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아 당도가 엄청 높이진다고 한다.



따사로운 가을햇살에 사과의 당도가 점점 높아지겠다.




친구는 다른 친구의 과수원 가운데 심어진
모과나무에 가서 내 머리통 같이 크고 색깔도 곱고
향기가 그만인 모과를 제것인양 마구 따서 가져가란다.
못생긴 여자애보고 모과같이 못생겼다했는데 이 모과는 이뿌기만 하다.

이집저집 다니다 보니 여러가지 과일을 잔뜩 얻게 되었다.
이거야 말로 강제로 빼앗는 것 같고 친구들 얼굴 보기가 미안스럽다.
이 친구는 자신이 집에서 먹을려고 깨끗하게 잘 담근
감식초를 여러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라 두말이나 주었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큰 트럭을 가지고 올걸 크게
후회가 되고 이젠 승용차의 뒷자리까지 꽉차서 실을 자리가 없다.


친구집 뒤의 감나무는 친구의 마음같이 이뿌게 단풍이 들었다.
고향이 좋고 자주오고 싶은 건
어릴적 같이 놀던 허물 없는 친구가 있고
정이 듬뿍 담긴 선물까지 한아름씩 안겨주니
언제나 미소 가득한 얼굴로 반겨주니 더욱 좋다만
곡차 한잔 나눌 시간이 없이 바삐 올라와야 하니 너무 아쉬웠다.
이제 지옥같은 서울로 올라올 시간이다.
문경 쯤에 왔을까...
서울에서 모은행지점장으로 있던 친구가 명퇴를 하고
문경으로 귀농하여 과수원을 한다는 게 생각나 방향을 돌렸다.
이 친구가 어떤 집에서 어떤 방법으로 살아가며
나도 귀향을 하고 싶은데 좋은 모델이 되어줄지 궁금하기도 하다.





친구는 월악산과 주흘산 성주봉으로 둘러쌓인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아 한옥을 짓고 아름다운 부인과 둘이서 산혼 살림을 차렸다.
세 산이 모두 천미터가 넘는 악산이라하며
산에 올라보면 경치가 모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너무 부럽다.
이 집에 머슴이라도 써 달라하니 싫단다.



귀농을 한지 2년남짓 되었으니 아직은 초보 농사꾼이고
친구의 옆지기 애인이 차와 과일과 음료수를 잔뜩 차려왔고
대청마루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으니 얘기가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다.
아이들이 서울에 그대로 살고 있으니
부인께서 자주 다니며 찬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니 몹시 힘들 것 같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가고 차가 막힐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빨리 가야 된다며 일어서서 차에 오르니
무공해로 지은 사과니 맛이나 보라며 또 한박스를 실어준다.

처음 서울에 올때는 기차로 열두시간이나
걸려 다니던 길이 두시간 반이 조금넘게 걸려 집에 도착...
고향의 인심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정다운 얼굴을 대하고 정이 담긴 선물까지 잔뜩 얻어와서
미안스럽고 고맙고 언제나 이 웬수를 션하게 갚을 날이 있을라나...
친구들에게 서울에 오시면
꼭 들러서 같이 식사라도 하고 가라했지만
그러마 하고선 진짜로 찾아오는 친구들이 드물다.
잠깐 볼 일을 보고 다시 시골로 내려가기가 바쁘니 그럴게다.
시골에서 만나는 친구들마다
며칠 묵어 가라하지만 나도 바쁘니 연락도 하지 않고
잠시 들렀다가 얼굴만 보고 그냥 올라오니 이도 안타깝다.
이제 몇년후가 되어 두 놀부시키들 쫒아내고 나면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리라 믿고 팔도강산 유람이나 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가을도 끝나가고 이젠 추위가 닥치겠지.
아마 십년만 더 지나고 나면
기력이 떨어져 다니지도 못할텐데...
엊그제가 봄이었는데 벌써 한해가 또 저물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