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가 되면 친구가
내일 새벽에는 어디로 출사를 갈까 물어온다.
계절과 대략의 날씨를 감안하여
어디로 갔으면 좋겠다 하고 약속하지만
행여 내가 머릿속에 상상했던 풍경과 반대되는
나쁜 상황이 벌어질까 조바심이 나고 신경이 쓰인다.
되도록이면 풍광이 좋아 수많은 사람들이
찍어 올려 같은 사진이 널려 있는 곳은 피한다.
이날은 12월 25일 새벽이고
친구는 교회에 교인으로 등록은 했으나
경사스러운 크리스마스날인데도 교회에 가지 않고
나와 함께 강가에 나온 걸 보니 가짜 교인이 분명하다.
캬캬.. 나는 왜 남을 비꼬면 재미나는지 몰겠다.




하늘의 축복이 있었는지 강가 도로의 가로등이
물속에 투영되어 아름답고 하늘은 청명하고 맑다.
영하 10도나 되는 날이라는 게 실감이 나며
강가에 나오자마자 손발이 얼어터지는 것 같이 아리다.
그래도 풍경이 마음에 드니 기분만은 날아갈 것 같이 상쾌하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가운데
가로등 불빛도 고요와 정적을 깨뜨릴까
숨을 죽이며 우리를 주시하는 것 같이 보이고
친구와 들어서만 새벽 풍경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바삐 움직이고 행여 가로등이 꺼져 버릴까 조바심이 난다.
이런 풍경과 정적은 혼자서 오롯이 즐겨도 좋다.
둘이서 즐기는 맛도 더욱 좋은데
서너명만 되어도 예의 갖추어야 하고
부산스러워지며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니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 날은 크리스마스니 예수님도 함께 지켜 보았을 게다.




시간은 금방 지나가서 가로등이 꺼지니
밋밋한 풍경이 되고 말았고 갑자기 모든 사물이
깨어나서 시끄러워질 것 같이 느껴지며 불안감 마져든다.




어느 순간인들 지나간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경우가 있으랴.
하지만 제일 좋은 기록수단을 이용하여 기록해 두었으니...
이런 날에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모습이 있으니 이도 재미가 있다.




기온이 급강하 하면 대기의 온도는 빨리 식고
물은 천천히 식으니 물이 수증기로 변해서 올라와
이런 기하학적 문양을 만들어 내어 우리눈을 즐겁게 한다.




이런 걸 두고 서슬이 퍼렇다고 했던가.
사전을 찾아 보니 서슬은 "
언행 따위가 독이 올라 날카로운 기세"라고 한다.
나에게 이 서슬의 뜻은?
매우 추워서 견뎌내기가 어려운 서릿발과 같은
뜻으로 느껴지며 몸서리처지는 추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옆에 있는 친구는 "아이구 발사려 손시려"를
연발하면서도 이 자리를 떠나지를 못하고 연신 셔트를 눌러댄다.





손발이 아리게 시려웠지만
그래도 바람이 불지 않으니 견딜만했다.
이런 추위 때문에 생기는 육체적인 고통이야
따뜻한 곳에 들어가기만 하면 금방 사그라들고 만다.
손발이 아린 추위가 있었으니
따뜻함의 고마움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이럴때의 포근함은 행복하기 까지 하며
졸음까지 사르르 몰려와 기분좋게 잠시라도
단잠까지 자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하고 가뿐해진다.
하지만 오래도록 마음을 아리게 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무서운 말이 있고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무력감에 빠지게 하는 말이 있다.
바로 "당신이 누구요??" 라는 말이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서너달 전에
제일 사랑하고 아끼는 장남인 형님을 보고 하신 말씀이다.
형님의 얼굴을 빤히 살펴보며
생전 처음 보는 낮선 사람 대하듯이
"당신이 누기시요"하시는 모습과 약간은 무서워
하시며 떨리는 음성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 오른다.
이제는 예전의 온화한 얼굴의 어머니는
다시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서러움이 밀려왔었다.
그 무서운 말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슴이 아려오고 먹먹해지고 숨이 가빠진다.
친구와 함께 두번 곡차를 나눈 적이 있고
나보다 한살 아래라 하는데 선한 눈망울을 가졌고
다음에 만나면 꼭 다시 곡차를 함께 나누고 싶은 분이 있었다.
그후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분이 친구를 보고 "당신 누구시요"라고 하더란다.
마음이 아려오고 딱해서 못보겠다며
다시는 마주치지 았았으면 좋겠는다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가슴이 아려오고 철렁 내려앉으며
세상에 둘도 없는 무서운 말이라고 느껴진다.
지금 한창 나이며 해야할 일도 많을진데...
"당신 누구시요??"라고 말하기 전에
곱게 저 세상으로 가는 것도 행복할 것 같지만
그게 누구나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으니 안타깝다.
치매에 특효약이 곧 우리 기술로
개발된다 하더니 아직도 멀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