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잘 다듬어져 있으니 걷기에 좋고
기온이 올라 봄같이 영상 10도쯤 될 것 같다.
한겨울에 따스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오는데
두꺼운 방한복 윗도리를 입고 있으면 덥고 벗어 들고가면
약간 쌀쌀하고 한기가 들고 몸에 땀이 나고 거추장스럽다.
이러다가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눈보라가 치고 쎄찬 바람이 불어오는 변덕을 부리는 게
제주 날씨니 큰고생을 하지 않을려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녀야 한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 체온을 뺏어가니 제주만큼 추운 날씨도 없다.
오늘은 그런 변덕을 부리지 않을 것 같으니 안심을 하고...

길가에 귤한봉지가 단돈 천원이라 붙여놓았다.
웬지 사람을 믿어 주는 것 같아...
아니... 나를 믿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목이 마른데도 어제의 숙취 때문인지...
아니... 이런 것만도 아니고 너무 흔하니
별로 맛있을 것 같지 않게 느껴진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주인의 착한 마음을 옅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외돌개 바위가 보이고
절벽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외롭다하여 외돌개바위라 한단다.
이런 곳에는 반듯이 전설이 있다.
바닷가에 노인 부부가 살았었고
할아버지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 할머니가 매일같이 바닷가에
나와 앉아서 할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과...
고려의 마지막 충신인 최영장군이 제주에
머물고 있던 몽골군을 소탕할려고 할때마다
제주의 가파른 절벽이 가로막혀 상륙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이 바위에 장군의 옷을 입혀서
거대한 장군같이 보이게 하여 몽골군이
혼비백산하게 만들어 쫒아냈다는 전설도 전해지며
실제 장군바위라 불리기도 한다니... 믿거나 말거나...





실제로 내가 보기엔 전설이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작고 초라해 보인다.
위험하지 않게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들고
가까이에서 보면 크고 웅장하고 멋있게 보일 것 같다.
절벽 가까이에 그냥 불쑥 솟아
자리하고 있으니 전혀 외롭게 보이지 않는다.
절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조금 그럴듯해 보이겠지만...
세상의 모든 신화나 전설이란 것도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좀더 리얼하고 재미나게 꾸며 놓고
상상의 세계에 빠지게 해야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 들일 것 같다.
이 외돌개 전설은 조금 빈약한 감이 없지 않다.
일전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우리말의 어원에 대해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기쁘다 또는 기쁨"는 말의 어원은
좋은 기가 펑펑 뿜어져 나온다는 뜻이며...
"얼쑤 좋다." 의 어원은..
얼... 즉 마음과 정신이 신나게 쑥쑥 솟아오른다는 뜻이며..
"잘한다."라는 말의 어원은...
어린이 같이 무럭무럭 자란다는 뜻이라 한다.
"어리석다."는 아이같이 철없이 어리다는 뜻이며...
"나쁘다."의 어원은..
나 뿐이다. 즉 누구와 함께 있지 않고 나홀로 있으니
외롭다는 뜻이며 그게 제일 힘들고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환장[
換腸]하겠네"라는 말은
한자어지만 우리의 고유말 같이 친숙하게 들린다.
그 뜻은 창자가 확 뒤집어져
자신의 목에 감긴다는 뜻이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사전에는 아래와 같이 풀이해 놓았다.
"마음이나 행동 따위가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나 제정신이 아닌 듯한 상태로 됨."으로 풀이 되어 있다.
우리말의 어원도 무척 재미있고 그 의미가 깊다.
일본에서는 치매에 걸린 노인을 보고
"황홀경에 빠진 사람"이라고 미화해서 표현 한단다.
무엇이나 의미를 크게 부여해서
부각시켜 놓는 일본사람 특유의 말꾸미는 재주가 돋보인다.
독일 로렐라이강 가의 전설이 그렇고
프랑스의 세느강은 우리의 한강에는 비할바가 못되고
겨우 중랑천 비슷하다고 하며, 남이섬에서 찍은 영화 한편
덕분에 일본 중국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으며
그리스의 재미있는 신화도 모두 꾸며낸 신화가 아닌가.
우리말도 잘 다듬고 각색해서
그 뜻을 아름답게 꾸며 놓고 후대에 길이 전하면
그게 어원으로 굳어지게 되며 멋진 전설과 신화로 남게 되는 게 아닌가 한다.




한겨울인데도 노란 산국이 내려다 보고
수형좋은 곰솔이 내려다 보며 가까운 절벽에
파도 부딪히는 소리가 싱그러운데 어찌 외롭겠는가.
전혀 외롭지 않은 와돌개바위를 보았다.





외돌개 바위 위에는 넓은 평지가 있고 밭이 조성되어 있다.
벼랑끝에 서있는 소나무가 멋지고
밭에는 파란 배추가 자라며 멀리 한라산 정상에
하얀 눈이 보이니 히말라야 중턱 어디메쯤 와있는 것 같다.
이십여년 전에 아버지 산소앞에 있는
나무와 풀숲이 우거진 묵밭을 일구어 본적이 있다.
봄이 오면 주말농장을 해볼 꿈을 안고
겨울의 주말마다 톱과 괭이와 삽을 가지고
나무 한그루를 베어내고 뿌리를 캐내서 밭의
가장자리에 끌고가서 버리는데 하루종일 걸렸고
엄청 중노동이었고 허리가 휘어지는데 한평도 개간하지 못했다.
두달동안 죽을 고생을 한 것이 고작 두평이 될까한 넓이였다.
꾸준히 하면 된다는 일념하에
그일을 계속하자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고
우리의 산하 어디에나 흔한 계단식 논밭이 조상들의
어떠한 노동으로 일구어졌는지 몸으로 느끼고 알게 되었다.
어느날 산소 가까이에 사는
외사촌 동생이 보고는 쓸데없는 고생하지 말고
하루에 밭을 일구어 주겠다길래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했더니 포크레인이란 괴물이 와사 붕붕거리며
서너시간만에 450평 정도의 밭을 후딱 개간해 놓아 놀랐었다.
당시에는 영양가도 없는 음식으로 연명하며
허약한 몸으로 중노동을 할려니 골병이 들어
장수하지 못하고 단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제주 땅은 흙도 없고 모두가 돌로만 되어 있으니
이런 밭한쪽 개간할려면 어떤 고통을 감내했는지 짐작이 간다.
요즘은 너무 편하고 좋은 세상에 살아가면서도
가슴속에는 불만만 가득채워진 사회에 살고 있다.






상쾌한 바람이 볼을 간지르니 션하고
옥빛 바다와 거북이등껍질 소나무가 좋고
올렛길을 지나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빛도 환하고 맑아서 좋다.
무수히 미주치는 서울 사람들의
탐욕스러운 눈과 또는 우울한 눈과는 완연히 다르다.





길가의 어디에나 유채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사람의 눈에 띄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은
꽃을 따먹으며 걸으니 달착지근하고 그 향이 일품이다.

내가 꽃을 따서 먹는 게 이상한지
요 이뿐 꼬마숙녀가 빤히 처다보길래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너무 구엽고 뽀뽀를해주고 싶고 이뻐 죽겠다.
하지만 손가락 끝이라도 대거나 뽀뽀를 했다간
치한으로 물릴까 겁나는 사회가 되었으니 이뿌다는 말만 하고 말았다.
아마 다섯살정도로 보였는데
요나이 또래 녀석들을 손으로 처서
내동댕이친 보육원 교사의 마음속을 열어 보고 싶다.
두번에 걸처 마무리를 할려고 했으나
씰데없는 말이 자꾸만 길어지네.. 에구 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