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칼날 끝에 묻은 꿀물.   15-01-24
글쓴이 고태환   2,251 hit
 
창경궁도 여러번 와서 천천히 걸어보며
샅샅이 살펴보니 또 다른 모습이 무수히 많이 보인다.

사진 찍는 사람은 카메라 한대만 쥐어 주면
하루종일 심심해할 여유가 없이 색다른 모습을 찾아 다닌다.

오늘은 생을 마감해 가는 고목이 심상치 않게 보인다.

우리곁에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엔
반드시 그에 걸맞는 고목이 우뚝 서서 반겨준다. 

오랜 세월 모진 풍상을 격은 인고의 모습이
몸체에 선연히 남아 있는 게 경외감 마져 들게 하고
어머니 얼굴 같이 처다 보기만 해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창경궁에서 내가 본 굵고 오래된 고목은
버드나무와 느티나무 회화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다.

버드나무는 대부분이 수명을 다해 큰 둥치가
껍질이 벗겨지고 상해 있었으며 윗가지 몇가닥이
남아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머지 않아 베어질 위기에
몰려 있는 듯하고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는 아직도 잔가지를
무수히 뻗었고 튼튼해 보여서 여름이 되면 좋은 그늘을 드리워 줄 것이다.

족히 수백년 동안을 한자리에 머물며
청경궁의 역사와 함께 했으며 그 내막을 훤히 꿰고 있을 듯하다.

이날 최고의 어른이 된 고목나무가 내게 
궁궐안에서 일어난 많은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ㅋㅋㅋ

















"이보시게 애송이 젊은 양반...
자넨 생긴 건 멀쩡하건만 어찌하여 그렇게 염치도 없남요?

천수를 누리고 죽어가는 늙은이의 흉칙하고 
쭈그러진 모습을 함부로 찍어서 어디에 쓸려고 그러시는고?

내 몹시 창피하니 이젠 그만 두시면 어떠허겠는고?"

"창피하다니요? 천만에요.
전혀 그렇지가 않사옵고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거룩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아... 예... 제가 보기에도
이제 천수를 누리셨고 수명을 다해가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궁내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한자리에 버티고 서서 지켜 보았을테니
이 궁에서 일어난 소소하게 숨은 이야기가
거북이 등보다 거칠은 껍질 속에 켜켜이 쌓여
있을 것 같아서 경외감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몰래 보아온 여러가지 얘기를 들려 주셨으면 해서요."















"내가 보기에 자네는 아부에 능하지만
약간은 진정성이 있어 보여 얘기해 보겠네.

내 속이 모두 썩어 문드러져 텅비어 없어진 까닭은?

내가 한창 나이일때 그때가 선조 임진년이었지.
왜구들이 몰려와 경복궁을 불태우고는 이 몸에다 
칼싸움 연습을 한다고 마구 찔러서 상처가 덧나서
지금껏 고생을 해오다 이제 이 지경까지 이러렀다네.

이 한몸 늙어 죽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만
자네들의 잘못된 역사관 때문에 내 마음이 더욱 아프다네.

왜란이 일어났을때 선조란 작자가
지 한몸 살아남을 거라며 세자인 자식에게
나라의 전권을 넘겨주고서 모든 백성들도 버려두고
야밤에 급하게 의주까지 도망을 친 것도 가슴이 몹시 아프다네.
 
또한 경복궁의 화재 원인을 두고 말일세...

왕이 야비하게 도망을 친데 대해서 분노한
백성들이 왜구가 도착하기도 전에 불을 질러서
전소되었다고 기술한 학자들이 있고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단 말일세.

임란에 대한 왜구의 기록에 보면
경복궁을 함락시켜을때 경비병도 없었고
궁의 모든 문이 도둑 맞은 것 같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 보았더니 
그 웅대함이 진시황의 궁전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고 기술되어 있거든...

이게 당시 왜구의 장군이었던 오제키의 기록이라고...

경복궁을 불태운 건 분명 왜구들이
한짓이라는 걸 내가 똑똑히 지켜 보았었다네.

그때 무지렁이 백성들은 무자비한 왜구들의
조총과 칼에 무참히 살해되었으며 그 참상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지옥이 따로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착한 백성들은
경복궁을 살리겠다고 물동이에 물을 이고와서 퍼붓는 이가 많이 있었다고...

그 가엾은 백성들을 생각하면
내가 눈에서 피눈물이 날 지경이라네.

그리고 임란이 끝나고 선조란 작자가
돌아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이 뭔줄 아시나... 자네?

무지렁이 백성들과 의병들이 힘을 합처서
나라를 구했다고 하면 왕의 체면의 서지 않겠으니
만백성들이 다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염치도 없이
명나라의 이여송 군대가 나라를 구해주었다고 핑계를 대며
더욱 몸바처 사대에 힘써야 한다고 우기고 있었다고... 참으로 한심한 일이야.

명나라 군인들이 뭐가 급하고 아쉬워서
자신들의 목숨까지 바처가며 남의 나라를 구해주겠다고 힘을 써주겠나?

오히려 전국토를 휘젖고 다니며 
우리 백성들에게 지들이 은인인양 으시대며
양식을 수탈하고 심지어 부녀자까지 겁탈하고
실컨 잘 놀다가 돌아가 버린 걸 내눈으로 똑독히 보았지.

우리는 소를 가족이라 여기고 있지.
임란이 끝났을때 명나라 병사들이 막무가내로 뺏어가
대부분을 잡아먹어 버리니 소가 멸종 위기까지 몰렸었다고..

그리고 270여년간 방치되어 있다가
조선 말엽에 대원군이 나라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복원해 놓은 것을 또 일본이 강제로 한일 합병을 하고서
근정전을 제외하고 90% 이상을 허물고 멀리 옮겨 버려서
우리 역사와 얼을 통째로 없애 버릴려고 그곳에 총독부를 짓고
원형을 없엔 게 통탄스럽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프다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않은
망각의 민족이 한심스럽기도 하니
지발지발 자네부터라도 정신을 차리면 좋겠네."

















"생각해 보면 꼭 슬픈 사연만 있었던 건 아니네.

아주 예쁘고 구여운 아기 왕자와
궁녀들이 내 등뒤에 숨어서 숨바꼭질을 할때는
꼭꼭 숨겨주고 싶었을때도 있었지. 얼마나 재미났었는지 몰라.

수라간에서 일하던 풋내기 궁녀가
접시를 깨뜨리고 몹시 혼이나서 야밤에 나를 찾아와
나에게 기대어 펑펑 울때는 내 못난 몸도 누군가에게
기댈수 있는 언덕이 되어 위로가 되어 주었다는 자부심도 있었지."

















"거칠기 짝이 없는 몸뚱이지만
어떤 이들은 멋지다고 평을 해주니 기분이 좋더군.
사람들이 평하는 미에 대한 관점은 모두가 제각각인 모양이야."





































































"어이... 젊은 애송이 찍사양반...
나도 한마디만 해 볼까 하는데 들어 주실랑가?

내 몸이 멋지지 않은감. 멋진 팔다리와
아주 가느다란 가지가 얼마나 추상적이고 멋지냔 말일세...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사람들에게
션한 그늘이나 되어 주면서 이제까지 살아왔지?

나도 감정이 있으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주 무관심 하지는 않았지.

내가 느낀 건 말일세...

정치나 권력이라는 건 정말로 허무한 것이라는 것일세.

많은 인간들이 그런곳에 집착을 하는 건
'예리하고 시퍼런 칼날 끝에 묻은 꿀물'같은 것일세. 
한순간 자칫 잘못햇다가 순식간에 제 죽음을 자초하게 되지.

그 위험한 것에 집착을 해서 한치 앞을 못보고
제 죽는 걸 모르고 덤벼드는 부나비보다 더 위험한 게
정치와 권력이라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봐와서 말도 꺼내기 싫다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나를 위해 물러가 주었으면 좋겠소?
내 조상이 나를 이 자리에 떨어지게 한 게 원망스럽소. 

이제까지 못볼골을 너무나 많이 봐와서
내 속에 썩어 문드러져 몸뚱이가 이 지경이 된 걸
몹시 후회하며 다음 생이 있다면 모진 고문이 있다고 해도
저 먼곳의 바위산 틈새에 자라는 낙랑장송이 되고 싶다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피비린내가 낭자한 이런 곳은 정말로 싫다오.

빨리 내 앞에서 물러나 주시오... 제발 부탁하오..."



































































































"드뎌 자네가 나에게 까지 왔구만...
전자들에게 많은 얘기를 얻어 들었구만...
나도  저들과 같은 땅에서 함께 살아왔으니 
저들과 별다른 얘기도 없고 또 해줄 생각도 전혀 없구만.

단지 이 얘기를 해주고 싶네...
그저 무지렁같이 제일 평범한 범부로 살아가는 게
제일 행복하고 제일 멋지게 살아가는 것일 거구만...

그렇게 부모와 처자식 잘 건사하며
나에게 붙은 새들같이 평범하게 살아 가시게나...

다음부터 이곳을 지나갈 때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지 말고 그냥 모른 척 지나처 주시는 게 좋겠구만.


창경궁의 고목이 내게 들려준 얘기.

쥐뿔도 모르면서 또 아는 척을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