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할머니들의 굴캐는 사연.   15-01-29
글쓴이 고태환   2,710 hit
 
기가 좋을 때는 천방지축을 모르고 가고싶은 곳을
호기롭게 다녔지만 요즘은 긴축을 요하는 시기기도 하다.

1월 20일 날이 정기 휴무일이고 
집에 가만히 머물면 답답할 것 같아 새벽에 집을 나섰다.

나서긴 했지만 또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
이왕이면 가까운 쪽에 있는 호젖한 바다가
좋을 것 같고 예전에 몇번 가본 적이 있는 장봉도의
겨울 바다가 한적하고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장봉도는 영종도의 삼목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며 한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삼목항에 도착하자마자
지금 막 출발한다는 배가 기다리고 있어서
마음이 조급하여 안내인 보고 배를 좀 잡아 두라하니
염려하지 말고 표를 끊어 오라하여 대합실에 뛰어가서
빨리 표를 달라하니 나를 간첩이 아닌가 하는 이상한 눈으로
처다보며 주민등록증도 보여 달라하고 승선증을 끊어야 한단다.

배를 타고 겨우 십여분만에 도착하는
석모도를 갈 때도, 흑산도에 들어갈 때도 승선증이
있어야 하는 걸 경험했으면서도 왜 시내버스 타듯이
그냥 배에 오르면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이곳에 차를 가지고 갈려면 이 여객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요금도 섬을 나올때 내라고 하며
세월호 때문에 더욱 철저히 적고 검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행여 타지도 못하고 배가 출발해 버리면
한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니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배에 올라 하늘에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보니 비로소 바다에 왔다는 생각이든다.

서둘러 차와 함께 배에 올랐더니 시간이 여유로운듯 했다.















































어딜 가든지 조용히 있지 못하는 성미고
발발이 같이 선장실을 노크하여 양해를 구하고
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물어 보아야 할 게 아닌가.

선장님께 인터넷 신문인 금강일보에 내야 한다며
뻥을 치고 선장실도 찍어보고 이것저것 불어보았다.

무수히 많은 계기판이 어지럽고
강화도에서 썰물이 되면 바다의 바닥이
들어나는 걸 보았는지라 이 배가 바다에
뜰 수 있는 수심의 한계가 몇미터냐 하니 2.5미터라한다.

이렇게 큰배가 수심이 얕은 곳에서도 항해를 할 수 있다니 놀랍다.

선장이 될려면 이곳의 바닷속 지형도 잘 꿰고
있어야 할 것 같고 잘못하여 수심이 얕은 곳에 가서
배가 바닥에 닿아 움직이지 못하면 밀물때가 되도록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곳 장봉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신도를 거처 장봉도를 왕래한다.















































배가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가는 게
수심이 얕은 바다로 잘못가서 바닥이 땅에 닿을까봐 그런기보다.

뻘의 질감이 좋고 흰뺨검둥오리가 뻘에서 쉬고 있고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신도에서 배에 올랐는데 이들은 공짜로 타고 다닌단다.

나도 우편배달부를 할 걸 그랬나 보다.
















































멀리 육지가 구름위에 떠있는 것 같고
신도 시도 모도가 원래는 떨어져 있는데
이젠 다리를 놓아 이 세섬을 연결해 놓았기에 
차들이 아무곳에나 왕래할수가 있게 되고 배가 요동도 없이
조용히 가지만 뒤로 뿜어져 나오는 물살이 오래도록 거칠게
이어져 있는게 제법 빨리 달리고 있는 모양이고 하늘이 맑아지니 좋다.

무인도에 솟아있는 송전탑이 섬의 지킴이 같다.





































그런데 이 배도 참 이상하다.
구명장비는 선실이나 뱃전 가까운 곳에 
붙어 놓아야 위급할때 재빨리 사용될 것 같은데
옥상위에 모두 올려져 있는 게 행여 부주의로 사고라도 난다면 
옥상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노약자들은 죽음을 맞아야할 것은 생각이 든다.

장봉도 선착장이 가까워지니 젊은 승무원 몇분이
배의 앞끝 가장자리의 창고같은 곳에서 우루루 몰려 나왔다.

이분들은 하루종일 배에서 생활하며
선착장에 닿을 때마다 차나 사람이 들락거리는
가판을 내리고 올리는 일과 차가 들어오면 바퀴에
고일목을 받처서 고정하는 단조로운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직업은 골치 아픈 일같은 건 애초에 없을 것 같고
한없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몹시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일같지 않은 일을 하는 것 같고 젊은 사람들이
앞날에 비젼이 없는 일로 허송세월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일에는 진급도 없고
연봉이 크게 오르는 일도 없고
언제나 꼭 같은 일만 되풀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단조로운 일은 노약자나 장애인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젊고 건장한 사람이라면
큰 대망을 안고 열과 성을 다해서 평생을 바처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누구나 자신의 일에 불만이 제일 많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일이 좋게 느껴질 때도 있는 것 같다.

가끔씩 골치 아픈 일이 많기도 하지만
변화무쌍하고 성취감이 느껴질때도 있는 내 일이 좋게 느껴지기도 하다.

















































선착장에 내려 우측으로 돌아가면
예뿐 아가씨가 이 한겨울에도 윗도리도 못입고
처연하게 앉아서 반겨주고 멀리 영종도 쪽이 보이고
작은 섬의 끝에 있는 정자로 가는 낭만스러운 다리가 보인다.

물이 빠져나간 바다에 배 몇척이
덩그러니 놓여 있으나 갈매기도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는
호젖한 곳에서 로빈슨크루소 같이 살아보고
싶을 때도 있으나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너무 적적하다.

















































바닷가의 바위섬 꼭대기에 있는 나무들은
내륙에 있는 나무들보다 생존하기가 참으로 힘들 것 같다.

폭풍이라도 몰아쳐서 소금기 머금은
바닷물에 절여진 상태로 장시간 있다간 금방 죽을 것 같다.

실제로 거제도의 외도에 있는 나무들이
바닷물에 절여져서 몽땅 죽은 경우가 있었고 직접보았다.
















































십여분 정도 갯바위를 따라가니
할머니 몇분이 유모차를 세워놓고 바구니 하나씩을 꿰차고
바닷바람이 차가운데 갯바위에 엎드리다 시피하여 굴을 까고 계신다.

예전보다 옷이 좋아져서 추위는 견딜 수가 있겠지만
허리가 부러지듯이 아플 것은 내 경험으로 짐작을 하고 남는다.

이런 날씨에 힘든 몸을 이끌고 굴을 따서
당신 혼자서 호의호식하고자 하는 것도 아닐께 자명하다.

무슨 의지력이 발동하여 이 할머니들께서
고통을 감내하며 이런 일에 골몰하고 계실지 가늠해 보았다.

아마도 아마도...

굴을 따서 시장에 내다 팔아서 한푼두푼 
모아 두었다가 도회지에 나갔던 자식들이 손자를 데리고 방문할때면...

멀리서 손주들이 할머니 하고
소리처 부르며 한달음에 달려와서 품에 안기면
그간의 고생스러웠던 일들이 모두 환희로 바뀔 것이다.

그 손주들의 환한 미소 때문에
오늘 밤에도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밤새 끙끙 앓더라도 기꺼이 이 일을 자청하는 것이다.

영악한 손주들이 할머니를 반기며
달라드는 것도 한푼의 용돈이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할머니들도 잘 알고 있을 게다.

아이들이란 게 용돈 한푼 쥐어주지 않으면
반겨주지도 않고 외면해 버리는 것도 훤히 알고 계실 게다.

이 세상에서 제일 공이 없고
보람도 없는 일이 아이들 돌보는 일이라 한다.

이제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나를 애지중지 키워준 어머니의 은혜는 없고
저절로 나혼자 힘으로 자란 것 같이 알고 있으니 말이다.

굴을 따는 할머니분들도
이런 모든 걸 모르는 바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뿐 손주들이 할머니를 반겨주는 게
이 세상 어느 일보다 보람있고 기쁘다고 알고 있을 것 같다.

이런 사항의 반은 본능에 의한 것이고
반은 세뇌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 까지 기꺼이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지 않을 것 같은데 다음 세대는 어떻게 변해갈지 짐작이 간다.

이런 일도 우리의 어머니 세대에서 끝장이 난 것 같다.

자식에 대한 의무와 희생을
조상대대로 부모의 부모 세대로부터
직접 눈으로 보아왔고 또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말이기에 이런 일을 감내할 수밖에 없도록
세뇌가 되어 있으니 가만히 편하게 자식들에게 봉양을 받으며
지낸다는 게  스스로에게 죄스럽다고 여기는 분을 본적이 있었다.

꼭 같은 말을 수십번.. 아니 수천번
반복해서 들으면 저절로 세뇌가 되며
사회의 조류가 그런 분위기였으니 저저로
할머니들의 마음이 세뇌 되어 굳어져 있을 것 같다.

지금도 구여운 손주들이 "하~알~머니"를 외치며
달려올 것을 상상하며 아픈 허리의 고통을 참고 있을 게다.

이런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숭고한 사랑이라고
거창하게 미화해서 표현하나 내눈에는 그저 딱하게 보일뿐이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런 고통을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

내 어머니가 이러했듯이....






 


이동규 15-01-30 12:48
 
고 사장님 사진 기술이 대단하십니다.  제가 좋아하는 색감이군요,  존경 스럽습니다. 이담에 시간 되시면 한수 부탁 드립니다.
     
고태환 15-01-30 18:18
 
누구나 셔트만 누르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찍으나마나 작가입니다.

낼 새벽에는 사진을 찍으러 갑니다. 같이 가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