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있는 산속에 들어가면 갇혔다는
느낌이 들지만 포근하고 아늑한 감이들고
바다에 가서 앞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광활하게 펼처진
수평선과 드넓은 하늘에 막혔던 가슴이 툭 트이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바다를 찾고 싶은 원인이 밀페된 감옥같은
가게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스스로 진단해 본다.
바다를 찾으면 비릿한 갯내음이 좋고
상쾌한 바람이 좋고 항구의 왁자한 부산함에
삶의 연속성을 느끼며 뱃사람들의 강인한 새명력과
활력을 실감하며 바다 생물의 다양함에 신기해 하며
지금도 맛보지 못한 색다른 수산물에 대한 식탐의 강열한
욕구가 생겨나서 더욱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지 모르겟다.
이날도 바다를 찾은 내 욕구를 서운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우측으로 갔다가 뒤돌아 나와서
기다란 장봉도의 대장정에 오르는 초입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닷가에 포장된 신작로가 길은 길게 이어져 있다.
대정정에 올라봐야 차로 반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이긴 하지만...
갯바람이 차긴 하지만 매섭게 아리진 않아서 좋다.




한들해수욕장이 호젖하게 보여서 무작정 들어왔다.
갯가에 피어난 억새가 씨앗을 날려보내고
앙상하게 마른 줄기가 가는 바람에 흔들리니
마치 고사리손 아기가 손을 흔들며 반기는 것 같고
봄에 새하얀 꽃을 피워울릴 꿈을 간직한 아카시나무가
햇볕을 모아 그 에너지를 뿌리에 저장하고 잇는 것 같이 보인다.




인공조림으로 심어진듯한 곰솔의 거친 표피가
무척이나 오래된 것 같고 그 우람함이 아무리 거센
파도나 비바람에도 느끈히 막아낼 듯이 당당해 보이며
새로이 심어진 어린 나무도 큰 꿈을 간직한 듯이 보인다.
곰솔의 솔잎 사이로 쏴아~~ 하고 부는 바람 소리가
지난 여름 바다에서 새로이 생겨난 모든 얘기를 소곤거리고 있는듯하다.
이런 바람소리도 참으로 정겹게 느껴진다.




바다위에 새하얀 햇볕이 부서지고
금모래 해수욕장 가장자리에 파도에 밀려온
죽은 하얀 조개껍질이 무수히 즐비하게 널려 있다.
살아있을때의 껍질은 검은색이었을텐데
얼마나 많은 파도에 휩쓸려으면 표피가 하얗게 벗겨졌을까?
셀 수도 없이 많은 주검으로 이어진
이런 조개의 죽음 원인이 궁금하기도 하다.
바다의 오염이 원인일까?
철새들이 썰물때 조개의 속살을 빼먹어서?
썰물때 바다가 얕아져서 추위에 얼어 죽어서?
죽은 갯펄게가 많은데 이걸 쪼아 먹으려는
새들이 없는 걸 보니 오염이 원일 가능성이 짙고
이젠 이 바다도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것이 확실하다.
이곳에 죽어 버려져 있는 껍질만도 수억개는 넘을 것 같다.




껍질을 남기고 주검만 딩구는
조개류의 크기와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고 많다.
대부분이 이름도 모르는 것이고
내 주위의 생물도 이렇게 모르는 게 다양하니
전세계의 생물은 도대체 그 종류가 얼마나 될 것이며
아무리 박식한 생물학자인들 얼마 만큼을 안다고 자부할 수가 있을까?
아마 아직도 그 종이 밝혀지지 않은 것들도 부지기수로 많을 것 같다.




고운 모래 위에 딩구는
석회질 하얀 껍질도 제법 예쁘 보이기도 하다.
이런 껍질도 수없이 몰려오는 파도에
모래와 뒤섞여 깍여나가면 금방 형체도 없이 소멸되고 말 것 같다.

이 녀석은 살아있는 것 같아서
살짝 만져 보았더니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이 게의 죽음이 오염이 원인이었다면
큰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며 죽어 갔을테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는 듯 생각되고 전혀 아프지 않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그 오염이 우리 인간들에게도 고통으로 다가올 것 같다.



그 증거가 바로 드러난 게 아닐까 한다.
모래에 몸체가 파묻혀 날개의 끝부분과 발이
조금 드러나 미라가 되어 가고 있는 녀석은 백로같아 보인다.
언눔인지 모래를 파보면 알수 있을 것 같으나
부관참시를 하는 것 같아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물은
아무리 발버둥치며 생에 애착을 가지고
무한 경쟁을 벌여도 이렇게 덧없이 사라져 간다.
마치 세상에 태어난 적이 없는 것 같이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대륙이나 바닷가의 섬도 억겁의 세월이 지나면
바바람과 파도에 침식되어 바닷속으로 소멸되어 없어지고 말 게다.
우리의 몸이나 생각 조차도
이렇게 소리없이 소멸되어 갈진데
무얼 그리 욕심스럽게 애타게 구하는 게 많고
제가 잘났다 우기며 쌈박질로 세월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런 말을 늘어 놓고 있는 나도
내일이면 또 생활 전선에 나서서 극심한 경쟁을 벌일 게다.




개가 고운 금모래 위에서 뛰어 다녔고
고라니란 눔이 바다 쪽을 바라보며 걸어갔고
물이 돌부리를 피해서 무늬를 그리며 흘러간다.
밀물이 되면 금새 이런 자국들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며
우리의 삶도 이렇게 지워지고 다시 생성되기를 반복할 것 같다.
오래전에 신사동에 있는 현대겔러리에서 황홀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고운 금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획 그려놓은 아주 단순한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측광에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가
아주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내가 그림을 살찍만 만져도
평평한 모래 바닥이 흐트러지고 말 것 같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었다.
그림을 집의 거실에 걸어 놓고 있으면
밥맛도 저절로 좋아 질 것 같았고 탐이 났었다.
하지만 그 가격이 몇천만원이서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나는 사진으로 표현해 볼려고 애를 썻으나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한낮이 되니 기온도 제법 올라 포근해졌고
썰물이 되어 파도 소리조차 사라진 바닷가는
고요와 정적이 감도는 바닷가를 혼자서 걷는 맛도 일품이었다.
자연은... 겨울 바다는...
고요하고 쓸쓸하고 한적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살아있는 생명들은
자연의 혹독함에 인내하며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고
처연히 삶에 임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꿈을 키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