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에서 가까운 북한강변에
눈이 새하얗게 내리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하고 허허로운 강변에
나목 버드나무와 갈대꽃 위에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것을
상상해 보며 다녔지만 행여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라도 날까봐
망설이다 집과 가까운 동구릉만 보고온 걸 후회한 게 여러번이었다.
12월21일 일요일날 새벽에
고요를 희롱하던 북한강변으로 향했다.





내가 첫번째로 도착했으니
다른이의 발자욱도 없고 기분은 좋다.
습설이 내리긴 했지만 많이 내리지 않았고
나목의 가느다란 가지에도 눈이 소복하게 쌓일 것을
기대하고 왔지만 약한 바람에 눈이 모두 떨어져 서운하기만 하다.
기왕에 어렵게 왔으니
열과 성을 다해서 찍어보긴 해야겠지만
갑자기 기운이 없어지고 사기가 반감하고 말았다.




그래도 제법 운치가 있다.
단순한 흑백톤의 풍경이
겨울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가 있어서 좋고
눈내린 강변은 언제나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아서 좋다.
이런 곳에 두루미 한무리라도 노닐고 있으면 아주 제격일텐데..






그래도 옆으로 휘어져 자란 나목의
큰 둥치에는 새하얀 눈이 제번 쌓여서 보기에 좋다.




바닥에 쌓인 눈이 백설기 만들때 빻아 놓은 쌀가루같다.
어릴때 먹었던 백설기는 입에 넣고
오래 우물거릴수록 단맛도 나고 좋았는데
요즘 백설기는 맛이 덜한 게 입이 고급화되고
뱃속에 지방이 많이 쌓여서 그런 것 같고 맛있는 게 없어지고 말았다.





눈이 많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는 얘기를
어릴적부터 어른들께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다.
공기중에 흩어져 있는 질소성분이
눈에 묻혀서 내리기 때문에 땅이 비옥해진단다.
옛 어른들은 과학을 몰랏어도 경험으로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풍경은 오늘같이 흐린날이 제격인 것 같다.
빛이 너무 좋아 화사한 것 보단 음울한 톤의 색이 마음에 든다.




살짝 언 어름 위에 숨구멍이 생겼고
그 주위에 눈이 녹아 까만 원을 그렸고
하얀 백지에다 수묵화를 그리다 먹물을 흘려 종이 위에 베어든 것 같다.




다산기념관 옆의 마현골에 왔더니 하늘이 개이기 시작한다.
서들러 출근을 해야 하니
북한강변에 오래 머물지 못한 것 이 아쉽기만하다.




무채색으로 잔뜩 흐려있던 하늘이
갑자기 뜷리며 이렇게 환하게 개이고
하얀 뭉게구름 피어오르니 신기하기만 하다.





하늘은 나를 위해 이렇게 변화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빛은 참으로 오묘하며 피사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수풍마을은 아직도 고요속에 머물고 있고
온 산하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듯 정적만 감돈다.
이런 풍경이 있는 야외에서
따뜻한 장작불을 피워놓고 석굴을 구워가며
마음맞는 친구 불러다 놓고 곡차한잔 거하게 나누며
담소나누며 하세월 보냈으면 좋겠다만 상상만으로 만족하고...
살아간다는 게 왜 이리도 팍팍한지 모르겠다.




팔당댐 밑에 날아온 백조는 유유자적하며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이 이뿐 녀석들도 지나는 세월을 알고 지낼까?
아마도 시간이란 괴물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현재의 이 순간만을 즐기고 살아가고 있을 게다.
영악한 인간만이 제 수명을 가늠하고
대략 몇년을 더 살수 있으리라는 예측을 하고서
죽음에 대비한다고 안달복달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이 고니들같이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여기고 살아가면 될텐데...
세월은 화살보다 빨라
또 한해가 순식간에 부질없어 지나가 버렸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언제나 새로운 욕망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변덕이 심하여
바라는 게 수시로 달라지니 이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게 아닌가 한다.
어린 초등학교 때는 중학생이 된다면
힘도 쎄지고 멋진 교복에 모표가 달린 모자를 쓴 씩씩한
형같은 사람이 빨리 되고 싶어 안달이 낫었지만 그런 건 요원한 것 같았다.
그렇게 바라던 중학생이 되고 나니
사춘기에 접어 들었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들은
예쁜 여학생들과 연애라는 걸 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었고 더 빨리 군인이 되고 싶었다.
당시에 새하얀 교복의 칼라와
단발머리 여학생만 보면 가슴이 쿵쾅거리며 벌렁거렷고
수줍어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눈을 외로 돌려 살며시 보다가
마주칠까 겁이나서 하늘만 보며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었다.
더 나이가 들면 군인이 될테고
당당하게 연애라는 것도 할 수가 있을 것 같았고
마음놓고 예쁜 여학생 손을 잡고 걸어가고 싶었다.
가능하면 한해에 서너살씩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다.
그리고 어찌 지났는지도 모르게
무심한 세월만 속절없이 지나고 말았다.
이제 손주를 보고 그 손주보는 맛에
삶의 의욕이 더욱 진해졌다고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면
올바르게 보냈는가 싶기도 하고
남앞에 내세울 수 있게 이루어 놓은 건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십년후 쯤에는 스스로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라도 찾아야겠다는 욕망이 앞서기도 한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욕망은 끊임없이 생겨나서
그걸 이루어 보려고 스스로를 옥죄게 만드는 것 같다.
한가지를 이루면 또 생겨날 게 분명하며
모든 게 허무로 이어지는 걸 알고 있을진데...
앞으로 남은 인생...
세상에 빚진 것을 모두 깊는 욕망을 가져 보아야겠다.
꼭 금전적인 빚이 아니라 정신적인 빚이나
윗세대에게 진 빚을 후대에 물려서 갚아야할 것 갗다.
아마도 버나드쇼 영감같이 죽음에 임박해서야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게 될줄 알았지." 하며 후회하게 될 것 같다.
우물쭈물 하지 말고 확실한 대안을 찾아야 할텐데...
에구 졸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