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의 푸른동산에는
껍질의 색이 아주 고운 광대노린재의 약충이 무리지어 살고 있다.
여름부터 가끔씩 들러 관찰을 했지만
아직도 성충이 되지 않았고 성충이 되면
껍질의 색이 얼마나 더 신비롭고 고울까 기대가 된다.
이 녀석들은 야행성인지
항상 같은 나뭇잎에 붙어 있지만 돌아다는 걸 보지 못했다.
추위가 닥처 오기전에
빨리 성충이 되어 화려한 빛깔을 보았으면 좋겠다.
광대노린재의 화려한 모습은 다음에 올리기로 하고.
오늘도 태릉에 들러
광대노린재를 보러 왔더니 한달전의 모습 그대로여서 찍기를 포기하고...



기왕왔으니 천천히 산책이나 하자며
한바뀌를 천천히 도는데 다른 초목들은
아직도 푸르름을 더하는데 담쟁이와 화살나무에 고운 단풍이 들었다.
이렇게 빛이 좋은 날은 아침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아깝다.



초목들 중에서 가을이 왔음을
제일 먼저 일리는 게 담쟁이와 화살나무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화살나무는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어 가꾸며 윗부분이 웃자라면 자꾸만
잘라내니 단풍은 곱게 들었지만 찍을만한 게 없었다.
무엇이든 자연 그대로 두면 좋으련만
많은 초목이 사람의 마음에 안들면 수난을 당하며 모진 삶을 살아야 한다.
다행이 이곳의 화살나무는
사람의 간섭을 덜 받아서 그런지
제멋대로 자라서 가지를 높게 키울 수가 있었다.




추위도 오기전에 서들러 단풍이 곱게 든
화살나무의 잎이 고운 빛을 받아 원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이른봄에 피어난 연한 잎은 햇잎이라하며
채취하여 쪄서 말려 묵나물을 만들거나
그대로 소금과 참기름 양념만하여 무처 먹기도 했었다.







무엇이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생명은 신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며 때맞추어
겨울이 오기전에 이 고운 잎사귀를 모두 떨구어 내고
나목으로 변하여 황홀한 색의 잎도 내년을 기약하여 흙으로 돌아 것이다.
며칠전에 집안의 종손인 조카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다.
모든 게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겠지만
질부의 슬픔에 잠긴 통곡을 대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저절로 쏟아졌다.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지고 말 게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도 금방 소멸되고 다시 재생되며 돌고 돌아간다.








빛은 만물에 생기를 불어 넣고
예쁘게 보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위의 네개 사진은 같은 피사체다.
찍는 방향에 따라 높낮이에 따라
빛의 깅약에 따라 그 모습이 모두 다르다.
내가 남에게 보이는 모습도 각양각색일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인상이 고약한 사람으로...
두 놀부 시키는 무능으로 뭉처진 못난 아버지로...
짱뚱어 아줌마는 고집불통의 난공불락 남편으로...
하지만 친구 몇명쯤은 그저 상대하기 편한 눔으로 규정지어 있을 게다.





가지 끝에 겨우 한두잎 남아서
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니 갑자기 외로워진다.
어느새 가을이 바로 옆으로 성큼 다가왔다.
머지 않아 금방 산하가 붉게 물들 것 같고
한해가 또 하릴없이 저물어 가고 있으니 안타깝다.
뭐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는데
오래 일기를 쓰지 않았더니 우찌 쓰는지도 잊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