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항상 마음이 바뀌고 변화가 무쌍하다.
산을 올라올때는 담에 흠벅 젖어서
왜 이렇게 힘들게 올라야 하는가를 반문하며
진저리가 처지더니 이제 내려 갈려고 하니 섭섭하다.
부자가 되고 나면 궁핍했던 옛 시절을 금방 잊어 버리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비웃고 얕보는 사람을 보았었다.
아직은 무릎 관절이 튼튼하니 내려가는 건
발걸음도 가볍고 단숨에 뛰어서 내려 갈 수가 있을 것 같다.




해가 머리위에 있고 멀리 산의 중턱에
가는 가지를 수 없어 뻗어서 잎을 모두 떨군 숲도
마치 수채화 물감으로 세필화를 그려놓은 것 같이 보인다.
이런 모습도 아무 때나 볼 수가 있는 게 아니니...





억새가 바람에 몸을 맡기고
까마득한 아래 계곡을 바라보며 졸고 있고
명감나무에 빨간 열매가 많이 달려 곱게 익었다.
이런 사항도 알아두면
산에서 조난시에 생존에 도움이 될까해서...
명감나무라고 하고 망개나무라고도 한다.
또한 토복령이라고도 한다.
이 망개나무 뿌리에는 전분질이 많아
잘 부러지며 무독하며 식용이 가능하고
구황식품으로 활용되니 산에서 조난시에는
이뿌리를 캐 먹으면 영양가 충분하고 연명이 가능하단다.






지나온 산의 정상이 금방 멀어져 까마득하게 보인다.


몇발자욱 아래가 평지일 것 같이 보이는데 제법 멀고
정상 가까이에 키작은 소나무가 마치 대장인양 우뚝 솟아 뽐내고 있다.
겨우 4~5미터정도 될까한 소나무인데.....
이 산에도 예전에는 정상 가까이까지
소나무숲이 울울창창 했었다고 하는데
일제 강점기에 마구 베어서 모두 수탈해 가서 황페해졌다고 한다.
나라의 힘이 약하면 무엇하나 제대로 보전하기가 어렵다.
영국과 중국의 아편전쟁때
중국의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패한 댓가로 중국이 그 책임을 물어
중국 연간 총생산의 수십년치의 전쟁 배상금을
물어 주기로 합의하고 종전을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영화로도 많이 제작이 되었고
중국 사람들도 그때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수치스럽고 분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게다.
하지만 사람들은 망각이 특기며 역사는 항상 반복되고 있으니...




꼬불꼬불 내려가는 하산길에도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바다와 기암괴석과 단풍이 어우러진
멋진 경관의 산에 있으니 눈이 호사를 한다.

이 사진을 잘 살펴보면
산의 아래에는 제법 단풍이 남아 있으나
고지가 높아질수록 잎이 모두 떨어졌음을 알 수가 있다.



알프스나 히말라야 로키산맥같은 산의
정상에는 흰눈이 가득 쌓여 있는데 산의 아래는
소들이 파란 풀밭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보면 너무 신기하다.
태초에 이산이 지각 변동으로 융기를 할때도
팔천미터가 넘게 확 솟아 올랐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들고 아쉽다.


용담 한포기가 진보라색 꽃을 피우고 누워서 쉬고 있고
산의 정상 부근에는 억새의 씨앗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는데
산의 아랫쪽에는 지금 한창 꽃을 피워 올려 새하얗게 빛난다.




오솔길이 깁경사를 이루다 간혹 평탄한 길이 되며
끝없이 길게도 이어져 다리가 아프고 너무 지겹게 이어진다.
무엇이든지 장담을 하는 건 금물이고 겸손해야 한다.
다리 관절이 튼튼하다 장담하며 내려오니
끝무렵에는 무릎이 몹시 아푸고 주저앉고 싶어진다.



이젠 예전의 무릎이 아니고 다리가 아주 불편해졌다.
힘이야 들었지만 오랫만에 멋진 산을 보고 정취를 만끽한 산행이었다.
풍요의 고장이 맞다.
예전 사람들이 벼농사나 어업에만 모든 걸
의존하지 말고 크게 높지 않은 야산을 개간해서
각종 과수를 심어 가꾸고 닭이나 토끼나 염소같은
가축을 길러도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 될터이고 식탁이
푸짐해질 것인데 예전에는 왜 이런 가축을 기르지 않았나 모르겠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빈익빈 부익부가 심했었다.
이런 풍요로운 고장에서도 가난한
소작농들은 입에 풀칠하기 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의 장편소설 동학제의 무대가
이 장흥 고을이며 당시의 상황을 조부로부터 전해들은 것을
소설로 잘 표현해 놓았고 소설을 탈고 하고 나서 어른들에게
진 큰 빚을 갚은 것 같다며 후기를 적어 놓았었다.
추수가 끝나면 곡식의 대부분을 거두어 가고
가끔씩 바다에 나가 운좋게 걸려든 큰 물고기 같은 것도
지주에게 상납을 해야 농사짓기에 좋은 땅을 소작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항상 굶기를 밥먹듯이 했으며
그런 것 보다 더 큰 소작농들의 비애중에는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어린 딸까지 야밤에 지주의
성노리개감으로 방에 들여 보내야 했었다고 적어 놓았다.
탐관오리와 지주들의 작태가 그러했으니
나라가 뒤집어 져야 마땅했지 않았나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주 먼 옛날이 아니고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 때의 일이니 근세의 사건이다.
노력한 사람들에게는 마땅한 부가 주어져야 하지만
사람들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불평등하게 만들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딜가나 천시받고
불편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게 모두 신의 잘못탓이다.
아마 천당이나 극락이란 곳에는 불평등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