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대통령의 공염불.   14-04-03
글쓴이 고태환   1,736 hit
 
이윽고 고픈 배를 부여잡고 저녁을 먹으러 간단다.

내일부터의 일정도 정해졌다.

나와 일본통 노인은 나만을 위해서
안내를 맡아 하꼬네를 둘러 본다하고
한 노인분은 개인 볼 일로 동경에 머문다고 하며
셋쨋날에는 다같이 다시 오디오 시장을 둘러 보기로 했다.

이거야 원... 단독으로 안내인을 대동하여
귀경을 한다니 넘 송구럽스럽고 황송스럽다.

하꼬네로의 출발 시간은 새벽 여섯로 정해졌고...

로마에 가면 로마 사람같이 되고
일본에 왔으면 순수 일본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까운 거리에 잘 아는 집이 있다고 해서 왔다.

어디에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해산이란 곳의 횟집에 왔다. 

그런데 정식 기모노를 입은 분이 한국사람이다.

대단히 반갑기는 하지만
왠지 전통 일본 요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드뎌 개인 안주와 생선회가 나왔다.

지금 나는 뱃속이 허하여
질이 문제가 아니라 양이 문제인데
나온 것이 치아 사이에 모두 끼고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이 없을 정도로 너무 적게 나왔고 이게 전부라한다.

일본 소주가 나왔고 얼음과 물을
잔뜩 섞어서 먹으니 도대체 취하지도 않고 
곡차를 먹은 것인지 물을 먹은지도 알 길이 없고 정신만 몽롱해진다.

그리고 서비스로 토막 김밥이 몇조각 나와서 먹었고
뱃속의 허함이 사라지긴 했지만 포만감이 없어 서운한데
이게 양이 무척 많은 것이라 했고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명함을 주고 받았는데
주인장은 한국의 제주도 분이며 유학을 왔다가
눌러 앉아 갖은 고생을 하고 이 집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행중 한분이 이 정도의 횟집을 운영한다면
꽤 성공한 사업이라 하는데 무엇이 성공인지 조차 모르겠다.
















그리고 2차를 갔고 곡차로만 배가 부르게 먹었고
곡찻집 주인장이 우리의 취한 모습을 제대로 찍어 주었다.

화기가 애애했고 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뭔 얘기를 나누었는지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일본에 왔으니 잠시 오락을 즐겨보고 가야 한단다.
아니 이 야심한 밤중에 내일 일정도 바쁜데 우찌 하실려고...























































이곳의 페장 시간은 밤 11시 45분까지니 
약 30분에 걸처서 우리돈 십만원도 잃었다고 한다.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해서 모든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 버렸다면 다행이다.

이곳 한바뀌를 주욱 둘러 보니 노인분들과
가정 주부인 듯한 젊은 여성들과 담배를 엄청 피우며 몰두하고 있었다.

나도 이런데 빠진다면 걷잡을 수가 없을테니
아예 어떻게 하는지 조차 모르는 게 신상에 좋을듯하다.

이런 사행업소는 조총련계의 조폭 아저씨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다고 하며 일본 사람들은 발도 붙일 수가 없다고 한다.

이제 숙소로 가서 내일을 위해서 잠만 자면 되는줄 알았다.


































이제 3차가 되는 셈이다.
이곳은 아주 싸구려 일본식 곡찻집이라 한다.














































주인이 대충 알아서 안주를 내주고
적당히 술값을 받으면 되지 작은 안주 하나마다
가격이 철저하게 붙어 있고 소주의 종류도 대단히 많고
종류마다 맛과 향과 술의 도수와 가격이 모두 다르다고 하며
소주나 정종이 몇백만엔 짜리가 있다하니 놀랍기도 하다.

이젠 곡차를 먹는지 물을 먹는지도 모르고
그저 노인분들이 따라주니 묵묵히 마시고 있을뿐이고
저 병만 비우면 가겠거니 하고 마시고 나면 또 다른 걸 주문한다.

빨리 호텔로 가서 눕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하구야!!! 나도 곡차는 조금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두 노인분들이 우찌나 곡차가 센지 두손을 모두 들고 말았다.


어머니는 청주 담그는 전문가셨지만
맛만 불 줄 아셨지 제대로 마시지는 못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의... 아마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세무서에서 술조사를 나오면
어머니가 제일 긴장을 하시고 거르던 술을 허둥대며 감추셨다.

아마 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집에서
막걸리를 담아 새참으로 농주라 하여 먹은 걸로 알고 있다.

당시에는 세무서에 근무를 한다해도
작은 지방이니 아는 얼굴도 많았을텐데
왜 그리도 적발을 하고 벌금을 부과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큰 권력에 속하니 그걸 최대한 이용해서
남앞에서 권세를 으시대 보자는 얕은 속셈이었는가 보다.

공직자의 힘은 인허가를 내주는 업무와
백성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처벌하는데서 나온다.

그 권력을 최대한 이용해야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 받을 수가 있으며
힘없는 백성들을 스스로 알아서 허리를 굽혀 읍소를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리가 속촐할 수밖에 없고
가진자와 결탁을 이루어야만 뇌물을 챙길 수가 있으며
빈익빈 부익부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요즘 대통령 아가씨가 씰데없는 규제를 풀어
국민의 사업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하고 간소화해서 
경제활성화에 기여 하라 외치지만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며 작은 권력이라도 잡은 이상 내려 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찌하거나 힘 없고 돈 없으면 살아가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시방 뭔 푸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이게 일제 시대에 주세를 많이 걷고자
또는 우리의 전통주 제조법을 말살하고자
일본 사람들이 만든 법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하여
그 맛있는 곡차 제조 비법이 후세에 전수되지 못하고
수 없이 맥이 끊어졌다니 아깝고 원통하고 절통하기 짝이 없다.

순전히 일본 때문이다.
아니... 우리의 못난 조상과 조선 왕실 때문이다.

하구야... 이젠 혓바닥이 제대로 돌아기지 않아 말이 헛나오기 시작한다.

우찌 호텔에 왔는지 모르지만
갈증이 심해서 잠이 깨고 나니 새벽 다섯시다.

물을 2리터도 넘게 먹고...
또 잠이 들면 못일날 것 같아 샤워를 하고...

여섯시가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