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아까운 게 없는 천국.   14-04-08
글쓴이 고태환   1,906 hit
 

다시 노인분들과 합류해서 아침을 먹으러 간다.
모두가 속이 쓰린 눈치며 얼굴이 누렇게 뜬 것 같다.

골목을 돌고 돌아 우에노 공원 옆의
어느 해장국집에 들어 갔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고 한때는 날씬하고 예뻣고 밤에는
곡차집에 다니며 미모를 자랑했으며 나이가 많아지니
한국 사람들 상대로 식당을 운영하며 지내고 있다 하는데
목과 얼굴의 깊은 주름을 보니 인생사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음을 실감한다.

마침 벌겋게 생긴 육개장 그림이 있어서
주문을 하며 내 것은 세상에서 젤로 맵게 해달라 부탁을 했다.

허이구야!!! 또 일이 터졌다.
속이 불편하여 화장을 고치고 오니
또 노인분들이 또 맥주를 주문해서 드시고 있었다.

"어이... 일루와봐...
쓰린 속은 곡차로 풀어야 하는 법이야.
나뿐 짓은 여럿이 하고 좋은 일은 혼자 하라고 그랬잖아.
괜히 빼지 말고 같이 한잔 해보자구... 혼자서만 오래 살려고 그래?"

아예 일본에 있는 곡차를 모두 마실 기세며
이건 숫제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목숨을 걸고 먹는 것 같다.

또 곡차를 한잔 하고 있자니
시뻘건 육개장이 나왔고 내 입맛에 딱맞게
아주 매우며 식재료가 제대로 들어간 옛날의 어머니 손맛의 육개장이 맞다.

어찌 이렇게 맛있게 끓여 냈는냐며 물어 보니
한국에서는 한그릇 분량씩 나누어진 것을 사다가
데워오는 인스턴트 식품이니 무슨 맛이 있겠느냐고 한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전국 어디의 육개장이나 똑 같은 맛이었다.

우리 고유의 전통 맛이 장삿속에
휘말려 본토에서 사라지고 있는 게 안타깝고
이젠 우리 어머니의 손맛을 찾으려면 외국을 기웃거려야 할 것 같다.

LA에서 먹은 내장탕이 그러했고
필리핀에서 먹은 칼국수가 그러했었다.

너무 맛이 좋아 사진 찍는 것도 잊고
맛나게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고 살 것만 같다.

다시 우에노 공원에 왔다.














































이곳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노인분들이 공원을 독차지 하고 있으며
남미의 붉은귀거북이가 번성했고 7월이 되면
형형색색의 연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이곳의 공원가에는 우리나라의 청계천 변의
황학동의 골목같이 온갖 잡동사니를 팔고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보는 오리 녀석들은 겁도 없이 가까이로 다가온다.


















이곳은 까마귀시키들도 겁을 내지 않는 게
일본 대부분의 백성들이 착해서 괴롭히지 않은 탓인 모양이다.
















































이른 아침에는 비교적 한적하더니
해가 중천이 되자 발디딜틈이 없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고
공원 길의 가장자리에는 모두가 돋자리를 깔고 단합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 틈에 밀려 다니고 있다.


























































이곳의 모든 조각품이 로댕의 작품으로
모두가 진품이라 하는데 로댕에게 물어 보지 못했으니...

이게 모두 돈의 힘이라고 하며
우리나라의 시립미술관에서 본 로댕의 작픔은 진품이 아니었남?



























우에노 공원 한바뀌 돌고 나서 또 볼 일을 보러 가는데
더욱 많은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 들고 있으니 공원이 미어 터지고 말겠다.



























"케시키[KESHIKI]와 너 낫두라[U-natura]."

무섭다 욕을 하며 때릴까 봐서...
















일본에 간다니 작은 부속 하나를
구해 달라는 후배가 있었고 "걱정마라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해 오겠노라." 고 장담을 했었다.

아무리 도쿄 시내를 둘러보고 발품을 팔아도
후배가 구해 달라는 부속은 없고 잘못하면 초상까지 치르게 생겼다.

약속을 해 놓고 지키지 못하게 생겼으니 마음이 무겁다.




























점심 시간이 되니 또 맥주를 주문했지만
나는 기가 죽어 마시지 못하고 노인장들만 드셨고...

진짜 고추냉이를 갈아서 먹는 건 처음이었고
금속 갈판이 나왔으나 제대로 격식을 갖춘 집에서는
가시복의 껍질에다 갈아야 먹어야 고유의 맛이 난다니 재미있다.



























한분은 다른 볼 일이 있다며 헤어졌고
저녁 여섯시에 만나자 하고 도쿄도 청사의
스카이라운지에서 도쿄 시내를 내려다 보아야 한단다.















































제1, 제2청사가 있으며 45층 빌딩이며
순식간에 엘리베이트가 올라오고 그 높이가 220미터라고 한다.

나는 남산의 전망대에도 올라가 보지 못했는데...

빌딩숲 가운데 있는 녹지는 옛 일본의 고궁이라고 하며
우리나라보다 녹지가 크게 많아 보이지 않으며 청사의 아래에 숲이 좋아 보인다.

















































이 전망대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올라와서 아래를 굽어 보고 있다.





































시간이 남아 청사 아래에 있는 공원으로 내려왔다.

벌써 시들어 가는 목련과 벚꽃을 보니
며칠 지나지 않았건만 서울이 그립고 달려가고 싶어진다.


























어느 부인이 사슴같은 개를 데리고 왔고
고등학생인 듯한 여학생들이 축제를 대비해
춤연습을 하고 있는 모양새가 발랄하고 이뻐서 한참 구경했다.

에구야... 카메라 밧데리가
충분한줄 알았더니 벌써 다 떨어지고 없다.

저녁은 중화요리를 먹었고 또 곡차를 마시고...

저녁 여덟시 가까이 되어
두분은 함께 볼 일을 보러 가시고
혼자서 호텔로 가는 길에 우에노 공원에 들렀다.

일본 정부도 절약의 절정을
구가하고 있는지 공원의 가로등이 생각보다 어둡다.

하지만 벚꽃은 밤에 보는 게 더 멋있고
공원안에는 발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이 몰려 왔고
아침에 봉오리만 있던 벗꽃이 그 사이에 만개해 있었다.

돋자리를 깔았던 곳에는 맥주와 안주가 산더미 같이
쌓아 놓았고 이곳의 젊은이들도 죽음을 각오하고 마시는 듯했다.

앉을 자리가 없으니 폭이 겨우
일미터 남짓되는 원탁을 두고 열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빙 둘러 서서 맥주를 마시는데 그 옆에는
다 마신 박스가 높이 쌓여 있는 걸 보니 장시간 서서
마신듯하고 누구에게도 페를 끼치지 않겠다는 듯이 보였다.

화장실 입구에는 엄청 길게 줄을 서 있고
벚꽃이 없는 외진 곳에는 남녀노소 방뇨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어느 곳이나 별별 사람이 있게 마련이며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난장판이 되는 건 불을 보듯뻔하다.

이날 만큼은 모두가 미쳐보자는 듯이 보였고
시에서도 큰 불상사가 아니면 용서가 된다고 하니
그 동안 켜켜히 싸인 스트레스를 몽땅 날려 보내라는 뜻인 모양이다.

한시간여 동안 돌아보고 전철역을 지나 먹자골목으로 들어 섰다.

이곳에도 거리를 꽉 메우고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있었는데
그 전날에는 거리가 조용했었고 번잡하지 않았었다.

우리나라의 홍대앞에는 매일 이런 광경이 펼처지는데...

일본의 회사원의 대졸자 초급 연봉이
180만엔 정도라 하며 10년정도 근무하여 과장급으로
승진을 하게 되면 450만엔 정도를 받는다고 하니 오히려
우리나라의 대기업보다 연봉이 적은 것 같고 물가가 더 비싸니
절약에 절약을 거듭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더욱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데도 우리는 연봉이 적다고 파업을 일삼고 있으니...

우리나라 거리에는 페션이 화려한데 비해
이곳 거리의 페션은 대단히 어두운 게 장기간의 불경기 탓인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이 거리에 와보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우리는 음식이나 옷이나 모든 게 풍족하여
아낌없이 버려지고 계절마다 새로이 사입으며
지내는 게 과소비를 일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든 게 풍족하여 아까운 게 없는 천국같은 나라다.



일본을 돌아보며 무얼 보았고 느끼고 배워왔느냐고 물으면?

일본은 우리보다 부자여도 절약하며
검소하게 살아가고 우리는 미신이라 치부하며
벌써 오래전에 배척하고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는 것도
전통이라 여기며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켜서 관광자원화하고 있었다.

우리는 외국 것이라면 물질이건 종교건 무조건 좋아하고
우리의 좋은 것을 불과 몇십년 사이에 모두 없애 버린 우를 범하고 말았다.

우리도 전통문화를 잘 계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어할 것을 알며
남을 먼저 배려하니 어딜 가나 거리가 깨끗하며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것도 부럽고 어린시절부터 아주 쇠뇌교육을 시켜야할 것 같다.

벌써 내가 기성세대가 되고 말았으며
우리 세대가 젊은 이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이런 일본 여행을 마치고...


 


정필규 14-04-13 08:11
 
좋은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우에노에 계셨으면 아사쿠사의 센소지와 스카이트리를 보셨어도 좋았겠습니다.
세뇌교육이라는 말씀에 생각이났는데 떼 쓰는 아이에게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랬지!'
라며 몇번이고 다그치는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어릴때부터의 이런 세뇌교육이 효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어릴때부터 부끄러운걸 아는지 모르는지가 대단히 큰 차이인 것 같습니다.
     
고태환 14-04-14 11:09
 
깜깜한 밤에 아사쿠사를 지나가 보았습니다.

자식 기죽는다고 세상에서 젤로 호사스럽게 키우니
모든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제가 왕자인줄로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같이 받들어야할 선생님을 얕보고 폭력을 행사하는
망나니 같은 부모가 있는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