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고형... 내일 쉬는 날이지요?
낼 뭐 하시요? 별일 없으면 이리 오시요.
그 왜?? 형제분들 모시고 오면 제가 소머리 하나 삶을 께요."
정기휴무일이 다가오면 항상 전화로
마음 따뜻한 초대장을 보내시는 지인 한분이 계신다.
강원도 횡성이 고향이며 이 집의 부인이
우리집 볼록배 아줌마와 고딩 동창이어서 알게 된 사이고
서울에서는 이웃에 살며 가끔씩 만나 곡차를 나누고 지내며
횡성 민족사관고등학교가 있는 곳에도 집을 지어 주말 농장을 하고 계신다.
사람이 제일 살아가기가에 적합한 곳이
해발 700m 고지라 하며 이집이 그 위치에 있어서
아무리 무더운 한여름일지라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낮잠 자기에 그만이며 션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곳이다.
주위의 경관이 별로 좋지 않아 더욱 좋다.
경관이 뛰어나게 좋으면 사람들이 들끓어 번잡하며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거나 없어지는 물건이 많은 단점이 있다.
대부분의 집에서 이러 하리라 여긴다.
30년 이상을 살아온 부부라면
신혼때 같이 깨가 쏟아지게 금슬이 좋을 수가 없고
서로에게 길이 잘 들여져서 항상 잔소리에 시달리는
고역을 치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화를 없애고자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여기고 인내하며 크산티페 앞의 소크라테스같이
살아지는 게 이 시대의 평범한 중년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하여 내가 제안을 했다.
"형님 앞으로 40년 후에는 두 부부가 함께
이혼을 하고 형님은 저와 결혼하기로 합시다.
여자는 여자끼리 결혼해서 살아보고
우리도 이젠 잔소리에서 해방이 되고
형님은 저와 결혼을 해서 좀 편하게 살아봅시다. 알았지요?"
이렇게 하여 만장일치로 네 사람이 이혼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허이구야!!!
언제나 40년이란 시간이 흘러갈꼬나.
잔소리 소음 공해가 없는 청정지역에서 살아 볼려니
이도 만만치 않고 너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긴긴 세월이다.
이런 불상사가 있남.
가만히 계산을 해보니 100세가 가까워야 하며
겨우 제 몸하나 운신하기도 힘든 나이가 아닌가. 하구야!!!
지난 월요일 날도 어김없이 전화가 와서
횡성에 혼자 있다며 이쪽으로 오신다면 지금 바베큐를
준비할테니 빨리내려 오라 하여 볼록배 아줌마의 허락을
득하고 야밤에 그 집 부인까지 모시고 횡성으로 날아갔다.




이 집은 모두 야술가 집안이기도 하다.
미래의 나으 부인이 되실 남편분은
섹소폰을 십년 이상 연주하신 프로추어로서
많은 봉사를 하고 계시며 부인은 화가로서 전시회를 여러번 가졌다.
늦은 저녁에 만났으니
허해진 뱃속을 바베큐와 곡차로 거하게 채우고 나니
신명이 더해져서 무엄하게도 하느님의 똥꼬를 찌르는
가무와 창을 즐기며 멀어져 가는 젊음을 달래며 보냈다.
어느새 시간은 날자를 바꾸어 새벽 두시가 넘었다.
서울 하늘 아래서 이런 양의 곡차를 마셨다면
최소한 기절을 했거나 사망의 문턱에 다달았음직한데
공기가 좋은 곳이니 취기도 덜하고 아침이 아주 개운하고 가뿐하다.




모두가 잠든 새벽 다섯시에 가만히 방문을 열고 나와
혼자서 일출을 보러 나왔더니 밤새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몰려 왔다.




산의 색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으며
서울의 벚꽃은 모두 지고 버찌가 맺혔는데
이곳에는 벚꽃이 아직도 봉오리만 맺은 게 많다.





산길을 돌고 돌아 멋진 일출 장소를 찾아 해맸으나
이 머나먼 산골 마을이 비닐하우스 촌으로 되어 있으며
매케한 두엄 냄새만 진동을 하고 멋진 경관은 없고 허탕을 치고 말았다.


에구야!!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금방 민족사관고등학교가 보이고 집이 가까웠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사람의 기척이 없고
고요에 젖어 있는 게 모두가 아침잠 삼매경에 빠져 있다.




서울에서는 벌써 웃자라 먹지도 못하게 된
두릅이 이곳에는 지금에야 겨우 작은 촉을 내밀고 있다.
다음주에는 산채의 왕인 두릅을 맛 볼 수가 있을라나.



산괴불주머니가 땅에 있어야 하나
수형좋은 느릅나무의 벌어진 가지 중간에 붙어서 꽃을 피워 올렸다.
씨앗이 하늘과 친하고 싶어 걸어 올라갔나 보다.
이집에서 공짜 바베큐와 곡차를 얻어 먹었으니
그 밥값의 반이라도 치루어야 마음의 짐을 덜 것 같아서
마당에 한트럭도 넘게 쌓여 있는 나무를 장작으로 만들기로 했다.




장작을 패다가 허리가 아프면
잠시 쉬면서 산을 둘러보니 재미있게 생긴
처녀치마가 군락을 이루어 피어나니 신기하다.





밤사이에 프로추어 섹소폰 연주자와 화가가
농삿꾼과 봄나물 뜯는 아낙으로 변신했으니 보기에 좋다.
시골 맛이 나는 풍경이 제대로 그려졌다.



아줌씨 분들께서 짬짬이 곡차와 화전과
쑥전을 만들어 오니 이거이 쪼매 송구스럽고 고맙기도 하다.
오랫만에 장작을 패보니 이건 정말로 힘든
노동이며 허리와 팔에 알이 배겨 죽을 지경이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니 끝맺음을 잘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할 게 아닌가.


아침 열시부터 한트럭도 넘는 장작을
모두 자르고 패 놓으니 밥값은 한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만
갑자기 너무 무리하여 허리를 운신할 수도 없고 운전도 못할 것 같다.
샤워를 하고 한숨을 잤으니 곡차 기운은 빠졌다만
이거야 보톤 큰 일이 아니다. 집에 갈 일이 막막해졌다.
기를 쓰고 살살 운전을 하니 어느새 집에 왔고
텁수룩한 머리에 이발을 못해서 몰골이 말이 아니다.
썩어질 몸뚱이니 아낄 필요가 없지만
오늘은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고생을 했으니 잠이 절로 올 것 같다.
휴무일 하루를 이렇게 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