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7일 날 찍은 사진.
일요일이라 오랫만에 친구와 함께
양수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기에
당연히 오리라 짐작은 했지만 밖에 나오니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디.
이미 약속을 했는지라 양수리 쪽으로...
한참을 달리니 길가에 늘어선 초목들이
모두 금방 세수를 했는지 너무 깨끗해서 좋다.
습도가 높으니 공기도 상쾌하고
심호흡을 하니 마음마져 가벼워지고
새벽을 가르는 맛이 이런 모습을 즐기는 게 아니던가.
출발할때의 우울한 감정은 금새 사라지고
어떤 풍경이 펼처질지 가슴이 벌렁거리고 설렌다.




우선 소화공원묘원에 들렀더니
천국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좋다.
여러 원색의 연산홍이 묘원 사이의 길가에
가득 피어나니 잘 가꾸어진 골목길을 걷는 기분이다.






연상홍이 세수를 하니 더욱 정갈해 보이고
산위에서 내려다 보니 양수리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내가 노후에 살고 싶은 능내리에 왔다.
안개낀 새벽녁에 고요한 호숫가에 서 있으면
내 마음도 덜달아 차분해지며 저절로 발걸음이 멈추어진다.
소화묘원 뒷산에 안개가 산을 넘어 가고
호수속에는 가마우지란 눔이 자맥질을 하며 물고기를 잡는다.




바닥에서 마구 솟아오르는
어린 풒들의 새싹 무늬가 좋아 보이고
벌써 꽃을 피워 올리고 한해의 마무리를 서두르는 꽃도 있다.
큰 물방울 두개 올려놓고
연꽃을 피울 꿈에 젖어 있는 여린 연잎도 이뿌다.




다산 선생 기념관 옆에 있는 마현골에 왔다.
전국 어디를 가나 너무 잘 가꾸어진 곳이 많기도 하다.




친구와 헤어지고 출근하는 길에
구리한강시민공원에 들렀더니 땅에 무지개가 새겨져 있다.
이런 곳을 가꾸어 놓으니
나같은 사람이 와서 보고 즐기기에는 그만이다만
엄청 많은 세금이 들어갈 것 같고 낭비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일회성 소모성 화초가 아니라
자생력이 충분한 여러해살이 토종 야생화를 가꾸어
우리 토종꽃의 아름다움도 보여주고 또한 품종개량도 해가며
돈도 많이 들이지 않는 품종으로 선택하여 심고 가꾸었으면 좋겠다.
우리 고유의 것을 후세들에게 알려주면 교육효과도 좋을 것 같고...
온천지에 외래종 나무와 풀이어서 화려하기는 하지만
계절마다 밭을 일구고 풀을 뽑아내야 하고 인건비만도 엄청들겠다.
이런 일을 하면 고용효과는 있겠지만
보다 더 알찬 곳에 세금을 사용하면 안될까?
아직도 큰일을 해야 할 곳이 수두룩할진데...
오래전부터 자주 오시는 내 또래의 손님이 계신다.
이 손님은 카드대금을 갚아야 할때나
월말이면 나타나셔서 지금 현금을 줄테니 얼마에 줄 수가 있느냐고 묻는다.
차는 항상 벤츠 최고급을 타고 다니니
부자인 게 분명한데도 너무 인색해서 더욱 얄미웠다.
A/S 비용도 나오지 않는 가격을 제시하니
생각 같아서는 손님을 무시하고 싶기도 하고
너무나 얄밉지만 어쩔 수 없이 판매를 해야 한다.
어찌나 물건 값을 깍아대는지 때로는
사람을 무시한다는 생각까지 들고 언제 봐도 반갑지가 않았다.
이 손님께서 어느날 저녁에 오셔서
곡차한잔 하자해서 의아해 하며 함께 했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어린 시절까지 얘기하게 되었다.
자신은 5남매의 장남이며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과정과 고초를 털어 놓는데
가게에 와서 하시는 행위에 대해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땅뙤기 한조각 없는 시골에서 살아왔으며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께서는 남의 집의 머슴과
식모살이로 지냈으며 항상 형제들의 별명이 "머슴의 자식들"
이었다고 무시받으며 모든 형제가 주눅이 들어 자랐다고 한다.
언제나 기성회비를 못내서 선생님께
종아리를 맞았고 친구들에게도 따돌림을 받았단다.
성장을 해서도 돈에 대한 한과
사회에 대한 원한이 켜켜이 쌓여 가슴에 응어리져 있었다.
동생들은 모두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자신만 겨우 공고를 졸업을 했고 사회생활을 할때도
점심은 먹을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굶으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자수성가를 하고 동생들도 살만하게
만들어 주었고 부모님 살아실제 고향에 농사지을
땅 몇뙤기를 장만해 주어 부모님의 소원도 들어 주었다고 한다.
지긋지긋한 고향에는 발도 들여 놓기 싫었지만
가끔씩 부모님 생각이 나서 형제들과 시골에 있는
부모님 산소라도 찾아갈려면 어쩔 수없이 만나야 하는
예전에 자신들을 무시했던 사람들을 마주치는 게 겁이 났었단다.
시골에 갈때는 으시대기 위해서
벤츠를 사서 타고 다니니 고향 마을의
어른들이 반겨주며 부러워 하고 인사를 하는데도
예전의 원수를 갚는 기분으로 인사도 받지않고 다니니
아주 통쾌했으며 자신이 고향 사람들을 무시하고 다녔단다.
몇년전 한식이 되어 형제들과 함께
고향의 산소를 찾아가니 산소 옆에는 분뇨가
가득 버려져 있어 악취가 진동을 했고 형제와 자식들이
크게 분노했었지만 누가 그랬는지 알 수도 없고 또 그 예전의
고향 사람들이 "머슴의 자식"이 지나간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들었단다.
할 수없이 산소까지 타향으로 이장을 해버리고
이제는 완전히 고향과는 발길과 인연까지 끊었다고 한다.
자신의 처자식과 부모 형제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어 본적이 없었으며
언제나 남의 눈치를 살피며 외톨이로만 살아왔다고 했다.
남에게 조금도 베풀어 보지 못했고
남이 자신에게 베푸는 것조차 거절했으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담을 쌓고 지냈단다.
남들과 어울려 보라는 부인의 성화도 심하고
자식들도 자신의 페쇄적인 모습을 닮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하여 요즘은 무얼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너무 외롭다고 하며 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울먹였다.
이렇게 울먹이면서도 세상에 대한 원한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여러 말로 위로를 해주었지만
그의 마음 상처는 조금도 낳아질 기미가 없어 보였다.
어릴때의 마음속 깊이 새겨진
큰 상처가 어찌 그리 쉽게 아물어지겠는가.
여러가지 도움 될만한 책도 메모지에
적어 건네 주었고 다음에는 내가 한잔 사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미워하던 내가 너무 야박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나는 너무나 호화롭고 행복에 겨워
살아왔음을 다시 확인했지만 그게 행복인줄도 모르는 천치다.
그렇게 밉던 손님이 너무 안스러워 보이고
다시 찾아 오면 곡차 한잔 나누고 싶고 내 말을 듣고
어릴 적의 뼈에 사무친 원한이 안개 걷히듯 사라졌으면 좋겠다.
어느 누구나 하나쯤의 상처쯤은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 상처를 서로 보듬으며
살아갈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일 게다.
나는 행복에 겨워 살아서 암것도 모르고 맹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