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봉산을 내려 갈려니 아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지만 그래도 내려가지 않을 수가 없다.
빨리 내려가서 봉두난발인 머리도 깍아야 하고 할일이 많다.
허기가 져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지저만치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빨리 내려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윤채할바이 보기가 미안스럽다.
이런 멋진 경관을 보며 걸으니 배고픈 것도 잊었다.
하지만 그 할바이는 원래 과묵하지만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빨리 내려가서 점심이나 먹세." 하며 빨리 내려가서 요기를 하고 허기 면하기를 독촉하고 있다.
참으로 좋은 날을 선택해 산에 오른 것 같다.
일년에 이런 날이 몇번이나 있을 것이며 내 편생에 몇번이나 더 가심 벅차하며 감탄할 날이 있을꼬?
까짓거 항상 먹는 밥이니 오늘 하루쯤 굶은들 어떠하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무인지 안갠지 서서히 옅어지며 햇볕이 좋아지니 상고대가 더욱 새하얗게 빛을 발한다.
산은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
사람의 참 모습도 어떤 시각으로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다를 것이다.
내가 미워했던 시장의 어느 조폭 두목은 선량한 상인들을 몹시 괴롭혔으나 가정에 돌아가서는 아주 자상한 아버지였으며 남편이었으며 훌륭한 가장이었다.
그 조폭도 그의 가족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기둥이었으며 꼭 존재해야할 인간이었다.
이 아름다운 산은 가끔씩 크게 노하여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며 편한 쉼터가 되어주기도 하며 오늘 같은 멋진 자태를 뽐내며 모두에게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이건 이러하다고 단정지어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지만 자신의 감정만 앞세우고 흑백으로만 구분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요즘은 옳은 게 무언지 그른게 무언지도 가릴줄 모르는 천치가 되었다.
드디어 높은 바위언덕 아래의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아늑한 장소에 닿았고 거창한[?] 점심 상을 펼처 놓고 보니 오후 네시가 가까워 온다.
그런데!! 이 뭣꼬!!! 아뿔싸!!! 이걸 점심이라고 싸왔다꼬??!!!
내 처음부터 이 도봉산 산행기를 처음 적을 때부터 이렇게 거하게 차려온 점심 때문에 억하심정이 쌓여서 쫌생이같은 윤채네할바이라고 욕을 하며 서운해 하며 적었다.
이제는 안내인 할바이가 누군지 밝힐 때가 되었다.
이 윤채네할바이라는 사람은 여동생의 남편이며 윤채는 여동생의 외손주가 된다. 이렇게 거한 점심이란... 김치전 몇조각에 허연 곡차 두병이 고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걸 점심이라고 싸준 윤채할마이도 그렇지... 못나긴 했지만 엉성한 오라비라는 사람과 같이 가며 지아비의 산행에 요런걸 싸주고서 태연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미 점심 싸온건 지나간 과거가 되고 말았고 따질 게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니 입을 다물고 있다.
둘이서 얼굴을 마주 보고 옅은 미소 한번 나누고 곡차한잔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키고 김치전 한점 집어 맛을 보니 그 맛이 가히 일품인기라.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김치전이 세상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의 무딘 미각을 의심했지만 너무 맛이 좋았는지라 곰곰히 생각해 보니 지나친 시장끼가 반찬이었고 그 양이 적은데에 기인하여 맛이 더욱 기막히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하면 맛이 반감했을 것이며 마지막 남은 한조각의 전은 서로 양보를 하다가 반으로 갈라 먹었다.
그래도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윤채할마이한테 전화를 해서 따져 불 요량도 했으나 젊은 시절부터 둘이서 함께 곡차 때문에 무던히도 속을 썩인 전과가 많았는지라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따져 보아야 승산이 없을 건 불을 보듯뻔할테니 단념하는 것이 젤로 좋은 상책일 게다.
그래도 서운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 윤채할바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그새 눈치를 챘는지 어슬픈 변명이 이어진다.
산행은 두시간 반 정도면 충분했으며 후딱 다녀와서 제대로 된 식당에서 거한 점심을 먹을려고 했으나 내가 사진을 찍는 바람에 다섯시간 가까이 소요되었고 너무나 늦어서 이미 시간이 어중간하게 되었다며 빨리 집으로 가자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든게 나의 잘못이네.
간단한 간식 싸온 걸 먹고 점심으로 오해를 했으며 똥싼 눔이 먼저 화를 내고 있었으니 나는 언제나 철이 들지 모르겠다.
아마... 이와 같은 사유로 오해를 일삼으며 남을 시기하게 되고 더 나아가 나쁜 소문을 퍼트리는 사례도 접해 보았다.
윤채네할바이를 처음 만난지가 엊그제 같았고 윤채어미가 태어나 꼬물거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기 엄마가 되었으니 또 순식간에 한세대가 바뀌어 버렸다.
철없던 시절 오빠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며 그 갸날프고 이뿌던 여동생을 때리고 윽박질렀던 시절이 어제의 일인양 주마등처럼 스처 지나는데 벌써 흰머리 가득하다.
어린시절 그렇게 구박을 주었건만 오늘도 내 건강을 염려하여 곡차를 줄이라 권련줄이라 충고를 아끼지 않으니 이젠 내가 어린 애로 보이나 보다.
아무리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이지만 차가운 곡차 한병 들이키고 나니 몸이 덜덜 떨리게 춥다.
아무래도 내가 국제 양아치보다 못한 일본의 무뢰배인 아베 눔을 닮아가고 있는가 보다.
어이.... 윤채네할바이 내 잠시... 착각을 해서 함부로 욕을 했으니 이해하게나.ㅋㅋㅋ
신선의 친구인지 그냥 산속의 고양이인지 배가 부른 모양이다.
예의 바른 윤채네할바이가 산을 잘 지켜준 산산령께 감사의 표시로 먼저 고수레를 하며 던져 놓은 김치전 한조각을 냄새만 맡아 보곤 지나가고 만다.
이런 녀석들 때문에 이뿐 산새들이 고생이 많겄다.
내가 속으로 그렇게 욕을 하며 세상에서 젤로 느리게 사진을 찍으며 가고 있건만 칼바람 쌩쌩 불어오는 산등성이에 서서 나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다음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북한산 안내를 잘 해보더라고...ㅋㅋㅋ
이걸 어쩌누... 다음에는 절대로 안내를 해주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네.
청이형님14-01-29 11:09
크~! 업드리면 코닫는 곳에 보물을 두고 매일 다람쥐처럼 돌아 다녔는고... 아우야!!
북한산 숨은벽 부터 능선마다 차례대로 훝어보시게나.... 숨막힐듯한 풍광에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만사를 잊게 한다네...
이 형님은 북한산과 도봉산 암벽코스를 제외한 모든 계곡과 능선을 사자능선 빼고는 최소 대여섯번 이상씩은 오른것 같구먼...여러 산들을 다녀봤어도 북한산만한 산이 있을까 싶네....
머리허연 놈이 신선대에서 신선인냥 폼 잡고 내려왔구먼... 그 고양이가 신선일세..ㅎㅎ
고태환14-01-29 11:21
청이 아우 납시었는감.
내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을 알고는 있었다만
넘 무지하여 오늘에야 깨달았으니 다음엔 아우가 안내를 좀 해주시게나.
사진 잘 찍는 법도 가르처 주시고...
아우가 형님을 잘 받들어 모셔야 착한 사람이 된다네.
유중희14-02-09 18:45
도봉산을 지척에 두고도 이제서야 명산을 찾는 고사장이 부럽기도 하고 딱하기도 허이.
청이도 그렇고, 청이보다 늦게 시작한 나도 도봉산과 북한산에 일가견을 갖고 있으니
우리 레벨에 도달하려면
도봉산 지척에 살고 있는 고사장께서 열심히 그리고 많이 다녀 보시게.
고 사진작가에게도 많은 작품거리를 안겨줄 거리라고 믿는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