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점심을 때우고 덜덜 떨다가
열심히 걸으며 사진을 찍으니 한기가 가셨다.
이런 멋진 산을 지척에 두고
일찍부터 드나들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하다.



이런 풍광은 언제까지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시사철 이런 모습만 지켜 본다고 해도
금방 싫증이 날테고 한여름의 검푸른 녹색과 단풍이 그리울 게다.



도봉산의 하얀 속살을 헤집고 다니며
속속들이 구경을 했고 그 아름다움에 반했으니
도봉산가나 지어 부르며 시인 흉내나 내보며 한 수 읊어볼까.
도봉산가.
우뚝 솟은 장쾌한 바위 꽃마을 감싸 안고
찬서리 북서풍 온몸으로 막아 하얀눈 뒤집어 썻구나.
바위틈새 떨어진 가랑잎 한조각 디딤돌 삼아
진달래 소나무 고이 품어 강인하게 키워냈구나.
한겨울 눈보라에 가지마다 하얀 서릿꽃 맺혀도
봄을 향한 애뜻한 열정 불태우며 꿋꿋하게 버티네.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아낌없이 내주는
고고한 기상 도를 향한 봉우리라 칭하여 도봉이라 부르리.
ㅋㅋㅋ 쓰나 마나 시인에 찍으나 마나 사진가라..




산은 언제나 가만히 있지 않고
계절따라 변화하니 더욱 아름다운 것 같다.
하얗던 산이 봄이 되면 녹색으로 변하니 얼마나 신기한가.



새하얀 봉우리 능선따라 혹은 산옆구리 오솔길 따라
작은 고개 하나 넘으면 또 다시 색다른 고갯길이 이어진다.






이젠 내리막 길만 이어지며
휘어진 나목위와 바위덩어리 위에 쌓인
눈의 흑백 세상의 무늬가 아름다운 길이다.




바위 위에 고드름 길게 늘어졌고 기온이 올라가면
고향 초가집 처마에서 떨어지던 낙숫물 소리 들을 수 있겠다.




바위 앞에 홀로 서있는 단풍나무 한그루 외롭고
눈위로 솟아나온 떨기나무 한그루, 한잎 떨어진 단풍도 외롭고...
수없이 떨어진 단풍씨앗 몇개나 새싹을 튀울 수 있을라나...





아름다운 오솔길도 오래 걸으니
싫증이 났고 다리에 힘도 빠져서 등산화가 무겁게 느껴진다.
멀리 사람소리 차의 엔진 소리가 들리니 다시 도회지로 돌아왔다.




넉넉 잡아 세시간 거리를 여섯시간도
넘게 걸려 내려오니 어느듯 해거름이 되었다.
윤채네할바이는 교대로 애를 보아야 한다며
번개같이 인사를 건네고 버스로 달려가 올랐으니
나는 인사도 건네지 못했고 전철을 타고 동네의 이발소로...
이런 길다란 도봉산 산행을 마치고 하루를 보냈다.
여동생과 나는 두살차이
매제인 윤채네할바이는 나보다 한살 아래다.
외국 사람들은 누구나 이름을 부르지만
우리의 풍습은 마구 이름을 부를 수가 없고
호칭이 까다롭고 그것도 지방마다 틀리니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작은 나라에서도 지방마다 상대를 부르는 호칭이 틀린다.
경상도 북부지방에서는 같은 항열의
처남매부 지간이라면 두어살 차이는 친구같이
말까지 낮추며 친하게 지낸다. 그게 전통이고 습관이다.
그렇다고 상대를 아주 낮추는 반말은 서로 하지 않는다.
"어이... 처남 오늘 저녁에 곡차 한잔 어떤가?"
"그으래... 어디 좋은 곳 있는가? 어디서 만날까"?하는 식이니
서로 격의가 없고 편하고 친하게 지낼 수가 있으며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어린 손아래 처남이라면
나이많은 매부에게 깍듯이 형님이라 부르는 건 어느 지방이나 같을 게다.
충청도 분이 띠동갑의 열두살이나 어린
전라도 지방의 신부와 결혼을 했고 자신보다도
여덟살과 열살이나 나이가 적은 손위의 처남이 있단다.
어쩌다 처갓집에라도 가면
나이는 어리지만 손위 처남이니
반말을 하기도 어정쩡하고 처남을 부를때 곤란하고
깍듯이 존대를 하는 것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더란다.
어느날 장모분이 사위를 불러 앉히더니...
"자네는 어째서 손위 처남들을 보고
형님이라고 부르는 걸 한번도 보지 못했네.
그게 처남들을 얕보는 것 같고 예의를 갖추지 않고
처갓집 전체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몹시 서운하더라고..."
경상도 지방 같았으면..
"어이... 처남들... 이리와서 한잔하시게."라고
말했을 것이며 그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나이가 어린 아저씨나 할아버지라고 해도 나이가 많은
조카를 면전에서 대할때는 꼭 존칭을 사용해야 한다.
그 나이많은 손아래 처남이 하는 말이다.
"에이... 더러워서... 원...
애들보고 형님이라 부르라니...." 하며 푸념을 했다.
내가 옆에서 이 말을 듣고...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시고
전라도로 장가를 갔으니 형님하고 부르면 문제가 없지요."
어느 게 옳다 그러다가 아니고
그 지방의 오래된 관습이 그러하다면
상대의 비위를 거스러지 말고 지키는 게 옳을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상대를 대할때 부르는 호칭은 대단히 중요한 것 같다.
열살이나 아래인 사람보고 형님이라 부르라
윽박지르니 괜히 마음이 껍껍하고 처가를 멀리하게 되었단다.
여동생이 결혼을 할때 나는 군대에 있었다.
어머니께서 매제를 보고
"어이... 김서방, 군대에 가있는 자네 처의 오빠가 있네.
나이도 비숫하니 제대하고 오면 친구같이 친하게 지내면 될 것일세."
도봉산에 오르며 세시간을 넘게
기다리게 해놓고도 내가 뻔뻔스러울 수가 있는 게
그런 친함과 배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상대를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 예의를 지키는게 아닌가?
구엽기만 한 손자가 할바이 수염을 쥐어 뜯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