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나는 왕보다 높은 사람.   14-02-25
글쓴이 고태환   1,833 hit
 
2월9일날 찍은 창경궁의 사진으로....

8일날이 토요일이었고 큰놀부 시집보내는 날이었고
오후부터 결혼을 축하하는 양 함박눈이 흐드러지게 내렸었다.

내가 결혼하는 게 아니니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아비된 죄가 커니 나갈 수는 없고 식장을 지킬 수밖에 없어 답답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과음을 해서
머리가 무겁지만 다음날 새벽에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창경궁으로 낙찰을 보고 내가 조선의 왕이
거닐던 곳으로 가서 내가 왕이 되어 설경을 감상해 보기로 하고서...
















































정각 9시는 되어야 개장을 하고
20분정도 일찍 도착했으니 궁과 접해 있는
국립과학관 안으로 들어가 잠시 궁밖에서 넘보고...

아마 이곳도 예전에는 궁이었을텐데
격동의 역사가 지나며 궁이 축소되어 과학관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어제 눈이 적당히 내렸고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도 불지 않아 쌓인 눈이 가지마다 하얗게 얼어 붙은 게 장관이다.















































벌써 많은 진사분들과 궁 가까이 사시는 분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고 궁안으로 들어오니 설경이 그만이다.















































우선 왕같이 천천히 걸으며 춘당지 쪽으로 향한다.

시내 중심가에서 이런 설경을 구경할 수가 있는 게 큰 행복이다.
















































길 양쪽에 펼처진 나뭇가지마다
눈이 하얗게 쌓여서 나의 마음을 황홀하게 한다.

이런 멋진 경관은 옆에 누가 있어서
함께 감상하며 함께 감탄사를 연발해야 
기쁨이 더한 법인데 혼자인 것도 재미가 반감한다.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니 모두가 바쁘단다.

예전의 왕이었다면...

"전하... 옥체 건안하시온지요?
간밤에 많은 눈이 내려 온천지가 새하얗게 변했나이다.
어서 밖으로 납시어 멋진 경관을 참관하시고 정신을 가다듬어소서."

"과인이 어제 전라도 관찰사가 올린
상소문 생각에 잠을 설처 머리가 무겁느니라...
짐이 나중에 돌아볼 터인즉 그만 조용히 하고 물렀거라."
















































내린 눈이 많지 않으니 길을 쓸지 말았으면 좋겠다만
관리인들이 눈을 쓸어내 자국을 내놓고 말았으니 아깝다.

이번에 내린 눈은 습기를 머금은 습설이어서
마치 높은 산에나 맺힐 법한 서릿꽃이 같이 달라 붙었다.

아마 낮은 평지에서는 보기 드문 눈꽃이기도 하다.


























































하늘도 서서히 맑아지고 있는 것 같고
새하얀 눈꽃이 더욱 하얗게 빛을 발하며 변해간다.

"전하... 지금 해가 중천이옵니다.
이제 나뭇가지의 눈이 녹아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으며
조금 후면 눈꽃은 보이지 않고 나목만 남을 것이옵니다."

"허허... 과인이 어제 과음을 했다지 않더냐?
어찌 이리도 성가시게 굴고 있더냐? 물러가 있거라."

아마 왕이었다면 온갖 상소문을 읽어야 하고
정적을 감시해야 하고 외척들과 비들을 다스리느라
이런 경관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나는 세상사 온갖 시름을 버리고
왕보다 더 행복하게 새하얀 꽃눈을 구경하며
궁안을 거닐 수 있으니 내가 왕보다 더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멋진 경관을 옆에 두고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이런 불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요즘 정도전 사극을 열심히 본다.

나에게 왕을 하라면 절대 사절하겠다는 마음이 절로 나온다.

대신들의 상소가 잇다르고
언눔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해야 하고
어느 신하가 힘을 길러 자신을 배반할지 몰라
전전긍긍이며 신하가 항상 왕의 자리를 넘보며 목숨을 노리니
어느 한순간도 마음편할 날이 없으며 잠도 편하게 잘 수가 없을 것 같다.

허나 나는 왕궁을 홀로 거닐며
행복감에 젖어 있으니 왕보다 높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과한 권력은 언제나 불행을 앞세우고 있으며
과한 부를 축적해 두면 자식들 재산싸움을 일으키게 만들고
과한 지식은 저절로 사람의 마음을 왜소하게 만들어 소심하게 되며
과한 욕심은 남들과 비교하여 무엇 하나라도 모자람이 많아지게 만든다.


나같이 멍청한 사람은 너무 무지하니
천방지축을 모르고 날뛰며 항상 행복하게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