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반찬투정.   14-02-27
글쓴이 고태환   1,946 hit
 
창경궁의 하늘이 개이는 줄 알았더니
동쪽에서 부터 서서히 구름이 몰려 오며 션하게 개이지 않는다.

눈오고 난 다음날 하늘이 파랗게 빛나면 얼마나 좋으랴만...

























































춘당지 한바뀌 돌자니  나목에 쌓인 눈이 너무 예쁘다.





























































































내가 왕이었다면...

"여봐라... 그기 누가 있느냐?
과인이 오늘 기분이 매우 좋느니라.
하여 춘당지 가에 앉아서 주연을 열고자 하니
판서들은 모두 모이라 이르고 피양에 가서 황진이를 데리고 와
짐을 위해 가야금을 뜯고 시조를 읊고 주안상 받들라 이르면 어떠 하겠느뇨?

기왕이면 김삿갓이 어디쯤 있는지
알아보고 데려 왔으면 좋겠다만 여의치 않으면 
허난설헌이라도 모셔와 시조라도 한 수 읆으라 이르라."

이런 곳에서 거창한 주안상과 황진이를
불러다 놓고 시조라도 한수 읊으며 기분좋게
곡차라도 한잔 기울일라치면 대신들의 상소가 잇다를 테고
왕비의 눈치가 매서울테고 좌불안석일테고 흥이 나지 않을 것 같다.

금방 마음이 바뀌어...

"날이 차갑구나 짐이 고뿔들까 겁나니
따뜻한 교태전으로 가려하니 그쪽으로 주안상을 옮겨 놓거라."

에구... 에구... 왕도 싫고 권력도 싫고 과인도 하기 싫다.
어디 마음 한구석이라도 편해야 왕을 해먹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닌가.

































































사시사철 푸르른 녹음만 보아온
상하의 나라 열대지방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정말로 신기하고 이상한 나라에 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필리핀의 야외를 나가면 항상 푸르름만 있고
변화가 없고 언제나 똑 같은 풍경이니 이도 지겹게 보였었다.

사계절이 뚜렸하여 항상 풍경이 변하니 이 얼마나 신기한가.











































































시골에서 올라와 처음으로 창경궁에 가서
명정전의 방안을 들여다 보았을때 엄청 넓었었다.

너무 휑하니 넓으니 외풍도 심할 것 같고
한겨울 밤이면 추워서 어떻게 지낼까 궁금했었다.

이곳에서는 왕이 어전 회의나 하는 곳이지
잠을 자며 기거하는 게 아니라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어릴때 삐지기만 하면 다락이나 장롱속 같은
밀폐된 곳에 숨어서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것이라며
혼자서 킥킥 웃으며 나만의 공간속에서 만화책같은 것을 읽곤 했는데
좁은 공간에서 꼭꼭 숨어있는 게 참으로 편안하고 좋았을 때가 있었다.

왕이 어릴때는 숨을 곳도 없어서 불편했었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때로는 드넓은 곳의 허전함보다
내 몸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비좁은 공간이
안락해질 때가 있는 게 엄마 뱃속에서 부터 길들여진 탓이라 한다.
























































창경궁 설경에 취해서 마구 셔트를 누르며
다니다 보니 벌써 출근 시간이 훌쩍지나고 말았다.

까짓거 가게를 열지 않는 곳도 많은데
오늘은 천천히 출근하기로 작정을 하고 나머지도 천천히 돌아보기로 하고...



가끔은 여자가 부러울 때가 많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부엌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입맛에 당기는 걸로 요리를 하게 마련일 게고
내가 반찬을 만든다 할지라도 내 입맛에 맞는 걸로 할 게다.

어떤때는 내가 먹고 싶은 게 있어서 건의를 하면
남자가 꽤죄죄 하게 무슨 반찬투정을 하느냐며 핀잔을 듣기 일수다.

하여 되도록이면 암말도 하지 않고 주는대로 먹어며 지냈다.

볼록배 아줌마는 큰 놀부를 시집 보내고 나서도 
나같이 걱정이 되는지 항상 좌불안석인 것 같이 보인다.

항상 집이 텅텅 빈 것 같은데
오늘 곰부따를 가지러 들린다하니
아침부터 여러가지 밑반찬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게
큰 놀부에게 들려 보낼 모양인 게 분명하고 웬지 섭섭하게 느껴진다.

식사도 여럿이 둘러앉아 먹으면
더욱 맛도 좋은 법인데 달랑 둘이서만 먹으니
먹는 맛과 재미도 덜한 것 같은데 찬까지 확 줄어들었다.

달랑 김치찌게 한냄비와
시어터진 파김치와 물미역과 초장이 전부인데
놀부에게 들려보낼 찬을 열심히 만드는 걸보니
이젠 내가 쓸모가 없어졌다는 생각까지 드니 내가 삐진 모양이다.

아무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이들면 쉽게 삐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제부터 내가 밥을 해서
내가 먹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으니
서서히 요리 공부도 하며 지내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요리도 예술이고 내 건강은 내가 스스로 챙겨야할 것 같다.

오늘은 닭한마리 사다가 대추넣고
생율 넣고 마늘 넉넉하게 넣고 푹푹 고아 내고
그 국물에 쌀 씻어 넣어 끓여내면 닭죽이 될 게 아닌가.

여기에 곡차까지 곁드리면 더욱 좋을테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성들여 상을 차려냈는데
이젠 아줌마에게 잘 얻어 먹기가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나 내가 먹고 싶은 걸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