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처서도 지나고 백로도 지났으니
더위가 물러가고 기온이 떨어져 선선해졌고
비로소 이슬이 하얗게 내려앉는 계절이 왔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이 빈다고 했는데
곡식이 잘 여무는데 방해가 된다는 는 뜻인 것 같고
처서가 지나고 나면 모기도 입이 비뚫어진다고 했는데
이눔의 모기는 백로도 지났건만 여전히 극성으로 달려든다.
요즘도 산길을 다니며 사진을 찍자면
하루평균 대여섯번은 물려서 몹시 가렵지만
모기도 먹고 살아야하고 나는 면역을 기른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새벽에 신문을 다보고 나니 날이 환하게 밝았다.
비가오니 산길로 가지 말고
마을버스를 타고 갈까 망설이다 일찍 집을 나왔다.
형형색색의 우산을 쓰고서 등교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싱그럽게 보이고 비가 와야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며칠전에 비가오지 않아 송이버섯 채취하는 분들이
걱정이 많다고 했더니 때 맞추어 흠벅 내려주니 다행이지만
벼농사 밭농사 짓는 분들은 곡식이 여물지 않을까 걱정이겠다.
하늘은 언제나 공평하지만 짚신장수와 나막신 장수가 있게 마련이다.
이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목적과
꼭 공부를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학교 다닐때나 지금이나
그 부분에 있어서는 별로 나아진 것이 없이
부모의 강압에 의해서,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분만 있지
그저 목적과 재미도 없이 왔다갔다를 반복하는 학생들도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러했고 중년인 지금도 무얼 모르고 살아가고 있으니...
아무리 내 얼굴이 뻔뻔하다 할지라도
노인분이나 초등학생이면 괜찬겠지만
요즘 여고생들은 치마가 점점 짧아져서
민망스러울 때가 많고 사진을 찍다가 치한이라 덤터기를 쓸까 겁이난다.
산길로 접어 들었다.
25년 전쯤에 심어 놓았던
플라타너스나무가 우람하게 컷는데
무슨 연유인지 며칠전에 싹둑 잘라버려서 아깝다.
큰 둥치 곁에서 여린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걸 보니
대단한 생명력이 아닐 수 없고 다시 큰 거목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하는 어른들이 뒤엉켜
우산 전시장 같고 참으로 다양하고 예쁜 우산들이 많기도하다.
요즘 우산은 참으로 현란하게 칼라풀하고 예쁘져서
아이들은 비가 와도 우산 쓰고 폼잡으며 다니게 되어 즐겁겠다.
어렸을때 대나무 살에 아주 얇은 비닐을 덮은 우산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뒤지어지기
일수였고 아무리 조심스럽게 사용해도 두어번만 쓰고 나면
약한 대나무 살대가 부러지거나 비닐이 찢어져서 못쓰게 망가졌었다.
태풍이 불어오고 세찬 비가 내리는 날
들 한가운데를 지나는데 우산이 확 뒤집어져서
모두 망가져 버렸고 비를 몽땅맞고 등교를 했었다.
많은 아이들의 옷이 모두 흠벅 젖었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데 너무 칙칙하고 춥고 떨렸다.
그래도 학교가 파 할쯤에는 옷이 다 말랐고
추위도 가시고 옷이 보송보송해졌으니 기분은 좋지만
우산이 망가져 버렸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망가진 우산을 들고 집에 들어서면
틀림없이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었고
변명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야단을 맞지 않으니
대부분이 잊어버려서 없어질게고 부모들이
너무나 잘 챙겨주니 야단맞을 걱정도 하지 않는다.
요즘은 어디에나 흔한 게 우산이지만
예전에는 그 비닐 우산마져도 살 수 있는 형편이 못되는
아이들은 아침부터 비를 맞으며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예전에 못살땐 우산 하나에도 좋은 추억이 많은데
요즘 아이들은 우산에 대한 추억이라곤 전무할 것 같다.
비가 오니 색색의 우산을 쓰고 가는 풍경도 운치가 있다.
요즘은 일기예보가 아주 정확하고 부모가 다 알아서
미리 우산을 챙겨주니 등하교때 비를 맞을 염려가 없다.
한여름에 국지성 호우가 내릴때가 있다.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오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었고 들판이니
어디 비를 피할 곳도 없고 절대로 책이 젖으면 안된다.
당시에는 가방이 없었으니
보자기에 책과 공책과 필통을 싸가지고 다녔고
책보따리를 등에 메고 쏟아지는 빗속을 힘차게 뛰면
필통속에서 연필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아무리 힘차게 달려도 책과 옷이 흠벅 젖을 수밖에 없다.
옷을 입은채 물속에 뛰어 들어갔다가 나온 폼으로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 가로되...
"야는!! 야는?? 아이구!! 이 웬수야...
책보따리를 메고 물속에 들어가면 우짜노?"
단박에 부지깽이 세례가 날아 들라치면 밖으로 줄행랑을 처야한다.
항상 너무나 많은 거짓말을 했으니
어머니께서는 내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어주지 않았으니 변명도 필요없고 멀리멀리 도망치는 게 최고였다,ㅋㅋㅋ
그리고 두어시간정도 신나게 놀다가
숙제한다고 집에 들어서면 미소로 반겨주시며
빨리 숙제나 끝내놓고 놀라고 하시며 간식을 챙겨주셨다.
그 어머니는 지금 땅속에 계시고 비가 스며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아이들의 등교 시간도 아주 딱맞추어 끝이난다.
불과 십여분 사이에 모두 등교를 했는지
아이들이 보이지 않고 어른들이 가끔씩 보인다.
예쁜 우산이 아름다운 비오는 날의 아침 풍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