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L VER.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 / 하이엔드 앰프의 대명사
마크 레빈슨 사운드(Mark Levinson
Sound)
이제껏 오디오의 세계에서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 이라는 브랜드는 하이엔드 사운드를 대표하는 제1급의
품질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최고급 오디오를 칭하는 대명사로서 사용되어 오고 있다. 이것은 1970년대 이후 하이엔드
오디오 장르를 개척해온 실세 가운데 음질과 성능, 그리고 고품격 브랜드 이미지를 가장 오래도록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는
마크 레빈슨의 가치와 위용을 입증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마크 레빈슨의 절대적 위상과 가치는 디지털 오디오 시대가 도래한 현재에도 당당한 위세와 건재한 실력으로 여타 오디오
브랜드들을 압도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하이엔드 오디오로서 하나의 신화를 이룩해 가는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성장과
발전을 더듬어보면서 그 경이적인 성가와 음질을 가늠해본다.
하이엔드 장르를 개척해온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의 저력
실상 하이엔드(High-End)라는
오디오 장르는 본격적인 트랜지스터 앰프 시대로 접어들면서 주로 1970년대 이후 대거 등장했던
미국의 앰프 메이커들에 의하여 그 기반이 마련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웨스턴 일렉트릭(WE)이
주도하던 초기 오디오 시대의 발전 이후 알텍, JBL, 일렉트로 보이스(EV)의 스피커 사운드는
물론 마란츠나 매킨토시로 대변되었던 진공관 앰프 전성기에도 장인 정신과 수공 제작의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격 하이엔드 지향이라 할, 절대적 성능과 음질의 추구를 집약시키는 오디오의
개념은 분명 최고급 트랜지시터 앰프 기술에 적용되기 시작했던 첨단 기술력의 구현과 초호화판 개발,
제작 방식이 유행함에 따라서 도입되었다. |
|
마크 레빈슨의 첫 번째 프리 앰프 LNP-2 |
당시 초일류의 사운드 개발을 시도하면서 하이엔드라는 오디오 장르를 열기 시작했던
앰프메이커들의 주류를 살펴보면, GAS, SAE, AGI, Phase Linear, 스레숄드, 마크 레빈슨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와 흐름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대출력, 고성능 파워 앰프를 내세워 최고급 앰프술을 선도했던 GAS,
SAE, AGI, Phase Linear 등은 일세의 풍미를 거쳐 시대의 뒤 편으로 사라져 갔다.

마크 레벤슨의 초창기 프리,파워 앰프의 성과는 하이엔드
오디오 앰프의 발전 이력과 형식 완성을 이루어왔다. |
|
마크 레빈슨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스레숄드는 하이엔드 오디오 앰프의 황제로서 군림하며 다른 하이엔드 앰프 브랜드의
규범적 존재로 활약하였으나, 근래에 최정상의 아우성이 무너지면서 오랜 부동의 위치가 무너진 바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십 수년 동안 스레숄드는 하이엔드 오디오 앰프 분야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기술과 음질로 난공불락의 최정상을 지켜온 아성을 구축해 왔으나, 창립자였던
닐슨 패스 및 르네 베즈네가 떠난 1990년대 초반 이후 정체와 퇴조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비교적 후발 주자인 마크 레빈슨은 시대의 발전을 따라 기복 없이 성장과 발전을 지속하면서
점차 하이엔드의 명가로서의 위치를 더욱 더 굳건하게 지켜오고 있다. |
|
마크 레빈슨은 1980년대 중반 한 때 위기를
맞았던 적도 있었으나 ‘마드리갈 체제’로의 변신에 힘입어서 새로운 도약에 성공하였으며, 오디오 리서치(Audio Research)라는
선배와 크렐(Krell)이라는 후배의 협공 속에서도 독자의 영역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굳건하게 지켜오고 있다. 이런
저멩서 하이엔드라는 오디오 장르를 열어온 실세 중의 하나로서 오늘날까지도 그 위세와 가치를 여실히 이끌어오고 있는
마크 레빈슨의 하이엔드 사운드는 실로 저력의 산물이 아닐수 없다.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출발
오늘날 하이엔드 오디오를 선도하고 있는 ‘마크 레빈슨 (Mark Levinson)’의 브랜드는 마크 레빈슨이라는 걸출한
오디오 디자이너 개인의 출중한 안목과 정열적인 집념이 이룩한 결과이다. 유태계 아버지의 현명함과 독일계 어머니의 치밀함을
이어받은 마크 레빈슨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 만지는 것에 심취하여 10살대부터 트럼펫을 연주하는 습관을
가졌으며, 1969년 이후 4년간은 캘리포니아에서 인도 악기에 대해 공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마크 레빈슨의 음악적 취향은 장래 세계의 하이엔드 오디오 업계를 휘어잡는 출중한 오디오 다지아너로 성공하게
된 바탕이었던 셈이다.
미국 내 하이엔드 앰프 브랜드의 태동기였던 1971년부터
마크 레빈슨은 드디어 음악과 오디오 에 대한 열정과 친구의 협력을 바탕으로 집에서 오디오 제작을 시작하게 된다.
최초의 모델은 1972년에 선보인 카트리지 전용 프리앰프인 JC-1인데, 이는 1974년에 완성한 프리앰프 JC-2의
바탕이 되었던 모델로 마크 레빈슨이 기획하여 개발해낸 첫 번째 작품이다. 마크 레빈슨 자신은 본래 전자 회로를 전공한
회로 기술자가 아닌 까닭에 초기부터 주위의 오디오 엔지니어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아왔다.
당시 스레숄드가 경이적인 고성능, 고출력의 파워
앰프를 앞세워 하이엔드의 고지를 점령해간것에 비해, 마크 레빈슨은 유례없는 고특성을 이룩한 프리앰프 LNP-2의 성가와
평판을 바탕으로 하이엔드의 기틀을 잡은 셈이다. LNP-2 프리앰프에는 리차드 바우엔이 개발해낸 LD-2와 UM-201이라는
두가지 타입의 모듈이 채용되어 있다. 마크 레빈슨 앰프의 모듈러 증폭단은 하나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스레숄드가 하이엔드 파워 앰프이 최고봉으로,
마크 레빈슨이 하이엔드 프리앰프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것도 바로 이 같은 출발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스레숄드의 성공이 닐슨 패스의 기술적인 처냊성과 르네 베즈네의 아름다운 디자인을 바탕으로한 것이라면, 마크 레빈슨의
초기 성가는 당대 최고의 회로 엔지니어 중의 한 사람인 ‘리차드 바우엔 (Richard Burwen)’의 기술 경험을
원동력으로 해서 마크 레빈슨의 탁월한 안목과 기획력이 만드러낸 성과이다.
 |
마크 레빈슨 최고의 모노럴 파워 앰프 No.20.5는
과거 하이엔드 오디오 애호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
마크 레빈슨의 초기 발전
리차드
바우엔과 손잡은 마크 레빈슨은 LNP-2 프리앰프의 성공에 힘입어 일련의 파워 앰프 모델라인을
출시하게 되었다. 이들 초기의 마크 레빈슨 파워 앰프 모델들 역시 모두 하엔드 파워 앰프의 기틀을
만들어 가는 마크 레빈슨 사의 초기 발전에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1977년 순 A급 증폭의 25W급 모노럴 파워 앰프 ML-2의 개발을 시작으로 1979년 AB급
증폭의 200W/CH 출력의 듀얼 모노럴 스테레오 파워 앰프 ML-3의 출시는 1981년 AB증폭의
100W/CH 출력의 스테레오 파워앰프 ML-9와 1982년 50W/CH 출력의 스테레오 파워
앰프 ML-11로 이어진다. 마크 레빈슨의 초창기 이 모델 라인은 당시로서는 저마다 고급 파워
앰프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한편 LNP-2의 개가로 시작된 마크 레빈슨의 초고급 프리앰프의 모델 라인은 1977년 선보인
ML-1 스테레오 프리앰프로부터 1979년에 완성한 완전 모듈러 프리앰르 ML-7(A)를 거쳐서
유일한 전원부 내장형 프리앰프로서 1981넨에 개발된 ML-10(A) 프리앰프와 밸런스 컨트롤을
생략한 대신에 2개의 볼륨 컨트롤을 가지는 1982년 발매의 ML-12(A)프리앰프로 완성되어진다.
마크 레빈슨은 발전 초기부터
기능 면에서 톤 컨트롤을 비롯한 음질 조절부의 과감한 생략을 주도하거나 완전 모노럴 구조의 프리앰프
및 듀얼 모노럴 설계의 파워 앰프를 개발하면서 하이엔드 앰프의 단순화 회로 골격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RCA라인 입출력 단자 및 커넥터를 사용하는 기존 하이파이 기기의 불완전한
접속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케멕(Camac)이라는 특수한 단자를 채용하기도 했다.
마크 레빈슨의 모델에는
초창기부터 줄곧 통상의 언밸런스 타입의 RCA형 접속 단자 대신에 보다 접속력이 확실한 의료
기기용 케멕 단자를 사용하였는바. 성능의 신뢰도를 높인 효과는 컸지만 사용자들은 케멕 어댑터를
별도로 준비해야 하는 등의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
|
 |
미드리갈(Madrigal)체제의
도입
1970년대 초에 출발하여 1980년대 초까지 비약적인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하이엔드 앰프 메이커의 골격을 다져온
마크 레빈슨은 1980년대에 들어서 회사의 발전이 정체하면서 경영권을 둘러싼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된다.
이는 급기야 법정 투쟁으로 비화되어서 결국 창립자인 마크 레빈슨이 회사를 떠나게 되는 비운을 맞게 되는데, 이 때에
회사를 이어받게 된 마크 글레이저(Mark Glazier)를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회사 내 잔류 그룹은 ‘마드리갈(Madrigal)’
이라는 기치 아래 ‘마크 레빈슨’의 재건을 시도하게 되면서 마크 레빈슨은 제 2이 발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마드리갈 (Madrigal)’은 회사이 재건을 위한 일단의 모임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로써 ‘마크 레빈슨 오디오
시스템(MLAS, Ltd)은 ‘마드리갈 오디오 연구소 (Madrigal Audio Laboratories, Inc)’로
회사 명칭을 바꾸고 새로운 경영 체제로 재출발하게 된다.

초기의 마크레빈슨 오디오 시프템은 1985년 마크 그레이저가 이끄는
마드리갈 오디오 연구소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
1972년 마크 레빈슨에
의하여 창립된 ‘마크 레빈슨 오디오 시스템(MLAS, Ltd)’ 은 1984년 현 사장인 맠
글레이저와의 경영권에 대한 법정 투쟁을 거쳐서 1985년 1월 ‘마드리갈 오디오 연구소 (Madrigl
Audio Laboratories, Inc.)’로 회사 명칭을 바꾼뒤, 새로운 경영진에 의하여
주도되어오고 있다. 이때에 회살ㄹ 떠난 마크 레빈슨은 자신의 이름을 딴 ‘마크레빈슨’ 이라는
오디오 브랜드 명칭을 마드리갈 사에 넘겨주고, 본인은 리차드 바우엔의 재 협력에 힘입어 ‘첼로(Cello)’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재기에 나서게 된다.
한편 마크 레빈슨의 브랜드와
회사를 인수한 마크 글레이저는 창립자인 마크 레빈슨에 이어서 제2의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기획자이자
탁월한 오디오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
|
|
1985년 이후 마크 글레이저가 이끄는 마드리갈은
승승장구하면서 최고의 오디오 브랜드로서 독보적 입지를 강화하는 아이엔드 시화를 구축해나간다.
이 가은 마드리갈 체제로의 변화는 마크 레빈슨의 제2전성기로의 화려한 비약에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나아가 1988년
PCD CD 플레이어의 출시를 기점으로 마크 레빈슨에 이은 보급화 브랜드인 ‘르로시드(Proceed)’를 도입하여
성공시키는 등 하이엔드 디지털 오디오 메이커로의 변신과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
마크 레빈슨 No.26 프리앰프와 No.20.6 파워 앰프 조합은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황금기 절정을 이루던 최고의 매칭이다. |
마크 글레이저(Mark Glazier)의
등장
마크 레빈슨 사운드가 초기의 발전과 전성기를 넘어서서 다시금 제2의 도약과 1980ㄴ녀대 들어서서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마크 글레이저가 진두지휘한 마드리갈 체제의 조직적 기획력과 합리적 제조 및 경영 관리
덕분임에 틀림없다.
1953년 뉴욕 북부의 세라큐스에서 태어나 마크
글레이저(Mark Glazier)는 음악을 전공한 부모의 영향 하에서 어려서부터 음악과 오디오에 심휘하였으며, 1971년부터
1975년까지 뉴욕의 대학에서는 음향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마크 글레이저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분위기에 젖은 환경에서 자라난 결과, 학창 시절부터 오디오 업계의 아르바이트를
경험하였고, 오디오에 심취하여 음향 심리학을 전공하였다고 한다. 대학 시절부터 벌써 학부 신문에 ‘사운드 어드바이스(Sound
Advise)’라는 오디오 칼럼을 기고했던 그는 오디오 숍과 오디오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을 시작으로 오디오
업계에 발을 내딛게 된다.
대학 3,4학년 여름방학에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튼 라이튼 사에서 아르바이트 근무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대학 졸업후에
데이튼 라이튼 사에 입사하여 정식 근무하게 되었던 마크 글레이저는 곧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당대 최고의 하이엔드
오디오 업체인 스레숄드 사에 입사하여 4년간 근무하게 되었다. 이 당시의 경험은 후에 마크 글레이저가 마드리갈의 성공적인
지휘자로 활약하면서 마크 레빈슨을 정상의 브랜드로 만들어가게 되는 데에 있어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의 데이튼 라이튼 사은 1970년대 초 중량급의 대형 콘덴서 스피커 시스템의 개발로 화제를 모았던 캐나다 토론토의
오디오 업체이다. 마크 글레이저는 대학 시절 이 데이튼 라이튼 사에서 아르바이트 근무하던 당시, 데이튼 라이튼 사의
정식 엔지니어였던, 혀재 크렐의 사장이자 창립자인 대니 다고스티노를 만나서 교분을 갖기도 했다고 한다.
스레숄드(Threshold)라는 최고의 명문에서
하이엔드 오디오의 개념과 기술을 섭렵한 마크 글레이저는 오디오 업계의 친구가 권유함에 따라 1981년 12월 드디어
마드리갈의 전신인 마크 레빈슨 오디오 시스템 사에 입사하게 된다.
마크 그레이저는 전자 회로를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은 아니지만, 음향 심리학을 전고한 이점과 하이파이 사운드를 연구하기
위해 2개의 학부 과정을 수료하는 정도의 열정의 소유자이다.
마크 레빈슨의 황금기 No.20시리즈
마드리갈의 마크 글레이저(Mark Glazier)는 마크 레빈슨과의 법정 투쟁의 승리와 더불어 1985년 ‘마크 레빈슨’이라는
앰프 브랜드를 합법적으로 전격 인수하면서 미국 제일의 오디오 메이커이자 세계 최정상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로서 마크
레빈슨 사운드를 이끌어 왔다.
물론 이는 20세기 최고의 오디오 디자이너인 마크 레빈슨의 기술과 평판의 후광을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그 성공의 이면에는 정상을 유지할 수 있는 마드리갈 자체의 기술 자산과 개발 경험축적을 실현시킨 마크
글레이저의 비상한 역량이 뒷받침된 것이기도 하다.
1986년 마드리갈 체제로서는 첫 번째 모델이자 No. 20 시리즈의 시작기인, 100 W급 모노럴 타입의 N0.
20 파워 앰프를 시발로 마크 레빈슨의 제 2세대 전성기가 개시되는데, 이는 마크 레빈슨 사운드를 진정한 하이엔드의
정상으로 끌어올리게 되는 전성시대 개막의 신호탄이 되었다. 다시 1987년에 200W/CH 출력의 듀얼 모노럴 스테레오
파워 앰프 No. 23을 선보인 후, 1988년에는 지금까지도 가장 우수한 하이엔드의 명품으로 인정받고 잇는 마크
레빈슨의 간판 급 프리앰프 No. 26을 발매하였다. 역시 같은 해인 1988년에는 No. 20의 업 버전 모델인
100W 출력의 모노럴 파워 앰프 No. 20.5가 완성되었다.
1989년에는 100W/CH 출력 듀얼 모노럴 스테레오 파워 앰프인 NO.27 이 소개되었으며,
1990년에는 다운 버전의 50W/CH 출력 듀얼 모노럴 스테레오 파워 앰프인 NO.29를 비롯하여 NO.23의 업
버전 모델인 200W/CH 출력의 듀얼 모노럴 스테레오 파워 앰프 NO.23.5와 새로운 다운 버전의 프리앰프 NO.28이
선보여졌다.
1991년에 들어서서는 NO.26을 업그레이드한 테플론(Teflon) 소재 기판(PCB) 채용의 No.26S(L)이
완서되었다.
이후 1992년에도 NO.20.5의 업 버전 모델인 100W 출력이 모노럴 파워 앰프
NO.20.6과 NO.27의 업 버전 모델인 100W/CH 출력의 모노럴 파워 앰프 NO.27.5가 추가로 완성되지만,
이미 1991년부터는 디지털 오디오 시대를 향한 제 3세대 마크 레빈슨 사운드이 도약을 상징하는 NO.30 시리지의
개발이 개시된다.
1991년 마크 레빈슨으로서는 최초의 레퍼런스급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 NO. 30을 개발되었고, 1992년에는 역시
최초의 레퍼런스 CD 트랜스포트인 NO.31과 디지털 시그널 프러세서 NO.35의 추가 개발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제3세대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도약(跳躍)
현재
마드리갈의 마크 레빈슨은 미국을 대표하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빅3(BIC 3) 가운데 핵심으로서
최고의 하이엔드 브랜드라는 확고한 위치를 다져오고 있다. 현재 미국 하이엔드 오디오 앰프의 빅3
상호간이 역학 관계를 보면 도디오 리서치의 아성과 마크 레빈슨의 수성, 그리고 크렐의 분발로
구성된다.
그러나 본래 과거 마크 레빈슨의 관록과 명성은 아날로그 시대의 오디오 앰프 전문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하므로 기존 마크 레빈슨의 브랜드 하나만으로 작금의 디지털 오디오 시대에 있어 첨예한 발전
추세 전부를 수용하고 담아내기에는 다소 부담스런 부분이 있었다.
마드리갈 사는 마크 레빈슨을
잇는 제2의 브랜드로서 ‘프로시드(Proceed)’를 내세우면서 보다 대중적인 고급 지향 모델의
도입으로 하이엔드의 보급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편, 첨단 하이테크 오디오 장르를 개척하려는 마크
레빈슨 자체의 개혁 수단으로서 프로시드 사운드의 실험을 시도하였다. 이것은 기존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위험을 피하면서 디지털 오디오 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실세가 되고 있는 하이테크 관련 디지털
오디오 기술을 전략적으로 도입히여 마크 레빈슨 사운드 전반을 개혁하려는 발전적인 시도였던 것이다.
마드리갈 사의 ‘프로시드(Proceed)’
전략은 지극히 적중하여 마드리갈의 과도기적 사운드 폴리시 전환에 크게 기여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마크 레빈슨 사운드가 다시금 비약의 기지개를 켜면서 제 3세대 전성기를 맞이 할 수 있게
하는 역할까지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현대화는 십분 달성되었다.
디지털 시대 첨단 오디오
테크놀러지의 발전성ㅇ르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새로운 장르로서 하이테크 오디오 사운드이 실현에 도전하고
있는 마크 레빈슨의 제3세대 사운드는 디지털 오디오의 초기 포맷을 도입하기 시작했던 1991년
개발의 디지털 시그털 프로세서 NO. 30과 1992년 발매의 CD트랜스포트인 NO. 31 및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 NO.35를 서막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
|
제3세대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주축을 이루었던 No.30 시리즈
모델의 내부 레이아웃 |
제3세대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전성기(全盛期)
디지털 사운드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되었던 NO.30 시리즈의 개발과 제3세대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전성기는 1993년에
선보여진, 원격 조종 기능의 NO.38 프리앰프의 완성을 통한 앰프 사운드의 혁신을 원점으로 화려하게 개막된다.
초기 ML 시리즈나 제2세대의 NO.20 시리즈에서 보여온 이전까지의 마크 레빈슨 사우드의 골격은 바로 이 NO.38
프리앰프의 혁신적 변화를 기점으로 전격적인 개혁과 환골탈퇘의 변화를 보이게 되어서 1990년대 이후 마크 레빈슨 사운드는
디지털 오디오의 신세대 유행과 발전을 적극으로 수용하게 된다.
NO.38(S)프리앰프의 첫 번째 개혁과 더불어
두 번째 혁신이 되었던 것은 1994년에 발표한 300W 출력의 초대형 모노럴 레퍼런스 급 파워 앰프 NO.33의
출시였다.
마크 레빈슨의 새로운 레퍼런스 파워 앰프 NO.33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제 3세대 마크레빈슨 사운드의 종합 편이자
완성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출력, 고특성의 실현을 주목적으로 태동했던 1970년대의 하이엔드 파워 앰프류가 숙원으로
했던 궁극의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하여 마드리갈 사는 기존 마크 레빈슨의 제1세대 및 제2세대 발전 과정을 밑거름으로
하여 어댑티브 바이어스라는 마크 레빈슨 독자의 변형 회로기법을 창안해내고, 풀 밸런스 전송 및 증폭이라는 정공법으로
마감하는 양동 작전을 구사함으로써 이 NO.3 파워 앰프를 통해서 드디어 하나의 답안을 작성해냈기 때문이다.
마크 레빈슨의 제3세대 사운드 폴리시를 종합화하여
완성한 이 새로운 레퍼런스급 파워 앰프 NO.33의 완성은 1995년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다운 버전 되어 300W급의
NO.333, 200W급의 NO.332, 100W급 NO.331 모노럴 파우 앰프 모델 라인으로 계승되었다.
1996년에는 초대형 모노럴 파워 앰프 NO.33의 압축형 다운 그레이드 모델로서 150W 출력의 대형 모노럴 파워
앰프 NO.33H까지 구비됨으로써 마크레빈슨의 제3세대 사운드 골격이 완성 되어진 바 있다.
한편 1991년과 1992년에 개발된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 NO.30을 비롯하여 CD 트랜스포트인 NO.31 및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 NO.35로 선보였던
마크 레빈슨의 초기 디지털 사운드 역시 1994년 일차로 레퍼런스 급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 NO.30.5의 출시를
거쳐서 1995년에 발매된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 NO.36와 CD 트랜스포트인 NO.37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이는 다시 1996년 개발된 스페셜 에디션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 NO.36S와 레퍼런스 CD트랜스포트인 NO.31.5로
업그레이드되어 완성되었으며, 1996에는 단체 컴포넌트 CD플레이어 NO.39가 기존 디지털 오디오의 모델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이렇듯 제3세대 마크 레빈슨 사운드는 기존 아날로그 시대의 관록과 영예를 이어받은 오디오 앰프의 현대화와 디지털 오디오
시대의 추세를 반영한 디지털 오디오 컴포넌트의 혁신적 도입이라는 두 가지 측면의 실험과 검증을 거쳐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신화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 과연 21세기를 넘어서고 있는 지금 하이엔드 오디오의 궁극적 형태는 어떠한 것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을 어쩌면 마크 레빈슨 사운드가 전개해나가는 다음 행보에서 그 귀결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크 레빈슨의 초중반 프리앰프
주요 모델라인
1.
마크레빈슨 LNP-2(L) 프리앰프 :
LNP-2 프리앰프와 업 버전 모델 LNP-2은 마크 레빈슨의 진가를 알린 최초의 명기로서 고성능,
고음질 트랜지스터 프리앰프의 원형이 되었는데, 일본과 우리 국내에서도 상당히 인기를 모았던 모델이다.
2. 마크 레빈슨 ML-6(A,B) 프리앰프 : 1979년에 완성된
프리앰프 ML-6 모델은 두개의 독립된 전원부를 포함하여 두개의 모노럴 섀시 구조를 가지는 완전
모노럴 타입으로서 초창기 마크 레빈슨 프리앰프 가운데 가장 고음질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81년에 ML-6A 모델로, 다시 1985년에는 ML-6B 모델로 업 버전 되었다. |
|
 |
3. 마크 레빈슨 ML-7(A)
프리앰프 : 모듈러 타입의 스테레오 프리앰프인
ML-7 모델은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사랑 받는 고음질 프리앰프로 남아있지만, 당시에는 L2, L3, .L3A의 세가지
버전으로 소개되었다. 또 1980년 최초로 발매되었던 ML-7은 1985년에 ML-7A 모델로 업그레이드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4. 마크 레빈슨 ML-10(A) 프리앰프 : 전원부 내장형 프리앰프인 ML-10 모델은
1981년 소개된 후, 1984년에 다시 ML-10A 모델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5. 마크 레빈슨 ML-12(A) 프리앰프 : 밸런스 조절부를 생략한 단순 구조의 프리앰프
ML-12 모델은 1982년에 완성된 후, 다시 1984년에 독립된 PLS-124 전원부를 가지는 ML-12(A)
모델로 업 버전 되었다.
6. 마크 레빈슨 NO.26S(L) 프리앰프 : 마크 레빈슨의 제 2세대 전성기를 대표하는
듀얼 모노럴 프리앰프 NO.26S(L)은 마크 레빈슨 사운드를 집대성한 아날로그 하이엔드 오디오의 명품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기존 트랜지스터 식 하이엔드 프리앰프의 최고 모델 세가지만을 꼽는다면, 스레숄드의 FET 10e를 필두로 마크
레빈슨의 NO.26SL과 제프 롤런드의 코리어런스 1 시리즈 2로 집약된다.
7. 마크레빈슨 NO.38(S)프리앰프 : 마크 레빈슨의 제3세대 사운드를 주도했던
프리앰프 NO.38은 1993년에 개발되었는데, 이듬해인 1994년에는 업그레이드한 스페셜 에디션으로 NO.38S
프리앰프가 소개되었다.
- HIFI 명기백선(영진닷컴. 김종룡 저) 중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