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함과 소박함을 아우르는 자연스러움의 세계 Soliton Lyra Series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금으로부터 꼭 5개월 전에 필자가 푸념처럼 내뱉었던 소원을
엉겁결에 이룬 소감부터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푸념은 무엇이고, 소원은 또 무엇인가?
그 사연을 이야기하려면 필자가 본지 2009년 5월호에 기고한 엠씨랩의 솔리톤 라이라
인터커넥트에 대한 시청 리포트를 쓰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필자는 작심을 한 듯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써 내려갔다.
‘ 평론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 케이블에 대한 개별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개별 케이블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기왕이면 케이블을
풀 세트로 보내 준다면, 새로운 시리즈에 담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한층 신뢰도 높은 시청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운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글을 쓴 지도 다섯 달이 흘렀다.
그런데 지금
솔리톤 라이라 케이블 풀 세트를 필자의 눈앞에 두고 있으니, 이를 두고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막상
솔리톤 라이라 케이블 세트를 보고 있으려니 이런저런 생각이 순서 없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먼저 오디오 시스템 전체를 연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풀 세트의 케이블을 보내
준 것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엠씨랩에 고맙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으니,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해 봐라!’
라고 작심하고 말하는 듯한 비장함이 느껴진다.
스피커 케이블 1조, 인터커넥트 2조, 전원 케이블 2개 등을 필자에게 보내왔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들 케이블의 가격을 떠올려 보면, 지금 이 자리에서 필자가 누리는 호사가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떠오른다.
그 이유는 이들 케이블이 하나 같이 고가이기 때문이다.
스피커 케이블이 950만원이고, 한 조에 418만원 하는 인터커넥트가 2조라면 836만원,
하나에 429만원 하는 전원 케이블이 2조라면 858만원이 되니, 이들 케이블의 총액은
2,644만원에 달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솔리톤 라이라 케이블 풀세트를 시청하는 호사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론이 길어진 것에 대해서는 독자 제현의 양해를 구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이번에 시청한
솔리톤 라이라 풀세트에 대하여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겠는가?
수차례 반복하여 이제는 다시 꺼내기도 식상한 기술 내용을 검토할 것인가?
그러나 그건 그리 좋은 생각 같지 않다.
그보다는
솔리톤 라이라 케이블 풀세트가 들려주는 단결정 케이블의 진정한 음향을 정면으로
다루는 것이 좋지 않을까?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시청에서
솔리톤 라이라 풀세트는 어떤 음향을 들려주었는가?
매직스의 세쿼이아(DAW), 벤치마크의 DAC1 USB, 할크로의 dm10·dm38 앰프 세트,
다인오디오의 포커스 360 등으로 구성된 시스템에서
솔리톤 라이라가 들려준 음향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본지 2008년 4월호에 필자가 기고한 전원 케이블에 대한 시청
리포트에 붙인 제목보다 잘 어울리는 표현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자연음향을 닮았고, 음악의 참모습을 닮은 음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 시청 작업을 진행하면서 필자는 이상의 표현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박함에서 찬란함까지, 그리고 고요함에서 지축을 흔드는 듯한 광포함까지, 그리고
섬세함에서 강고함을 간직한 예리함까지, 거침없지만 도에 지나치는 법이 없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음향을 들려주는 케이블이 바로
솔리톤 라이라라고 하면 어떨까?
도대체 음악 표현의 한계까지 음향을 몰아붙이지만, 음악 그 자체를 넘어서는 법이 없는
절제력을 갖춘 케이블 세트가 바로
솔리톤 라이라인 것이다.
이러한 면모는 시청 작업을 진행하면서 필자가 남긴 메모에 그대로 담겨 있다.
무반주 남성 합창단인 겐츠 앙상블이 노래한 영국 민요 ‘The Oak and the Ash’
(채널 클래식)를 감상하면서 남긴 메모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필자의 레퍼런스 케이블과 비교해 보면, 한층 풍성하고 자연스러운 발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음향 자체의 통일성, 집중력, 블렌딩, 명료도 등이 눈이 부실 정도로
향상된다.
보컬의 음색이 이처럼 자연스러울 수 없다.
음악 표현의 중심 음역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펼쳐지는 자연스러운 음향의 향연!!
더할 수 없이 적절한 음색의 깊이에 주목하라!’
그렇다면 기악 음악은 어떠한가? 아바도가 유럽 쳄버 오케스트라(COE)를 지휘한 슈베르트의
제9번 교향곡(DG)과 하이팅크가 로열 콘서트헤보를 지휘한 말러의
제1번 교향곡(1977년 녹음, 필립스 로컬 버전) 등의 녹음을 감상하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기고 있다.
‘COE가 갑자기 빈 필하모닉이 된 듯하다. 자연스러움, 명료함, 섬세함, 유연성, 공간감
등이 거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선율선의 지속성, 앙상블의 통일성과 집중력, 그리고 유연하게 정상까지 치솟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는 다이내믹, 과부족 없는 중량감, 화려한 현악 섹션, 인위성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자연스러운 음향 조형…’ (슈베르트/제9번 교향곡)
‘음향 표현의 적극성이 살아난다. 전향적 발성, 그러나 과도한 법이 없다. 세련미와
우아함의 유연한 조화!
언뜻 완벽하게 튜닝된 빈티지 시스템을 대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관능미 넘치는
음색! 흡인력이 대단한 좋다. 역시 음향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를 연출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케이블 세트.
피아노에서는 명료하면서도 유연한 표현력, 포르테에서는 장대한 스케일과 강력한 폭발력을
연출하지만 여유가 살아 있다.
아! 금관 섹션의 찬란한 음색이여!’(말러/제1번 교향곡)
이만하면 최고의 찬사라고 해도 좋으리라.
그러나 이번 시청 작업을 진행하면서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감상한 녹음은 페트라 뮐레얀스가
지휘하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KV136
(아르모니아 문디),
그리고 스티븐 코바체비치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29번(EMI) 녹음이었다.
여기서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녹음부터 살펴보면, 고악기 특유의 까칠한 음색은 그대로
살아나지만 자극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럽고 풍부한 음색, 온화한 공간감, 정연한
템포와 더할 수 없이 적절한 순발력 등을 유연하게 통합한 음향에 필자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면
솔리톤 라이라 풀세트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29번에서는 어떤 음향을 들려주었는가?
이 녹음에 대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코바체비치 특유의 견고한 타건과 세련미 넘치는 음색을 제대로 살려낸다.
느린 악장에서 살아나는 그윽한 음색과 유장한 선율미에 주목하라! 자연스러움과 깊이가
제대로 살아 있는 그랜드 피아노의 음색이라니! 수렴과 발산 사이의 균형이 거의 완벽하다.
페달링에 따른 음색의 변화를 이처럼 섬세하게 재생하다니!’
바로 이것이다.
솔리톤 라이라 케이블 풀세트가 이끌어 내는 것은 음향과 음향의 진정한 통합이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9번의 마지막 악장에서 코바체비치가 무자비하게 선율을
몰아붙이지만, 그 속에 인간미를 담아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