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이주원 교수댁 방문기   0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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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원 교수댁

WHAT HIFI 2003. 10월호게재

화려한 도심의 불빛이 그림처럼 벽 한쪽을 장식하고, 나즈막한 조명아래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 흐르는 거실. 오디오 파일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꿈꿔볼 만한 풍경이다.


이번에 소개할 마니아는 K대 재직중인 이주원 교수.


은은한 진공관 불빛이 고풍스런 인테리어와 어우러진 이 교수의 도곡동 자택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담겨져 있다. 최첨단 고층 아파트에 흐르는 클래식의 향기는 굳이 오디오파일이 아니더라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Hovland, Gryphon, Dynaudio 삼총사가 만들어내는 하이엔드의 향연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


삭막한 도심의 풍경에 익숙해 있던 필자에게 이주원 교수의 거실에서 내려다본 도심의 야경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실내 조명을 낮추자 대신 Hovland 진공관의 매혹적인 불빛이 살아난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리가 그려지는 분위기였다.


이 교수의 안내를 받아 거실로 들어서자 먼저 눈에 들어온 벽난로처럼 불을 밝히고 있는 진공관 앰프였다. Hovland Sapphire 파워와 HP100 프리앰프의 첫인상은 사뭇 다른 느낌었다. 진공관 이 드러나는 파워앰프가 은근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면 직사각형에 큼직한 원형 노브만으로 구성한 프리앰프는 미니멀적인 현대 디자인의 전형이다. 그렇다고 Sapphire가 꼭 클래식한 것 만은 아니다 진공관을 둘러싼 유선형 유리관과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직사각형의 슬림한 몸체는 요즘 출시되는 어떤 앰프보다도 샤프하다. 은근히 배어 나오는 푸른색의 라이트는 아이쉐도우로 치장한 도시 여인의 눈매를 연상케 한다.


방금까지 음악을 듣고 있었던지 진공관은 적당히 달아올라 있었으며 나즈막한 음악이 귀를 간지럽혔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자마자 볼륨부터 높였다. 60인치 대형 프로젝션 TV 옆에 놓인 Dynaudio Confidence C2 스피커는 다소 왜소해 보였지만, 넓은 거실을 매끄럽고 깨끗한 사운드로 가득 채워준다. 첫 느낌은 질감은 살아있지만 결이 고와 그다지 진공관 같은 않은 음색이라고 해야겠다. 힘은 있지만 그다지 과시하는 편은 아니었고, 편안하게 음악에 빠져들게 만드는 소리였다.


첫 방문에 언제까지 음악만 들을 수는 없는 법. 아쉽지만 볼륨을 줄이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현재의 시스템은 이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친분있던 숍의 권유로 들이게 됐다. 처음에는 중고제품도 고려했었는데 옥석을 가릴 정도의 실력이 아니었던 터라 숍에서 몇가지 제품을 비교한 후 결정했다고. 소리는 물론 다소 고풍스런 거실 인테리어와도 잘 어울려 주저없이 선택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


유난히 커보이는 TV는 영화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서라운드 스피커는 메인과 같은 브랜드인 Dynaudio의 Audience 시리즈로 매칭했다. 그다지 영화를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현재 유학중인 딸은 방학 때나 들리는 탓에 적당한 기기들로 구입했다지만 60인치 Sony LCD 프로젝션 TV 하나 만으로도 웬만한 시스템은 부럽지 않아 보였다.


가족 모두 아마추어 연주가


대학시절 잠시 첼로를 배우기도 했던 이 교수가 주로 듣는 음악은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같은 현악기 중심의 클래식 소품들. 한 2년 정도 했었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지금은 다 잊었다며 웃는다. 가끔씩이나마 이 교수를 연주회로 이끄는 사람은 부인이다. 현재 안과의로 있는 부인은 대학 기악반에서 바이올린을 맡았을 정도로 클래식에 관심이 많단다. 미술이 전공인 외동딸은 피아노를 연주한다니 가족만 모여도 작은 앙상블이 되는 셈이다. 취미라고는 하지만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조금은 부러운 풍경이었다.


가족들 모두가 악기를 다뤄본 만큼 오디오 기기에 민감할 법도 한데, 이 교수는 그 정도는 아니라는 말로 손사래를 친다. 부담없이 즐기는 작은 취미일 뿐 기계 자체에 큰 관심을 둘 정도의 마니아는 아니라는 것. "그저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혹은 악기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을 구분할 정도입니다. 특히 바이올린은 그런 변화가 심하더군요. 음악 하나를 듣더라도 사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먹어본 사람이 음식 맛을 안다고 시간이던 돈이던 어느 정도는 투자하고 가까이 해야 하죠.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이제 조금씩 그 맛을 알아가는 단계라고 할까요." 그에게 음악은 탐구의 대상이라기 보다 삶의 여백을 메우는 작은 즐거움처럼 느껴졌다.


음악 감상실 즐겨 찾던 학창 시절


이주원 교수가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선생님이 '경기병 서곡(Leichte Kavallerie)'이 좋다고 하도 자주 얘기해 하루는 을지로 입구 삼각빌딩에 있는 음악감상실 필하모니를 찾아 갔다.


"연세가 있는 분들은 알겠지만 당시만해도 오디오가 있는 집은 드물었죠. 음악 감상실은 편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르네상스'와 '필하모니'가 유명했는데, 입장료만 내면 주스 한잔에 하루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었죠.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하기도 하고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북적 했습니다." 그때부터 이따금씩 생각날 때마다 감상실을 찾으며 클래식과 음악에 대한 취미를 키웠다는 이 교수가 자신의 첫 오디오 Kenwood를 장만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70년대 중반 레지던트 시절 정식 수입품이 별로 없었던 당시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제품을 구입해 직접 설치했다고 한다. 그때의 기분을 어찌 말로 설명하랴. "그때는 클래식 보다 팝송을 주로 들었죠. 지금이야 올드팝이 되버렸지만 틈날 때 마다 즐겨듯던 스콧 매켄지의 샌프란시스코, 패티 패이지의 테네시 왈츠 등 당시 유행했던 팝송은 바쁜 레지던트 시절을 함께 보낸 동반자였습니다."


앞서 말한 '경기병 서곡'에 얽힌 이 교수의 재미있는 일화 하나. 친구들과 몇 해전 몽고지방을 여행하다 겪은 일이다. 그곳의 전통 음악 중 하나가 경기병 서곡과 너무나 흡사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작곡자인 주페가 이를 들어봤을리 없을테고, 기마민족의 정서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보기 힘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이래 저래 그와는 인연이 깊은 곡이다.


공연장 보다 집에서 듣는 음악 더 편해


많은 애호가들이 라이브 콘서트를 선호하는 반면 이 교수는 오히려 집에서 들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물론 현장에서 느끼는 음악의 향연이 나쁠리야 없겠지만, 바쁜 일정 속에서 공연장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다. 퇴근 후나 서재에서 강의 준비를 하는 짬짬이 듣는 음악이 오히려 부담도 없고, 명연주자들의 CD를 골라 듣는 맛도 쏠쏠하다는 것이다.


아마 그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제대로 꾸민 하이엔드 시스템에서 듣는 소리를 실연과 같다 혹은 능가한다고는 쉽게 말할 수 없지만, 그 나름대로 완성된 소리임에는 분명하다. 실연이 주는 장점도 분명하지만 컨서트 홀도 자리에 따라 혹은 연주자에 따라 차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서브 시스템이 있다는 서재로 들어서니 책상 양쪽으로 검은색 스피커가 놓여있다. 주위의 가구들에 비해 다소 생뚱맞아 보였는데 책상 아래로 보이는 AIWA 일체형 하이파이는 요즘 나오는 산뜻한 시스템과는 거리가 먼 구형이었다. "강의 준비 하느라 서재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어떨 때는 메인 시스템보다 이 놈과 있는 시간이 더 많아요. 오래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쓸만합니다." 예전부터 한번 들어보고 싶었던 마란츠 앰프로 바꿔 보고도 싶지만 지금은 아니란다.


짬짬이 CD를 갈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저녁 10시가 훌쩍 넘었다. 아쉬운 인사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사파이어의 푸른 불빛은 쉽게 사라지질 않았다.






푸른불빛이 인상적인 Hovland Sapphire 파워앰프. 출력관은 EL34 로 심플한 디자인 만큼 매혹적인 사운드로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사로 잡는다.


픽업부가 통째로 밀려나오는 트레이가 독특한 Gryphon Adagio CD 플레이어. 뛰어난 디자인만큼 고급스러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AV 시스템은 영화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장만했다고 한다 . 영화는 자주 보지 못하지만 음악관련 타이틀에는 관심이 많다 . Denon DVD 플레이어와 리시버로 구성한 무난한 시스템 .




진행 : WHAT HIFI 남효정 기자 / 사진 : 안은실 기자

장식장 속의 CD 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붉은 스티커가 붙어있는 CD 들을 찾을 수 있다 . 즐겨듣는 CD 를 빨리 찾기위해 생각한 방법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