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오래된 친구 필하모니   0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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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에 입소문을 듣고 필하모니를 물어물어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미국에서 막 도착한 스피커와 앰프 박스 더미 속에서 필하모니의 분위기만 잠깐 익히고 온 뒤라 언제고 느긋하게 다시 오겠다고 인사드리고 나왔다.

다시 찾아간 어제 오후, 젊은 친구가 서태지를 듣고 있다. 흠... 빈티지로 서태지를 들을 수도 있구나. 느물거리는 서태지랄까... 또 다른 맛의 서태지가 나온다. 젊은 친구가 돌아가고 빌 에반스 트리오의 'Waltz for Debby'를 들어본다. 빈티지의 풍윤함 속에 잠긴다. 파워는 MOTIOGARPH MA 7515(6L6관), 프리는 MCINTOSH C-08 모노, 스피커는 AR 3
세월의 무게가 묻어나온다. 좋다.



올해 쉰 한 살의 홍성호 사장은 매우 독특하게 오디오 업을 시작한 사람이다. 잘 나가는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토목엔지니어였다. 그러다 IMF 때 찬서리를 맞았다. 3년을 아무 생각 없이 푹 쉬었다고. 쉬는 동안 뭐 먹고 살았냐? 그간 모아 둔 오디오를 슬슬 팔아 밥과 바꿔 먹었다. 그런데 어라? 그 동안 취미로 보였던 오디오가 "돈"으로 그것도 아주 환금성이 큰 물건으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디오 취미가 고맙다고 느껴진 '생활의 발견'인 셈이다.

그 이후 그는 세운상가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리면서 빈티지 쪽으로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 만 3년이 흘렀다. 그렇게 필하모니는 시작되었고, 지금 빈티지계에서 인정 받는 존재로 자리잡았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오디오를 해오면서 금강전자와 인연을 맺었던 고객이다. 그가 소개해 준 고객만 해도 100여명에 달할 정도로 금강에 중요한 고객인 셈이다.
한번은 그가 외국에서 845 진공관을 6개를 사왔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못쓰게 된 관을 사온 것이다. 홍사장은 그걸 몰랐었고, 그 당시 용산 고사장은 아무 말없이 그 값을 치러 주었다. 그런 인연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음악 취향이냐고 물어보니, 말 그대로 '편안한 소리, 늘 곁에 있어주는 그저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좋은 게 음악이다' 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빈티지를 보면, 저런 고물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냐고, 젊은 친구들은 답답한 소리라고 그러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빈티지는 불황도 없을 뿐더러 꾸준히 찾는 발길이 이어지는 걸 보면 소리엔 주인이 있는 셈이다.

홍성호 사장은 1인 다역이다. 수입, 판매, 수리까지 한다. 올해는 E.V의 아리스토크랫(ARISTCRAT)에 집중해 볼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20년, 30년이고 필하모니가 의연하게 버틸 수 있게 뚝심을 갖고 운영을 하겠다고. 필하모니와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남기고 싶다고 황산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힘주어 말한다.

빈티지 오디오는 30년이 이상 검증된 제품이라야 명품이라고 그 가치를 인정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빈티지를 좋아하고 업으로 삼고 있다.
40년 이상 묵은 낡은 스피커를 보면 인생의 해답이 거기에 실렸음을 알 수 있다고 찬찬히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디오라는게 누구에게는 취미고, 누구에게는 존재 기반을 되기도 하지만 그 공통점은 삶의 활력소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글/사진 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