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전혀 모르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항상 설레인다.
강원도 평창의 작은 폐교에서 가야금 4 대가 현장에서 녹음한다는 얘길 듣고 무조건 가 볼 거라고 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 나섰다. 그 외는 아무 정보를 듣지 못했다. 가야금이라 …
가야금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인터넷에 산조와 병창을 검색해 보고 간 게 내가 아는 가야금 다였다. 황병기의 미궁을 예전에 들어봤긴 했는데 눈 앞에 추상화 한 폭 펼쳐진 기분에다 미궁 속으로 어지럽게 빠져든 경험하곤 원래부터 멀었던 국악은 더욱 내게 더 먼 세계가 되어 버렸다.
서울에서 두 시간 반 만에 평창의 수하리에 있는 그야말로 작은 학교에 도착했다.
산을 마주보고 마을이라곤 띄엄띄엄 집 몇 채 보이질 않는다. 이 학교는 지금 개인 소유로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용평스키장이 있는 덕분에 스키시즌되면 여기서 머물다가는 사람들도 많고, 음악하는 이들의 녹음장소로도 사용 되는 그런 공간이였다.
일행들이 읍에 있다고 한다. 그들을 만나서야 이름만 들은 가야금 앙상블 ‘ 사계' 의 녹음이라는 걸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알아보고나 올 걸 …
가야금 ‘ 가' 자도 꺼내지 말고 조용히 있자고 다짐했건만, 남경식당이라고 맛있는 꿩만두국
을 앞에 두고 아무도 한 잔 할 생각을 안한다. 강원도에 왔으니 감자술 한 잔하시죠? 배시시 웃으면서 권하니 녹음작업하러 온 젊은 친구가 좋다고 동조해준다. 감자술은 막걸리 + 동동주 섞은 맛에다 적당한 11 도 도수의 감칠 맛나는 술이였다.
원래 일정은 밤부터 녹음 들어가는 걸 들어보곤 늦게라도 출발할 생각으로 나섰는데, ‘ 사계' 중 한 명이 아침에 들어온다고 내일 녹음 들어간다고 한다. 이걸 어쩌나 …
녹음실이 아닌 현장에서 어떻게 녹음하는 지? 연주한 걸 그 자리에서 바로 들어보면 어떤 차이가 나는 지? 궁금한 게 한 둘이 아닌데 변죽만 울리고 갈 수가 있나? 출장 간다고 큰 소리치면서 출장비까지 받아왔건만, 두 고씨 사장님들의 노여운 얼굴이 떠오른다. 치솔이야 사면 될 일, 양말이나 그외는 하루 더 신는다고 무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머물기로 작정을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팀들이 챙겨온 안주거리와 술 박스를 보고 난 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모두들 모여 고기 구우면서 주거니 받거니 잔이 돌아가니 누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보인다.
김영일 님, 그는 그루비주얼㈜ 이란 회사 사장으로 사진이 본 업이다. 나이를 알 수 없는 얼굴에다 일에 대한 고집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인 사람이다. 그가 이 녹음작업을 전체 총괄한다. 그리고 윤실장이라고 하는 사운드학을 전공한 30 대 초반의 청년, 빨치산 여인처럼 강인하게 보이는 박윤숙 선생, 그리고 ‘ 사계' 의 조수현, 송정민, 유지영 님, 영자의 선배가 둘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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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공연 모습 |
술이 콰하게 오르면서 국악에 대하여, 가야금에 대하여 얘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영자의 질문, “왜 국악이 우리 일상에서 동떨어져 있나요?” 국악에, 가야금에 인생을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김빠지는 소리지만 궁금한 걸 어쩌나 …
김영일 님이 열변을 토한다. “다 일본놈들 때문이예요. 일제시대 때 국악을 싹둑 자르고 나서 미군정을 거치고 서양음악이 다 인양 제도교육에서부터 밀려나고 지금까지 이렇게 온 거예요. 우리민족이 얼마나 풍류가 있고 아름다운 민족인지는 국악을 들으면 알게 될 거예요.”
“언제부터 진행되어 온 작업인지?”
“지난 12 월부터 진행해 왔는데 오늘이 가녹음 포함 5 차예요. ‘ 사계' 의 2 집 음반인데 어렵게 현장에서 녹음할려는 이유는 도시의 지하 녹음실에서 하는 녹음은 아티스트들에게 기름을 짜내는 일이라 느껴요. 충분히 능력있고 선택된 아티스트들이 여기 자연과 호흡하면서 음악이 어우러지는 연주, 튜닝이 안된 자연끼 그대로 살린 녹음 그리고 바람소리가 멈추길 기다리면서 그 속에서 배우는 거지요. 땀 흘리고 녹음하고 난 뒤 창문을 열면 그 때 맞는 바람의 느낌은 도시에서는 모르지요. ‘ 사계' 와 강행군을 해오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재밋고 즐거운 작업이였어요. 이번 음반은 국내 작곡가들의 창작곡집인데 내일 녹음할 곡은 ‘ 상주모심기 소리' 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곡이고, 이번 녹음이 잘 끝나면 4 월 초쯤 음반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곤 김영일 님의 국악에 대한 짙은 사랑, ‘ 인어꼬리' 를 비유한 옛 선비들의 풍류, 우리고유 장단이 왜 젓가락 장단에다 ‘ 니나노' 로 넘어갔는지, 쏟아지는 얘기들 속에서 귀동냥한다고 바빴다. 사이사이 노래자락이 흘러나오고 샛바람이라고 부르는 수하리의 밤바람은 몰아치고, 빈 술병은 차곡히 개겨지고 그렇게 밤이 흘렀다.
담 날 아침, 부시시 일어나니 모두들 단장을 다하고 아침상에 앉아있다. 바람소리가 멈춰야 녹음에 들어갈 수 있는데 아침부터 만만찮은 바람이다. 죽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산책 다녀오니 어느 새 바람은 잦아들고 녹음 셋팅 작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관람석 자리도 미리 마련해뒀고 가야금 튜닝 작업에 들어간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 몇 장 찍고 침 넘어가는 소리라도 행여 들릴세라 얌전히 구석에 앉았다.
난생 처음 내 눈앞에 가야금, 그것도 4 대씩이나 연주되고 있다. 가야금이 12 줄이라고 알았는데 하나 둘씩 세어보니 무려 25 줄이다. 나그라 녹음기는 위용을 드러내고 나는 반쯤 얼이 나간 체 눈을 감고 있었다. 김영일 님이 “자 ~~ 가장 강하게 나오는 부분 두 어 부분만 우선 해봅시다. 준비됐나요? 오 케이 ~~” 4 대의 가야금이 터져 나온다. 내 눈 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하지만 서운하게도 짧게 끝이 났다. 방금 녹음한 걸 돌린다. 뛰는 가슴을 동여매고 모니터 스피커 앞에 앉았다. 조금 전에 연주한 곡이 스피커로 울려나오는데 너무 신기했다. 기기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소리는 좀 전에 들어본 소리와는 다르게 들렸다. 물론 시각적인 게 작용하는 것도 있지만 하나 걸려졌다고 느껴서인 지 소리를 가두었다는 느낌이였다. 이게 현장음과 차이인가? 내가 오디오로 통해 들어온 음악은? 갑자기 헛것이 아닌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잠깐 들어보고 내가 뭐 알겠는가?
기기소개
- 녹음기 : Nagra D Ⅱ
- Mic : Neumenn M147 Tube
- Cable : Cadas Golden Cross
- Tape : Emtec Digital
- Monitor Spk : Geverec 1209M
- Monitor Spk Cable : Cadas Cross link
아쉽게도 점심 먹고 다시 하자고. 동치미국수 해먹기로 했다. 빈 손으로 와서 민폐만 끼치는 것같아 노력봉사할 요량으로 팔 걷고 나섰다. 국수 삶고 오이채 썰고 장독에서 금방 건져온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주니 다들 정말 잘 먹는다. 음반 뒤에 설마 국수 말아준 사람 이름은 나오겠냐만 맛있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 …
커피 한 잔하면서 사계의 리더인 고지연씨에게 가야금 줄이 왜그리 많냐고 물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음계가 확장되면서 변화된거라고 보시면 되요. 기야금의 역사가 2 천년인데 통상 한 악기가 나오면 50 년 동안 시험되면서 살아남는 것과 사장되는 것들이 있는데 가야금은 10 여 종류로 지금은 주로 4 종류가 주로 연주되고 있어요. 25 현, 저음 위주의 22 현, 12 현 산조, 12 현 정악 가야금 이예요. 가야금은 지금도 발전되고 있다는 거죠”
다시 바람이 일고 동네개들이 짓는다. 녹음은 밤으로 미뤄진다. 결국 맛배기만 보고 철수하기로했다. 일도 밀려있고, 녹음 현장에 망부석처럼 앉아있을 인내심을 감당할 수도 없을 뿐더러 아무래도 연주자들이 신경 쓰일 것같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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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의 최대 장애 2 호 : 동네 개들 |
4 월 19 일 LG 아트센터에서 하는 사계의 공연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서운하게 이들과 헤어졌다.
1 박 2 일 동안 출장을 핑계 삼아 잘 놀고 잘 먹고 팔자에도 없었던 가야금 공부도 많이 하고 돌아오면서 오디오를 매개로 이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젯밤 본 하늘의 별만큼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도 아름답고 무수하다는 것.
또 하나, 현장의 원음을 들으려고 오디오를 한다고들 말하는 데 아무리 생각해도 현장의 원음을 따라간다는 건 호주머니 돈 새는 일과 상관관계가 있는 건 아닐지? 아 ~~~ 정말 오디오는 내게 너무 어렵다. ( 글 / 사진 영자 )
가야금 앙상블 ‘ 사계' 보시려면 http://www.sagye.com/about.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