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노총각의 오디오라이프
가끔 퇴근 무렵 금강에 와서 주인장 꼬셔서 소주 한 잔 걸치는 남자가 있다. 걸쭉한 남도사투리를 구사하면서 오디오에 대해선 자기 꺼 말고는 다른 모델은 아예 모르고 관심도 없는 양반이 오디오샵은 왜 오는 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을 볼 때마다 했었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시스템 구경 좀 합시다'하니 선뜻 오라고 한다. 고객탐방 오라는 데는 없고 때는 이때다싶어 연락을 했다. 노총각 혼자 사는 집 방문이라, 남의 이목도 두렵고 내외할 것(?) 같은 불안감에 친하게 지내는 지인을 동행시켰다. 며칠 전부터 집이 엉망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 괜히 청소하니 어쩌니 수선 떨지 말고 있는 대로 보여주세요'서울대 앞 서점 앞에서 세 사람이 만났다. 이 노총각 왈, 집에 있는 건 물(水)밖에 없다고 한다. 바로 삼겹살집으로 직행, 김치와 버무려 나오는 삼겹살이 그리 맛있을 수가 없다. 배 두드리면서 노총각의 옥탑방으로 들어서니 현관 입구에 친근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소주 빈 병이 얌전히 줄 서 있는 … ^^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살이에 오디오만 눈에 띄게 으리으리하다. 허기사 다른 게 뭐가 필요하랴! 자리를 잡고 음악을 올린다. 며칠 전에 들어온 CARY CDP 는 3 시간 에지징을 시킨 탓인지 아님 노총각집에 웬 여자가 와서 질투를 하는 건지 마구 쏘고 있었다. 듣기 민망한 지 곧 LP 로 바꾼다. ISAAC STERN 이 연주하는 모짜르트 곡이다. 의례적인 질문, “소리 어때요 ” “음악이 참 좋습니다”, “인터뷰 합시다”, “그런 거 안 하면 안돼요?”, “안돼요”
영자) 음악은 왜 들으시는데요?
노총각) 할 일이 없어서 (시니컬하게 던진다)
영자) 성의있게 답하세요 (거의 협박조다!^^)
노총각) 어떤 날은 하루 12 시간 듣는 날도 있다. 진짜 별일 없으면 음악을 끼고 산다.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것은 4 년 전이고, 2001 년 말쯤 그간 해오던 사시공부를 때려치우곤 마란츠 미니데크에서 시작하여, 태광 Honor 인티 900, 스피커는 다인 오디언스 52, 시디피도 태광, 그 뒤에 럭스맨 앰프도 썼는데, 나는 오디오에 대해선 진짜 모른다. 원래 뭐 만지고 어쩌구 하는 것도 싫어하고 전구도 못 갈아 끼운다. 오디오샵 직원이 와서 세팅해주고 가면 다시 올 때까지 일절 오디오 뒷면은 물론 자리하나 이동 안한다. 자리 바꾸고 나면 소리가 달라지는 데 그걸 다시 맞출 줄도 모르고 귀찮다. 기기에 대한 지식도 오디오를 먼저 사고 난 뒤에 잡지에서 내가 산 오디오 정보를 얻는다. 남들은 그 반대로 하는 가 보더라.
영자) 아끼는 음반 한번 꺼내주세요.
배호, 조용필 1 집이 나오기 전의 비공식 음반, 김현식 6 집,. ISAAC STERN 의 모짜르트 바이얼린 협주곡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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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각 주인장이 아끼는 음반 |
'음악듣기'도 아는 만큼 들린다고 |
영자) 어떤 음악하고 주로 지내는지? 노총각) 처음 팝송 듣다가 지겨워서 클래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돌아다닌 걸 워낙 싫어하는데 친한 헌책방 아저씨가 LP 들어오면 전화를 준다. 한 달에 평균 30 장 정도 사 모은다. 근데 중고 LP 다 보니 보이는 대로 사다 놓고 들을 수밖에 없다. 주로 대편성과 오페라 위주로 듣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베토벤 3 번 ‘ 영웅'을 듣는다. 시작도 베토벤, 끝도 베토벤이더라.
그 사이에 판은 Dire Straits 의 ‘LOVE OVER GOLD' 가 흐르고 있다. 저 좋은 음반을 내버리다니. 모아둔 음반들을 둘러보니 바흐의 무반주첼로조곡이 눈에 띈다. 해석을 부탁했다. 노총각) 카잘스 연주는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미샤 마이스키는 메롤디가 유려하고 야노스 스타커는 객관적이고, 쟝 막스 끌레망은 힘있고 빠르다. 다닐 샤프란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초보가 듣기는 좀 그렇고 기괴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젤 맘에 드는 피에르 푸르니에는 멜로디가 유려할 뿐만 아니라 선율이 매끄럽게 연결되며 기교를 안부리고 듣기에 편하다.
영자) 오디오를 모른다면서 바꿈질은 왜 합니까? 오디오 얘기 좀 해봅시다.
노총각) 내가 금강에 가게 된 이유는 일주일만에 접었지만 A/V 한다고 멋모르고 덤볐을 때 오디오잡지에 데논 리시버앰프가 다른 집은 죄다 46 만원으로 나왔는데 금강만 41 만원에 나왔더라. 그래서 찾아갔더니 직원이 잘 못 적어 보내 오자가 난 건데, 사장님이 할 수 없다며 41 만원에 해주시더라고. 거기서부터 이놈의 귀가 꼬인 것 같아. 돈만 많다면 시디피에 젤 많이 투자를 하고 싶어. LP 느낌이 나는 시디피 …
영자) 그리폰 미카도가 그런 느낌이라는 데 1200만원이라나 뭐라나 ~~~^^ 어떤 시스템을 갖고 싶어요?
노총각) 스피커는 윤형 집에 있는 다인오디오 C1, 파워앰프는 제프 롤랜드 모노모노 4 덩어리짜리, 프리도 제프 시그네쳐인가? 미카도가 좋다면야 … 120 만원하면 참 좋겠다.^^ 지금 가진 시스템도 좋다. 스피커는 지금 젤 오래 있는 거고, 파워는 전원부가 들어와서 소리가 더 정갈해졌다. 제프는 미는 맛은 없지만 소리를 흘려 보내준다. 프리 마크레빈슨 ML-7A 는 포노단이 좋다. 음악과 오디오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취미다. 그래서 남들에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영자) 원하는 오디오라이프는?
노총각) 능력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해서 나는 전업주부하고 한 달에 음반 좀 사고, 6개월에 한번씩 오디오 바꾸고 그러고 살면 안될까?^^
영자) 꿈 깨슈!!!^^
골목길을 같이 걸어나오면서 계속 미카도가 120 만원하면 좋겠다고 중얼거린다. 그의 집에서 나오는 음악도 충분히 좋았는데 사람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뭐가 좋다고 하면 듣고 싶고 갖고 싶고 …
그는 오랫동안 공부만 해 온 사람답게 혼자 노는 데 익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혼자서 음악듣는 것도 지겨워질 때가 있다. 오디오도 지인들과 함께 하는 게 훨씬 재밋다. 사고만 안친다면.^^ 그가 이 재미를 알았는지 이제 사 서서히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오디오도 음악도 더불어 하는 재미를 늦게 안 셈이다.
형수 빼고는 여자가 처음 방문한다고 며칠 전부터 청소한 티가 역력한 노총각 방을 나오면서 음악이 아무리 좋은 들 좋은 사람만큼 좋을려나? 그에게 올해는 참한 색시가 생겨 영웅도, 라 트라비아타도 함께 듣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으면 …
참, 이 노총각 이름은 이성봉 님이다. (글/사진 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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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고인돌 삼겹살집, 신김치와 어우러진 맛이 일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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