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이후에 확산된 현상이 아닌가 싶은데, 지난 10년 사이에 오디오 생활을
시작한 신참 애호가들은 50·60대를 넘긴 구세대 애호가들과 시각을 확연히 달리하는
취미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구세대 애호가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꾸준한 업그레이드와 튜닝 작업을 거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음향을 만들어 가는 것에서 오디오 취미의 즐거움을 찾았다면,
신세대 애호가들은 오디오 취미를 시작한 지 몇 년도 지나지 않아서
― 심한 경우에는 단 몇 달만에 ― 슈퍼 하이엔드 기기 일색의 시스템을 갖추면서
단숨에 정상에 도달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여 주는 것이다.
오디오 취미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애호가 자신이 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20년이 걸렸든 1년이 걸렸든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오디오 취미가 지향하는 자기만족이 특정 브랜드의 기기와 시스템을
단순히 소유하는 즐거움 이상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원칙론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오디오 취미가 애호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며,
음향에 대한 감식안을 제고하면서 음악의 보편성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
그리하여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개성 넘치는 음향을 연출해가는 과정이라는
이상론에 동의한다면, 오디오 취미에서 시간만큼 중요한 변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기기와 시스템이 들려주는 다양한 음향을 경험하면서,
그리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시스템이 들려주는 음향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도전과 연구를 계속하면서 보편성과 개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농익은 음향을 만들어 내는 데
세월처럼 좋은 약이 없기 때문이다.
간혹 신세대 오디오 애호가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필자가 가장 아쉽게 느끼는 대목은
각고의 세월이 빚어낸 농익은 음향을 이들의 시스템에서 거의 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들의 시스템을 접하면서 필자는 한편으로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시스템 가격에도 놀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도무지 고심의 흔적이나 발전 가능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천편 일률의 음향을
들려주는 시스템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이런저런 오디오 쇼나 오디오 전문점에서 접할 수 있는 ‘레디메이드 하이엔드 시스템’이 들려주는
‘판박이 음향’을 감상하기 위하여 아낌없이 거금을 쓰는 신세대 애호가들의
조급함 이 그저 애처로울 뿐이다.

서론이 길어진 느낌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본지 편집부의 요청으로 방문한 애호가의 시스템을 접하면서
필자는 신구세대 애호가의 차이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도 마석에 있는 아파트에서 호젓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는
성영중 선생 집의 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필자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일반 아파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천장― 복층 아파트인 듯했다 ―
아래 중세 고딕 성당을 연상케 하는 기기묘묘한 오디오 랙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오디오 시스템보다 오디오 랙에 홀린다!
이런 랙을 판매하는 곳을 본 적이 없으므로 분명히 애호가 자신이 손수만든 것이 틀림없을 텐데,
대체 이 랙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까?
애호가의 집을 자주 방문 하지는 않는 필자이지만, 이처럼 신선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성 선생의 오디오 랙과 시스템을 요모조모 관찰하면서 필자는
이처럼 거창한 오디오 랙이 단순히 시각상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오디오 랙은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바닥과 오디오 랙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견고한 받침대 위에
아날로그 계열, 프리앰프와 디지털 소스 기기 계열, 그리고 파워 앰프와 파워 서플라이 계열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각 파트는 완전히 분리 되어 있으며, 별도의 충격 흡수 장치를 마련하여
외부에서 오는 진동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스피커 받침대 또한 스피커에서 발생하는 진동이 바닥으로 전해지는 것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하여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쯤 되고 보니 안정성과 정교함, 그리고 미감까지 충족시키는 오디오 랙을 만든
성 선생의 전공 또는 전직이 궁금해졌다.
혹시 건축 관련 직업에 종사한 분이 아닐까? 그런데 돌아오는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저는 원래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영문학을 하신 분이 이처럼 대단한 물건을 만드셨다고요? 정말 의외로군요.”
“(웃음)”
“오디오 랙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기로 하고요. 오디오는 언제 시작하셨습니까?”
“1960년대 중반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부모님이 사 주신
텔레풍켄의 콘솔형 시스템이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시절에 일본제 기기로 본격적인 오디오 라이프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산스이였을 겁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K3808 유닛을 탑재한 탄노이의 오토그래프(김박중 케이스)
― 이스피커는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와 매킨토시의 진공관 앰프,
그리고 트랜지스터 앰프로는 오디오 리서치의 프리앰프와 매킨토시의 MC7270 등을
사용했습니다만. 기기 바꿈질이 그리 잦았던 것은 아닙니다.
이후 미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크렐, 인피니티, 마그네판 등의 기기를 사용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탄노이를 제외하고는 주로 미국산 기기들을 많이 사용하신 것 같군요.
이제는 큰 의미는 없습니다만, 아메리칸 사운드를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브리티시 사운드를 좋아하십니까?”
“(웃음) 탄노이나 다인오디오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퀀시퀀스 이전에는 헤이스의 스피커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만,
역시 제 취향에 가장 잘 맞는 것은 다인오디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인오디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십니까?”
“보통 다인오디오는 구동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만족했습니다.”“어떤 음향을 좋아하십니까? 풍성한 소리를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분석력이 뛰어난 소리를 좋아하십니까?”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상하는 음악에 따라 음향을 보는 관점도 달라집니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주로 들으십니까?”
“첼로 독주를 좋아하고요. 대편성보다는 소편성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성악도 많이 듣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육십을 넘고 보니
이제는 팝 음악도 듣고, 월드 뮤직도 감상하고, 아주 다양한 음악을 즐기고 있습니다.
컨시퀀스를 사용한 지는 4년 정도 되었는데요.
컨시퀀스 이후에 실내악 감상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기를 들여놓고 나면,
제게 어울리는 소리를 찾기 위하여 다양한 튜닝 작업을 합니다.
그러면서 제 취향의 소리로 바꾸어 나가는 것을 즐깁니다.”
“그게 바로 진정한 오디오 마니아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애호가들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안타깝습니다.”
“고통스럽지만 튜닝 작업을 해 가면서 전에 듣지 못했던 새로운 음향을
들었을 때의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성 선생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자가 말한 ‘이순(耳順)’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이 육십이 되고 나니 어떤 것을 듣고 보아도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데,
성 선생이 바로 그런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성 선생의 시스템은 오디오 랙 뿐만 아니라 아주 독특한 구석이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최신 브랜드 일색의 ‘레디메이드 시스템’이 아니라
신구 브랜드와 기기가 뒤섞여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신세대 애호가가 성 선생의 시스템을 본다면, 오디오 랙에는 무척 공을 들인 것 같은데,
기기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으신 것 같군요 라는 말을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스피커는 컨시퀀스이고, 프리앰프는 마크 레빈슨의 No.26인데,
CD 트랜스포트는 스텔로 CDT200이고, DAC는 MSB 테크롤로지의 플래티넘 링크라는
엔트리 클래스 내지는 예전 물건이거든요.
한 마디로 언밸런스 매칭이라는 거죠. 그렇지만 이것은 성 선생께서 기기를 한 번 구입하면
상당히 오랜 기간 사용하신다는 이야기가 될것 같습니다.
저는 이게 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젊은 애호가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으십니까?”
“메이커가 제공하는 상태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자신이 사용하는 기기의 잠재력에 주목하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저 자신이 경험해 온 일입니다만, 그 기기를 만든 메이커도 알지 못하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걸 믿고 꺼내쓰는 것이 바로 오디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문제의 오디오 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정말 대단한 랙입니다.”
“이 랙을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6년입니다. 햇수로는 6년이 넘었군요.
그렇지만 이 랙에 대한 스케치는 2003년부터 했습니다.
이전에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랙을 사용했는데,
이미지의 통일성이라든가 안정성 또한 아주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젊은 시절부터 건축 같은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내 마음에 드는 것을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기본 설계를 하고
차곡차곡 제작을 해 오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정말로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인터뷰를 끝낼 시간이 된 듯합니다.
성선생의 시스템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만,
이 시스템처럼 조급증에 빠져 있는 신세대와 신참 오디오 애호가에게 귀감이 되는
예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절차탁마 대기만성! 성 선생의 시스템이 바로 그런것 같습니다. 오디오 시스템도 그렇고요.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DETAILS
턴테이블 : 프로젝트
카트리지 : 벤츠 마이크로 ACE
포노 앰프 : Allnic H-1500
CD 트랜스포트 : 스텔로 CDT200
DAC : MSB 테크놀로지 플래티넘 링크
블루레이 플레이어 : 오포 BDP93
프리 앰프 : 마크 레빈슨 No.26
파워 앰프 : 크렐 KSA-300S
AVR : 파워텍 PAV-5000
차폐 트랜스 : 파워 블록
[2012.3 Hifi-Choice에서]